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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개봉 / 173분 무삭제 복원판 / 미성년자 관람불가>
=== 프로덕션 노트 ===
감독 : 필립 카우프먼
출연 : 다니엘 데이 루이스 & 줄리엣 비노쉬 & 레나 올린
극장 개봉시 삭제되었던 장면을 복원한 무삭제 버전
체코의 망명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사랑을 그린 영화
소련의 침공으로 체코의 인간적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두브체크 정권이 무너지게 된 1968년, 당시 ˝프라하의 봄˝을 살았던 젊은이들의 치열한 삶이 그려진다. 토마스는 정치적 억압으로 빚어진 사회적 불안을 육체의 탐닉으로 맞대응하고, 그와 결혼한 테레사는 공안당국의 탄압으로 인해 스위스로 망명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더욱 더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실감하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인간의 성에 대한 탐닉과 무절제한 욕구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토마스라는 한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성생활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아내 테레사를 사랑하면서도 여인 사비나의 품에서 진정한 안식을 찾는 토마스. 사비나는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그를 구속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성적 욕망을 끝없이 채워 주는 여인이다. 그의 이런 생활에 배신감을 느낀 테레사는 자신 또한 그런 생활에 빠져보려 하지만, 남은 건 자신의 망가진 모습뿐이다. 결국 그 누구도 자신과 남편을 대신할 수 없음을 테레사는 깨닫게 되고..... 한편, 테레사가 떠난 뒤 토마스는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게 된다. '자유를 포기할 수 있을지, 다 른 여인과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현재의 난잡한 성생활에 자신을 버려둘 것인지...' 많은 고민 끝에 토마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인간의 성에 대한 열정과 감정을 폭발적으로 자극하고 있는 이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주연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시대적 배경, 체코인들의 <프라하의
봄>은 1968년 1월에 시작되었다. 개혁파의 지도자 알렉산드 두브체프가 체코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서기장으로 임명되면서 이른바 인간적인
얼굴을 한 사회주의로 알려진 자유화의 개혁이 시작된다.
그는 공산당 독재정치에 시달려온 체코 국민들에게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비밀경찰이 없고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있고 여론의 주의에 기울이고 그것에 정책의 기초를 주며 현대문명이 자유롭게 발전하며 시민들이 두려움을
갖지않는 사회주의를 만들겠다라고 선언한다. 이 때부터 정부의 통제와 간섭과 비난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웠던 '프라하의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봄은 짧아 그 해 8월 21일 새벽 소련이 수 백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프라하를 침공해 오면서 갑작스런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 젊은
유능한 외과의사인 토마스, 일생 생활이 무척 심각한 테레사와 자유분방한 사빈나 두 여인. 그러나 감독 필립 카우프먼이 보여주는 것은 이들의
사랑놀이가 아니라 그들이 겪는 사건들, 프라하의 봄, 소련의 무력개입, 망명, 귀환 등과 관련해서 인물들이 마주치게 되는 존재의 변화이다.
유럽의 자유화 역사를 상징하는 <프라하의 봄>에 펼쳐지는 사랑의 표현은 한 개인에게 느끼는 사랑에서 한 개인이 조국에 대해 느끼는
사랑, 그리고 자유에 대해 느끼는 사랑이라는 다양한 층이 겹쳐간다. KGB를 필두로 한 소련 탱크 앞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민봉기가 진압된 뒤
정보 기관들은 지식인들을 말살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펼쳐 의사 토마스는 하루아침에 유리창 닦기로 전략한다. 이 영화는 자유 체코인들의
삶을 무겁게 만드는 당시의 정치 사회적인 조건에 누추함과 부조리가 생생하기 그려지고 있다. 미국으로 간 사빈나만 남고 모든 인물들이 죽음으로
종말을 맞이하는 라스트 씬은 이 모든 것을 견디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무거운 시간 속에서 솜털처럼 사라지고 마는 우리 인생을 상징한다.
체코의 프라하에 사는 의사인 토마스는 아직 독신이다. 하지만 결혼만 안했을 뿐 여자를 매우 좋아하고 여자들과 자유롭고 가벼운 관계를 가지기를 좋아한다. 어느날 토마스는 카페에서 일하는 테레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결혼을 한 후에도 토마스의 방탕한 생활은 계속되고 참지 못한 테레사가 아파트를 뛰쳐나오는 순간 소련의 탱크가 프라하의 거리로 밀려온다. 자신이 어떤 여자보다도 테레사에게 예속되어 있음을 깨달은 토마스는 그녀를 찾아 나서는데...
