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권입니다.
<이오덕 일기4,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 읽고 있습니다.
제대로 읽고 있지는 못하지만요…
어찌저찌 굴러가고 있습니다.
딴 얘기를 많이 하는 책모임입니다.
와닿은 구절 하나를 놓고 나오는 경험과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재밌습니다.
내가 한 얘기는 “행복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상태고 공부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확신을 가지고 얘기했는데도 학생들이고 선생들이 그다지 공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웬일일까? 이런 이야기는 지난날 다른 데 가서 얘기해도 모두(어른이고 아이고) 그랬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서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삶의 태도를 그렇게 개인 중심으로 바로 세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데서 찾아내고 세워 가도록 해야겠다고 깨달았다. 그러니까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혼자서는 못 산다. 반드시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살아가는 문제를 자기 혼자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남의 문제도 함께 해결하도록, 곧 사회 전체 문제를 풀어 가는 데서 자기 문제도 풀도록 해야 되겠고,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를 생각하는데 너무 깊이 사회체제 문제를 얘기할 것까지 없고, 적어도 자유라든가, 평화라든가, 반독재라든가, 평등이라든가 하는 말로 나타낼 수 있는 어떤 바람직한 사회를 생각해 두고, 그런 사회를 이뤄 가는 데 나 한 사람이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이런 말을 해 주었더라면 좀 더 내 생각에 공감했을 것 아닌가 반성이 되었다. (1992년 1월 27일)
우리가 개인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와 질문은 참 많이 나누면서도
원하는 사회와 그 사회에 어떻게 이바지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 너의 꿈이 뭐야? 라는 질문도 좋지만
네가 살고 싶은 세상은 어떤 세상이야? 어떤 사회를 꿈 꿔? 그 사회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싶니?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느 회사에 취직해 있는 딸이 여러 번 사표를 내려고 하는 것을 “정직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알게 되고 이긴다”고 하여 겨우 견디게 했던 것이, 생각대로 그 뒤에 회사에서 딸이 근무하던 부서의 과장은 쫓겨나고, 그 딸은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는데, 그래서 그 회사에서도 자기를 찾아와 딸 때문에 회사가 살아났다고 하면서 고마워하더라고 했다. “세상이 잘못된 곳도 많지만 또 바로잡히는 곳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살아 보니 그렇습니다” 했다.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처음 내가 세상을 비관하고 절망스런 말을 했던 것을 후회했다. 이런 분이 이웃에 한 분 있게 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1992년 7월 4일)
이제 이해만 그대로 하고, 새해에는 글쓰기회고 어린이문학회고 다 벗어나야겠다. 내가 지금까지 남의 일 위해 한 것이 죄다 헛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애써 준 사람들이 나중에는 거의 모두 나를 배반하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무슨 모임을 위해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어떤 이익과 권리를 위해서, 감투를 위해서 그런 데 관심을 가지고 집착하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나한테 기대어 책을 내고 싶어 하고 문단에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 뜻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아주 싹 돌아서서 제 갈 길을 간다. 그 제 갈 길이란 것이 속된 이름 팔고 돈에 관심 가지고 이름 내고 하는 길이다.
아, 내가 참 너무 늦게 이런 세상 이치, 사람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내가 할 일이나 하자. 세상 사람들 글쓰기 잘못하는 것도 아무리 외쳐 봐야 안 된다. 모조리 장사꾼이 다 되어 있는데 어떻게 제 버릇 고치고 제 잘못, 제 주장 굽히겠는가? 참자. 앞으로 두 달만 참자. 내년에는 내가 아주 큰 길 바꿈, 삶 바꿈을 해야겠다. (1992년 11월 3일)
이오덕 일기는 인간 이오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런 표현(비관, 절망, 배신감, 다 때려치워야겠다!)을 일기에 많이 쓰셨습니다. 훨씬 예전 일기에서부터..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서도 몇 십 년의 세월 동안 자기 일에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애증이라는 게 이런 걸까요. 그러면서 각자 현장에서 생긴 애증이란 감정을 나눕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딴 데로 계속 새는 겁니다…
새벽 4시 40분쯤 됐을까. 소변을 보고 누웠는데, 사무실 구해서 우리 말 바로잡는 운동을 할 생각을 이것저것 하면서 그대로 날을 새웠다. 내가 생각한 것은 과천 번화가 1층 어디에 사무실을 차려서, 우리 말 바로잡는 내용을 아주 간판이나 걸개막이나 또는 전단으로 만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어떤 효과가 있을 것 같아 어린애같이 가슴이 부풀었다.
나이가 많아도 이런 꿈이 있어 내가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일어나서야 들었다. (1993년 3월 27일)
이 글을 쓴 이오덕 선생님 당시 연세는 만 68세. 그 연세에도 꿈이 있어 어린애같이 가슴이 부푼다 하셨습니다.
심사한 결과를 발표한 것을 보니 내가 점수를 가장 많이 준 아이는 아니었다. 내가 점수를 가장 많이 준 아이는, 아이들 쪽에서 인기상을 받았다. 이러고 보니 나와 아이들의 느낌이 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사한 사람들이 어떤 기준으로 채점했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느낌과 판단이 정확하다는 데 새삼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1993년 10월 9일)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에 대한 늘 한결같은 시선을 견지하셨습니다.
입사한지 이제 한 달 조금 넘은 저도 조금만 의식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속된 말로, ‘찌드’는데..
아이들에게 백만 원을 주는 것도 문제다. 이 동요대회가 몇 해 전부터 해마다 있는 모양인데, 방송국에서는 교육보다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는 일에 더 마음을 쓰는 것 같다. 순전히 장사를 하기 위해 벌이는 행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해에는 아무리 간청하더라도 내가 나오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3년 10월 9일)
동요대회 상금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 상품을 걸어야 재밌는 행사가 된다고 생각하는 시각
- 아이들의 학습이나 교육에서 물질적인 보상이나 처벌이 주어져야만 한다는 시각
- 다른 기관에서 이것저것 제공해주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았던 경험
등 각자 현장에서 겪은 일과 감정을 가지고 고민도 나눴습니다. 인간을 물질적인 존재로만 바라보고, 또 그렇게 만드는 여러 관행들을 되돌아 봤습니다.
이런 것들이 인간을 유치한 존재로 만듭니다..
첫댓글 "네가 살고 싶은 세상은 어떤 세상이야? 어떤 사회를 꿈 꿔? 그 사회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싶니? 묻고 싶습니다."
"인간 이오덕", "애증"
"만 68세. 그 연세에도 꿈이 있어 어린애같이 가슴이 부푼다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인간을 유치한 존재로 만듭니다."
마음에 담아 봅니다.
고맙습니다. 안연빈 선생님~
나이들어 꿈꾸는 일은 조심스럽더군요.
나서도 되는 건지, 물러나거나 비켜야 하는 건지... 사이에서 갈등하곤 합니다.
복지논어에는 이런 갈등.고민이 곳곳에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