- (부처님오신날을 이틀 앞두고 2020년부터 말기암과 싸우시다가 얼마 전에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신 노스님께 보내드린 편지.
그의 스승이 남긴 거대한 유산은 사형사제들에게 찢기고 밟히고 신도들은 고소고발로 아우성이다. 그래서 노스님은 너무 분해서 죽을 수가 없단다. 이 편지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한다)
큰스님,
6조 혜능 스님은 5조 홍인 스님의 의발 하나만 들고 황매산 동선사(東禪寺)를 몰래 빠져나왔습니다. 스승의 법을 온전히 이어받았기에 나무와 흙으로 지은 동선사라는 건물은 더 이상 청정한 그 마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의발 하나로 시작된 그 법맥이 오늘날 선종의 거대한 숲을 이루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미 큰스님의 법을 전집으로 훌륭하게 편찬해 놓으셨고, 그 가르침 또한 온몸으로 받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미 그 자체로 빛나는 역사를 이루셨으니, 눈에 보이는 절집의 허상에 조금도 마음을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법을 이었으면 그만이지, 머물던 자리는 그저 흘러가는 구름이나 강물과 같습니다.
혹시라도 모자란 게 있다면 그것은 앉은자리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이지 굳이 그곳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사형사제들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큰일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평생을 바쳐 정리하신 큰스님의 법보(法寶)와 가르침은 앞으로 저희 후학들이 소중히 받들어, 세상에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널리 전하고 이어가겠습니다. 그러니 스님께서는 아무런 걱정이나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스님은 이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하셨고, 충분히 법을 이뤄 오셨습니다. 한평생 올곧게 수행자로 살아오셨고, 깊은 진리를 깨우치셨습니다.
이제는 무거운 육신의 고통과 짐을 잠시 처소에 맡겨두시고, 편안하게 마음을 정리하시며 다음 여정을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큰스님과 다시 만나실 청정한 원력을 마음에 품으시고 한 걸음 한 걸음 평온하게 나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제 눈으로 볼 때 큰스님의 법을 이은 분은 오직 스님 뿐이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자처럼 기품을 지키시고, 코뿔소의 뿔처럼 수행의 길을 걸어오신 스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올립니다.
삼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