=== 작품 해설 === <2013년 3월14일 네이버캐스트 / 진회숙 글>
영화 속 클래식
필립 카우프먼 감독
프라하의 봄
“프라하에 가 보셨어요? 시간 있으면 꼭 가보세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랍니다.”
90년대 초반, 유럽을 여행하던 중 베를린의 지하철에서 만난 한 영국 청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날 밤 나는 덜컹거리는 프라하 행 밤기차에 짐짝처럼 몸을 실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프라하는 정말 아름다웠다. 벼락부자 냄새가 나는 자본주의의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역사와 전통과 세월의 무게가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숲과 나무 사이사이에 조용히 자태를 드러낸 아름다운 고성, 500년 세월의 무게를 안고 서 있는 카를 다리와 그 다리 양쪽에 늘어선 성자상(聖子像)들, 그리고 그 밑을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흐르는 강물. 이 모든 것이 미학적으로 완벽한 구도를 이루며 프라하라는 캔버스에 담겨 있었다.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는 한창 더운 여름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프라하의 봄을 생각했다. ‘프라하의 봄’. 그것은 기억 저 편에서부터 나를 지배해오던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이자 이상이었다. 그 기억은 멀리 유년 시절로 나를 데리고 간다.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초등학생 때였다. 어느 날 신문에 대문짝 만한 활자로 인쇄되어 있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하지만 당시 나는 이 낭만적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저 이 단어가 나올 때마다 우리 고유의 음식과 발음이 비슷한 두부체크라는 이름이 함께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말이 뭔가 이 인물과 관련이 있는가 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것이 1968년 체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강산이 몇 번 바뀐 후, 나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단어를 극장 간판에서 다시 보았다. 1980년대에 국내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읽었는데, 난해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사회주의 치하에서 겪어야 했던 지식인의 좌절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이해하겠는데, 그 방식이 낯설고 어려웠다. 그래서 영화가 나왔을 때 궁금했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소설을 어떻게 영화로 만들었을까. 막상 영화를 보니 소설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1960년대 체코의 프라하에서 외과 의사로 일하는 토마스는 일종의 성중독자다. 그에게는 사비나라는 애인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분방하게 다른 여성과 성을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시골에 출장을 갔다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테레사라는 순박한 처녀를 만난다. 테레사는 그 후 토마스를 찾아오고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토마스는 결혼한 이후에도 다른 여자와의 성적 탐닉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프라하 거리에 소련군의 탱크가 밀려 들어온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소련의 압제에 대항해 시위를 벌이고, 테레사는 카메라를 들고 생생한 탄압의 현장을 렌즈에 담는다. 그리고는 그 필름을 외국인에게 넘긴다. 나라 밖으로 프라하에서 일어난 일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 일로 테레사는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는데, 그 안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 들어와 있다. 경찰은 사람들에게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사진 속의 인물이 자기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강요한다.
이런 와중에 토마스의 또 다른 애인 사비나는 스위스의 제네바로 피난을 간다. 신변의 위험을 느낀 토마스와 테레사도 나중에 탈출 행렬에 동참한다.
제네바에 도착한 토마스와 테레사는 잡지사로 가서 프라하 민주 항쟁 사진을 보여주며 실어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이때 테레사는 잡지사로부터 패션 사진을 찍어보라는 말을 듣고 모욕감을 느낀다. 그 후 테레사와 토마스는 제네바에서 한동안 지내지만 토마스의 바람기에 상처를 받은 테레사는 혼자서 프라하로 돌아오고, 토마스도 테레사를 따라 귀국한다.
그 후 토마스는 병원 원장으로부터 예전에 그가 소련 관리를 비판하기 위해 썼던 글에 대한 철회서에 서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하지만 토마스는 이를 거절하고, 이 때문에 그는 의사에서 병원 유리창을 닦는 단순노동자로 전락한다. 지식인으로서 무력감을 느낀 토마스는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테레사와 함께 시골로 들어간다. 두 사람은 시골에서 한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 날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타고 있던 트럭이 전복하는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제네바에 있던 사비나는 두 사람이 죽었다는 편지를 받고 슬퍼한다.
토마스가 두 명의 연인을 두었으면서도 또 다른 여성들과 성적 탐닉을 즐기는 인물로 나오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남녀 간의 애정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거대한 정치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식인의 무력감,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런 영화에는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소설에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처음에는 베토벤의 음악을 쓰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작자인 밀란 쿤데라가 말렸다. 그는 베토벤의 음악과는 다른 어떤 것. 무겁지 않고, 가벼우면서 단순한 음악을 원했다. 그래서 추천한 것이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음악이다.
야나체크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현대음악 작곡가로 꼽힌다. 쉰 살이 될 때까지 작곡가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동안 놀라운 작품을 쏟아낸 대기만성형 인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의 첫 머리에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간 음반 시장에 때아닌 야나체크 열풍이 불기도 했다.
영화에는 전편에 걸쳐 야나체크의 음악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기본적인 음향적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 On the overgrown path]라는 피아노 곡집이다. 1901년부터 1908년에 작곡한 이 작품은 음악으로 쓴 일종의 자서전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야나체크는 고향 후크발디의 풍경,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노래했다. 영화에는 이 중 [날아가버린 잎새] [프리덱의 마돈나] [밤인사] [올빼미는 날아가지 않았어] 등이 나오는데, 모두가 한 편의 짧은 시 같이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가벼운 것, 무겁지 않고 단순한 음악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의도에 부합되는 곡이다.
영화의 정서적 근간을 이루는 또 다른 중요한 곡은 두 편의 현악 4중주이다. 이것은 이른바 추억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곡이다. 야나체크는 두 편의 현악 4중주를 남겼는데, 제1번은 [크로이처] 제2번은 [비밀편지]이다. 다분히 표현주의적인 성격이 짙은 두 편의 현악 4중주는 프라하에서 시위를 벌이다 잡혀 온 사람들에게 경찰이 자백을 강요하는 장면, 토마스와 테레사가 위험을 피해 도피하는 장면, 테레사가 떠나고 토마스가 혼자 쓸쓸하게 호수를 바라보는 장면, 토마스가 병원장의 요구를 거절하는 장면 등에 나온다.
제1번 [크로이처]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영감을 받아 1923년에 작곡한 것이다. 이 무렵 야나체크는 애인 카밀라 시테슬로바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 등장하는 고통받고, 아파하며, 쓰러져가는 가련한 한 여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라고 썼다.
소설의 내용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한 한 남자가 결국 아내를 죽인다는 것인데, 야나체크는 남편에 의해 짓밟히고 살해당한 아내의 고통을 대변하기 위해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여기서 네 대의 현악기는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른 부부가 서로 소통의 한계를 절감하고 절망에 빠진 모습을 그리고 있다. 3악장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애잔한 선율, 그리고 갑작스럽게 그것을 방해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격렬한 저항, 이어지는 4악장에서 긴 서주 후에 질주하는 비올라, 이를 따라 파국으로 치닫는 세 악기, 변주가 진행되면서 모든 것을 녹여 버릴 듯 클라이맥스로 치닫다가 마지막에 드디어 편안한 안식에 도달한다.
야나체크는 소설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빨간 줄을 쳐 놓았다.
“나는 그녀의 맞아서 멍든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나의 남편으로서의 권리와 나의 상처 받은 자존심에 대해 잊어버렸다. 처음으로 나는 그녀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비명 지르듯 질주하는 네 대의 현악기는 남편의 의심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의 모습과 함께, 그것을 보고 분노와 연민, 비탄과 후회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남편의 갈등도 함께 보여준다. 이런 현악기들의 비명이 영화 속에서 자백을 강요 당한 사람들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이거 당신이잖아”하고 말하는 경찰과 결사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아니에요. 그건 제가 아니에요.”하고 말하는 사람. [크로이처]는 아내의 비명과 남편의 분노를 함께 담아 압제에 신음하는 프라하 사람들의 고통을 들려준다.
야나체크는 카밀라라는 여자와 평생 비밀스러운 사랑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7살 때 자신을 음악가의 길로 인도한 스승의 딸과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독일인이었던 그의 아내는 은근히 야나체크를 무시했으며, 정서적으로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 상류사회 출신과 가난한 체코인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두 사람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사망하면서 부부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나체크는 휴양지 루하코비체에서 우연히 카밀라라는 여자를 보게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당시 야나체크의 나이는 63세, 카밀라는 25세였으며, 둘 다 배우자가 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나체크는 비밀스러운 사랑을 계속했다.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오로지 카밀라에게만 집착했는데, 애정 공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1년 동안 무려 720여 통의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노년에 찾아온 사랑은 야나체크에게 영감의 샘이 되었다. 현악 4중주 제2번 [비밀편지]는 그가 카밀라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이다. 하지만 연애편지라고 해서 달콤한 멜로디를 상상하면 오산이다. 야나체크는 속수무책으로 빠져든 황혼의 사랑을 격정적인 내면의 고백으로 표현했다.
밀란 쿤데라는 야나체크가 남긴 두 편의 현악 4중주를 “야나체크 음악의 절정” “표현주의 음악의 정수” “총체적 완벽성”이라는 말로 극찬했다. 쿤데라의 말에 의하면 야나체크는 본인이 표현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표현주의라는 말에 적합한 유일한 작곡가라는 것이다.
[프라하의 봄]에 나오는 야나체크의 음악은 단순하고 가벼운 음악과 자기 존재를 정직하게 드러낸 표현주의적인 음악으로 구별된다.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가 전자라면 두 곡의 현악4중주는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나의 영화에 이렇게 서로 이질적인 표현법이 공존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시점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제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외피의 가벼움과 그 내면의 무거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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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2012년 8월 24일 네이버캐스트 / 박종호 글>
지구촌 테마여행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 - 체코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
여전히 아름다운 건축 전시장
한때 프라하는 서울에서 가장 먼 유럽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가까운 유럽 도시가 되었다. 2004년 서울에서 프라하로 가는 직행 항공편이 열렸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프라하로 가는 길이 참 멀었다. 육로로 가려면 독일의 드레스덴이나 뮌헨, 아니면 오스트리아의 빈을 거쳐서 가야 했는데, 길은 고달프고 국경에서 밟는 수속은 느려 터졌다. 세관원과 경관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방문객들에게 마구 쏘아 대며 다시는 체코에 오지 말란 듯이 빈정거렸으며, 운전을 직접 하면서 체코로 들어갈 경우에는 국경에서 경찰들이 어김없이 딱지를 뗐다.
그러나 그런 체코는 이제 없다. 프라하는 더 이상 동유럽의 낡은 소도시가 아니다. 프라하는 흔히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리지만, 사실 공산 치하에 있었다는 점을 뺀다면 동유럽보다는 서유럽적인 도시다. 지도를 보라. 프라하는 빈보다 더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도 동유럽의 중심이 아니라 전체 유럽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체코행 비행기가 뜨기 시작한 첫 주에 나는 체코로 향했다.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체코에 도착한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타고 프라하 시내로 들어간다. 기사는 서울에서도 택시를 몰아 본 적이 있는지, 전형적인 우리나라 택시 기사처럼 운전을 한다. 길이 막히면 주저 없이 샛길로 들어가며, 과속과 끼어들기는 기본이고 신호에 걸리면 마음대로 유턴도 한다.
시내로 들어가는 언덕을 넘으니, 아름다운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몰다우(체코 사람들은 블타바라고 부른다) 강변에 넓게 펼쳐진 화려하고 윤택해 보이는 도시는 온통 붉은 지붕으로 뒤덮여 있는데, 주변 숲과 잘 어울린다. 그 사이사이에 높이 올라와 있는 뾰족한 첨탑들. 원래 유럽의 첨탑이란 부富와 뛰어난 문화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프라하는 하도 탑이 많아서 한때는 ‘탑의 도시’라고 불렸던 곳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쇠락을 거듭했지만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아직 미색이 가시지 않은 중년 부인처럼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가지고 있다. 젊었을 때 프라하를 방문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히틀러가 은퇴 후의 노년을 프라하에서 보내기 위해 전쟁 중에도 이곳만은 폭격을 못 하게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프라하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건축물들을 가장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도시다. 유럽의 근대 건축사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파리나 빈보다는 프라하로 가는 것이 나을 정도다.
영광을 재개하기 위해 일어서다
그렇다면 이렇게 화려했던 프라하의 영광은 겨우 남아 있는 낡은 건축물들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가? 그 외에는 과거의 영광을 확인할 길이 없는가? 아니다. 프라하의 화려한 과거는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에 잘 집약되어 있다.
이 페스티벌은 세계 최고의 음악 페스티벌이며, 높은 수준과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이곳의 공연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프라하 시내에서 난무하는 《돈 조반니》 공연이나 싸구려 인형극, 그리고 정말 타락한 프라하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된다. 사실 프라하는 어디서나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도배하다시피 한 도시다. 그것은 이 오페라가 이 도시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인데, 《돈 조반니》를 팔아서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물론 《돈 조반니》같이 훌륭한 오페라를 제대로 잘 공연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여기서는 걸작의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그 이름을 이용한 싸구려 공연, 인형극, 기념품, 가게들만이 난무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라하가 모차르트의 도시는 아니다. 진정한 프라하는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페스티벌에는 아직도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와 야나체크, 쿠벨리크와 노이만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 음악 페스티벌이 한여름에 열리지만, 독특하게 봄에 열리는 음악제도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피렌체 5월 음악제’가 그 하나이고, 또 하나가 프라하에서 열리는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인 것이다.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은 매년 5월 12일에 시작해서 6월 1일에 끝나는데, 이렇게 날짜가 고정되어 있는 음악축제는 흔치 않다. 5월 12일에 축제가 시작되는 것은 그날이 바로 체코 국민 음악의 선구자인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매년 5월 12일 저녁에 오베츠니 둠(프라하의 시민회관)의 메인 홀인 스메타나 홀에서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의 개막이 선포된다. 이때 첫 프로그램으로는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의 전 6곡을 모두 연주하는 것이 전통이다. 이 개막 연주에는 항상 당대에 체코를 대표하는 지휘자가 지휘를 맡고, 역시 체코를 대표하는 악단인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이 연주를 하며, 현직 대통령이 스메타나 홀의 화려한 대통령 전용 발코니에 임석하는 것이 관례다.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은 1968년 당시 소련 침공에 대항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자유 민주화 운동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이전부터, 즉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부터 프라하에서는 이미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었다. 그리고 1968년 소련군이 탱크를 앞세워 프라하 시내를 침공했을 때에도 페스티벌은 거행되었다. 하지만 소련의 간섭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페스티벌이 그들의 민족정신을 내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이 지금과 같이 음악제뿐 아니라, 민족, 조국, 자유의 의미를 함께 천명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 구소련이 붕괴하고 체코가 민주화된 뒤부터다. 민주화 이후의 첫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은 1990년에 개최되었다. 그때 첫 지휘봉을 든 이는 공산 치하에서 떠나 오랫동안 서방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지휘자 라파엘 쿠벨리크였다. 그가 감격에 겨워 눈물을 쏟으면서 자신의 국민들 앞에서 수십 년 만에 연주한 곡은 <나의 조국>이었다.
조국을 되찾은 기쁨을 노래하라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은 독일에서 해방된 직후인 1946년에 독립을 기념하여 창설되었다. 그러므로 이 페스티벌은 독립의 깃발을 올리고 자신들의 나라를 찾은 것을 상징하는 행사로서, 체코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음악 페스티벌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페스티벌은 공산 치하에서도 계속 발전해서, 구동구권의 페스티벌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제적인 명성과 예술적 수준을 유지하는 음악제로 그 명맥을 이어 왔다.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냉전 당시 동구권에 속해 있었다는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그러나 체코가 개방되고 선진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우리나라 항공기가 프라하에 취항하는 등 우리나라와 교류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 역시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제 프라하 시민들은 ‘음악의 도시, 프라하’란 구호를 내걸고 자신들의 오랜 음악적 전통을 세계에 알리려고 한다. 그들에게 음악의 도시란 다만 빈이나 잘츠부르크만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가슴은 자신들의 음악 유산에 대한 자긍심으로 꽉 차 있다.
그러므로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은 세계의 모든 음악 유산들을 다 다루지만, 특히 자국의 음악을 많이 올리기로 유명하며, 자신들의 음악을 확실히 차별화한다. 오페라를 예로 들자면, 1950년 이후에 프라하 시내의 주요 극장에서 가장 많이 올라간 오페라들의 순위를 작곡가별로 분류하자면 1위가 스메타나, 2위가 드보르자크, 5위가 야나체크다. 이런 사례는 전 세계의 어떤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런던이나 파리에도 영국 오페라와 프랑스 오페라가 있지만, 공연 횟수의 1위는 당연히 이탈리아 오페라가 차지하는 것이다.
참고로 프라하에서 자주 상연되는 오페라의 순위는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베르디, 모차르트, 야나체크, 차이코프스키의 순이다. 2004년 한 해에 프라하의 주요 극장에 올라간 체코 오페라 작곡가만 조사해 봐도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야나체크, 마르티누의 빅 4를 포함하여 그 수가 무려 10명이 넘는 실정이다. 이렇듯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의 유구한 전통과 발전은 체코 음악에 대한 체코 사람들의 자긍심이 든든하게 뒷받침을 해 준 결과다.
세계의 음악 팬들이 다시 모여들다
2004년 5월에 있었던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사로서 세계 음악계의 관심을 끌었다. 즉 2004년은 체코의 위대한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로서, 그해의 페스티벌은 특별히 ‘드보르자크 서거 100주년 특집’으로 꾸며졌던 것이다.
2004년에도 페스티벌은 5월 12일 저녁 8시에 개막되었는데, 이리 쿠트가 지휘하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주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해에는 오케스트라가 바뀌었다)가 아름다운 오베츠니 둠의 스메타나 홀에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전 6곡을 감동적으로 연주했다.
그해의 여러 연주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끈 것은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의 콘서트였다. 그가 직접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를 지휘하면서 피아노도 치는 연주회는 모차르트와 바흐의 음악으로 꾸며졌다.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되었고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만 나는 콘서트가 열리는 루돌피눔으로 갔다.
공연장 앞에는 전 세계에서 온 음악 팬들이 혹시라도 반환될지 모르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장대비를 맞으면서 줄 서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음악을 향한 숙연한 자세를 보여 주었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줄을 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지루함을 잊기 위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 각지에서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의 열성적인 분위기로 보아서 아무래도 내게는 차례가 올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비겁하게도 진정한 음악 팬으로서의 고집을 꺾고 그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비 맞은 생쥐 꼴이 된 내가 택시를 잡아타고 다음으로 서둘러 찾은 곳은 바로 프라하 국립극장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그곳에서는 베르디의 레퀴엠이 공연되고 있었다. 쿠트가 지휘하는 프라하 국립극장 오케스트라가 이 장엄한 대형 성악곡을 연주했는데, 그날의 감동은 페라이어를 놓친 여행자의 마음을 달래 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요즘 유럽의 전위적 경향 중 하나인, 성악곡에 오페라처럼 연출과 무대 미술을 덧붙인 기획이었다. 전위적인 연출과 청회색조의 단순하고도 세련된 무대, 역동적인 군무는 레퀴엠을 감동적인 무대로 만들었다.
또한 레너드 슬래트킨이 지휘하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많은 호응 속에서 역동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내가 직접 들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1번은 백미였다. 또한, 그해에는 세계 정상의 고음악 전문가들이 대거 초빙되어 음악 팬들의 뜨거운 열광을 받았다. 즉, 트레버 피노크, 호르디 사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등의 고음악 대가들이 동시에 프라하에 모여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의 위력을 실감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한 단계 도약하는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
2005년의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은 새로운 봄으로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이 해에 의미 있는 60주년을 맞은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은 체코 음악과 체코 연주자들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서 세계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개혁은 바로 개막 연주였다. 그동안 항상 체코 필하모닉 등 체코 오케스트라들이 개막 연주를 하는 오래되고 당연시되던 전통을 깨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외국 오케스트라가 개막 연주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앞으로도 계속되어 이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나의 조국>을 연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 출발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몫으로 돌아갔다. 런던 심포니는 영국의 대표적인 거장 지휘자인 콜린 데이비스의 지휘로 2005년 5월 12일 유서 깊은 오베츠니 둠에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전곡을 그해 페스티벌의 첫 곡으로 연주했다. 그 뒤를 이어 체코의 여러 오케스트라들이 오베츠니 둠과 루돌피눔 등에서 공연했다. 참가한 악단들은 런던 심포니 외에도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라하 챔버 오케스트라, 탈리히 챔버 오케스트라, 콜레기움 1704, 체코 챔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르페오 바로크 오케스트라, 야나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크 챔버 오케스트라, 프라하 방송 교향악단, 프라하 필하모니아,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으로, 그 이름만 들어도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오케스트라 콘서트의 대미는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영웅>과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8번을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것이었다. 물론 많은 독주자들과 실내악단들도 60주년을 맞은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을 함께 축하했다.
오장오색(五場五色)의 화려한 향연
연주도 좋지만 프라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극장이다. 프라하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장이 무려 5곳이나 있다. 그런데 단순히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5곳 모두 자신들만의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서 활발히 활동하는 유기적인 단체들이다. 이 5개의 극장이 바로 프라하의 음악적 향기를 유지하는 중심지다.
이런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예이니, 과연 이곳은 빈에 못지않은 세계적인 음악 도시인 것이다.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 역시 이 5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콘서트를 올린다. 그러니 프라하에 들를 때면 이 다섯 극장의 순례를 꼭 빼놓지 말기 바란다. 그 장소들은 바로 오베츠니 둠, 루돌피눔, 프라하 국립극장, 에스타테스 극장, 프라하 국립 오페라 하우스다.
물론 가장 중요한 곳은 앞서 설명한 오베츠니 둠으로서, 이곳에서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이 개막된다. 1911년에 문을 연 이 건물은 종합 문화 센터 같은 곳이다. 정문 위에는 ‘프라하에 충성을’이라고 쓰여 있으며, 1918년에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한 의미 깊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오베츠니 둠은 건축적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유럽 전역에 남아 있는 아르 누보 형식의 건축물들 중에서도 손꼽는 건물이며, 특히 인테리어가 최고로 평가된다. 체코가 자랑하는 화가이자 장식 미술가인 알폰스 무하가 이곳의 실내장식과 벽화, 천장화를 맡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음악뿐 아니라 무하의 예술적 향취를 만끽할 수 있다. 이곳에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여러 시설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최고의 연주장이자 메인 홀은 바로 2~3층에 걸쳐 있는 스메타나 홀이다. 스메타나 홀은 현재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몰다우 강변에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인 루돌피눔이다. 1884년 합스부르크가의 지원을 받아서 당시 황태자인 루돌피눔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건물 앞 광장에 드보르자크의 동상이 기품 있게 서 있는 이곳은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건물 앞의 광장과 그 옆으로 흐르는 몰다우 강 등이 있어서, 공연이 없는 화창한 날에는 나그네의 휴식처 역할을 해 준다. 루돌피눔의 메인 홀은 오베츠니 둠과 쌍벽을 이루는 프라하 제2의 콘서트 홀로서, 이름은 드보르자크 홀이다. 드보르자크 홀은 현재 체코 제1의 악단인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홈 그라운드다.
그리고 프라하 국립극장이 있다. 이곳은 체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세워진 역사적인 장소다. 이 극장이 세워지기 전의 체코 공연계는 독일 음악 일색이었으며, 오페라조차 독일어로 올리는 등 독일 속국이나 다름없던 문화적 종속 시대에 있었다. 이에 체코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진정한 민족 음악을 올리기 위해 체코 음악 전용 극장을 세우기로 했다. 즉 그들은 마치 ‘우리나라의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범국민적 행사를 열어서 엄청난 성금을 모았고, 그 결과 지금의 국립극장이 세워진 것이다.
몰다우 강가에 화려하게 서 있는 이 거대한 신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처음 개관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스메타나가 귀국을 했다. 그는 스웨덴 등의 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모두 포기하고 기꺼이 고국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조국을 위해 쓴 《팔려 간 신부》를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체코어 오페라다. 그러니 이 국립극장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활성화된 체코 오페라의 효시이자 산실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체코 문화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극장에는 체코 제3의 오케스트라인 국립극장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다.
프라하의 네 번째 극장은 바로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 무대였던 에스타테스 극장이다. 구시가지 한복판에서 작고 아름다운 장식물들을 여전히 보존하고 서 있는 이 극장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가 세계 초연되었던 장소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사흘이 멀다 하고 《돈 조반니》를 올리고 있지만, 사실 그 공연들은 관광객들을 겨냥한 것으로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안으로 들어가면 넓지는 않지만 과거의 인테리어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푸른빛의 실내장식은 마치 모차르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끝으로 프라하 제5의 극장이 프라하 오페라 하우스다. 이곳은 유서 깊은 극장으로 과거에는 독일 극장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체코가 자랑하는 유명 성악가들이 다 서방으로 빠져나가서, 현재는 국내용 가수들의 경연장으로 유럽에서는 2류 극장으로 취급받고 있다. 그래서 이곳의 공연은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 기간에 올라간다 해도 이 극장의 시즌 공연일 뿐, 페스티벌과는 상관이 없으므로 방문객들은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 사실 과거 체코슬로바키아는 세계적인 성악가들을 무수히 배출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스타들, 즉 에디타 그루베로바, 마그달레나 코제나, 에바 우르바노바, 페터 드보르스키 등은 더 이상 이곳에 없다. 재능 있는 그들은 훨씬 대우가 좋은 빈이나 뮌헨, 취리히 등으로 다 떠나 버리고, 안타깝게도 지금 오페라 하우스의 복도에는 그들의 사진만 걸려 있을 뿐이다. 이 극장의 부흥을 기대해 본다.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의 자취를 찾아
또한 음악 팬이라면, 극장 외에도 빠뜨리면 안 될 음악 박물관이 두 곳 있다. 바로 스메타나 박물관과 드보르자크 박물관이다.
스메타나 박물관은 몰다우 강가의 유명한 카를 다리 옆에 있다. 원래는 수도 시설을 관장하기 위한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용도가 바뀌어서 1층은 식당이고 2층은 박물관이 되었다. 스메타나가 사용하던 악기와 악보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특히 그가 쓰던 안경들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 건물에서 가장 좋은 장소는 강이 바라보이는 북향의 창문으로,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의자가 놓여 있는데, 거기에 앉아 프라하 성을 바라보면서 책을 읽거나 편지를 써 보라. 단언하건대 최고의 명문장이 나올 것이다. 설혹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프라하에서 보낸 최고의 시간이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박물관이 드보르자크 박물관이다. 구시가를 벗어난 신시가에 외따로 떨어져서 주택가 안에 있는 건물인데,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단독 저택이다. 내가 그곳을 방문했던 날은 하필이면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드보르자크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조촐한 행사가 건물 뒤편에 있는 작은 마당에서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제법 그럴듯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바람에, 마치 외국에서 온 기자인 양 들어가서 마음껏 사진을 찍으면서 박물관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2층에서는 비록 대부분이 복제품들로 보이지만 어쨌든 드보르자크 생전의 방을 복원해 놓은 공간을 볼 수 있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오전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드보르자크가 썼다는 책상이 있는 방에 들어가자, 마침 스피커에서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이 흘러나왔다. 나는 혼자서 나무 의자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나를 방해하기 전까지 들었던 것은 비록 한 악장에 불과했지만, 첼로 협주곡은 긴 여정에 지친 나그네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 줄 만큼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꼭 한 번 들러 보기를 권한다.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생각
2004년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 따로 있으니 바로 나고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다.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권 오케스트라가 공식 게스트 오케스트라로 선정된 것이다. 처음 프로그램을 본 나는 “아니, 여기까지 와서 겨우 나고야 필이나 듣고 있어야 하나” 하면서 운 없는 스케줄에 한탄을 했지만, 스메타나 홀에 들어갔을 때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먼저 로비를 가득 채운 나고야 시청 관계자들과 일본 음악 팬들의 위세에 기가 눌렸다. 일본에서 여기까지 날아온 그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일본 악단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를 표정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지휘자 토마슈 하누스가 지휘하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2번과, 카렐 코사레크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끝났을 때, “와!” 하는 탄성을 지르면서 먼저 기립한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아니라 유럽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고서야 조심스러운 일본인들은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하모니에 에너지가 넘치는 놀라운 연주였다. 이는 한두 명의 독주자가 외국 무대에 선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나고야라는 한 지방 도시의 오케스트라가 그날 보여 준 연주는 바로 일본 사회 전반의 두터운 예술 수준을 전 세계에 알리는 쾌거였다. 예술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투자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넓은 저변이 부러울 뿐이었다. 우리나라의 오케스트라는 언제나 이 음악 도시에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휘날리게 될까? 프라하까지 와서 나는 졸지에 조국을 떠올렸다. 서울의 봄은 언제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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