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2011.01.23.
올겨울 정말 징그럽게 춥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 뜨끈한 매운탕도 아니고 차가운 생선회가 웬 말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생선이야말로 채소 못지않게 철 따라 맛이 현격하게 달라지니 생선 자체의 맛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게 되는 생선회는 그야말로 제철을 따져야 제대로 맛을 즐길 수 있다.
우리 집은 해물 매니어인 남편 때문에 겨우내 해산물이 떨어질 날이 없는데, 겨울에 가장 즐겨 먹는 생선회는 숭어회와 방어회다. 값도 많이 비싸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겨울에만 이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숭어는 흰 살 생선이다. 슈베르트 가곡 속의 주인공이 숭어가 아니고 사실 송어라는 것은 다 아실 것이다. 송어는 약간 넓적한 민물고기고 숭어는 강 하구에서부터 바다의 연안까지를 오가면서 사는 바닷고기다. 몸이 둥글고 긴 원통형으로 생겼다. 슈베르트의 가곡 가사에서 ‘거울 같은 강물에’ 뛰논다는 그것은 민물고기인 송어가 분명하다. 송어는 양식으로 키워 민물생선의 회로는 비교적 대중화됐다. 한겨울에 자연산 송어 낚시를 즐기는 진짜 매니어들도 있다. 송어 살은 약간 노리끼리한 감이 도는 분홍색이어서 회를 떠놓은 것만 보아도 금세 구별이 된다. 그에 비해 바닷고기 숭어는 살이 하얗고 깨끗하며, 회를 떠놓으면 등 쪽의 빨간 살이 투명하게 흰 살과 어우러져 매우 예쁘다.
숭어회는 흰 살 생선 특유의 맑은 맛이다. 광어회가 비교적 지방이 많은 고소한 맛이라면, 숭어회는 그보다 훨씬 맑고 쫄깃하다. 하지만 이 맛이 제대로 나는 계절은 오로지 겨울뿐이다. 대개 11월부터 2월까지를 숭어의 제철로 본다. 겨울이 지나버리면 숭어의 쫄깃한 맛은 현격하게 떨어지고 여름 숭어는 맛이 아주 싱겁다. 게다가 여름에는 흙내나 기름내 같은 잡냄새가 많이 생기니 당연히 여름에는 별로 먹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오로지 이 겨울만 숭어 살은 탱탱해지고 맛도 달착지근해진다.
오죽하면 시인 안도현이 ‘숭어회 한 접시’라는 시를 썼겠는가. 눈 내리는 날 찾아간 군산의 밤바다에서 맛보는 숭어회 한 접시의 맛을 기막히게 그렸다. ‘싸드락 싸드락’ 눈 밟는 소리를 표현한 첫 부분부터, 오돌오돌하다고 할 만큼 쫄깃거리는 숭어회의 질감을 연상시킨다. ‘세상은 혁명을 해도/ 나는 찬 소주 한 병에다/ 숭어회 한 접시를 주문하는 거라’ 하는 구절은 포장마차에 앉아서 ‘조근조근 따지듯이 숭어회를’ 써는 주인 아줌마의 손목을 바라보다가 가끔 ‘바다야 너도 한잔 할래?’ 하며 바깥의 밤바다에 눈을 돌리는, 싸한 겨울밤 풍경과 그윽하게 어울린다.
겨울 숭어는 매운탕을 해도 좋다. 다른 생선들처럼 회 뜨고 남은 부분으로 서더리탕을 끓일 수도 있다. 단 그때에도 머리는 넣지 말아야 한다. 다른 생선들은 머리 부분이 가장 맛있지만, 숭어만은 머리에서 특유의 흙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떼어버리고 끓이는 것이 좋다.
숭어회보다 좀 더 진한 맛을 원하는 사람은 방어회를 찾는다. 방어는 등이 푸른 붉은 살 생선이니 맛이 훨씬 진할 수밖에 없고, 고등어나 삼치가 그렇듯 겨울에 기름기가 올라 더 고소해진다. 참치회는 늘 냉동된 것을 먹게 되니 그 맛을 비교할 수도 없고, 고등어회보다는 덜 부드럽고 덜 고소하나 대신 살이 탱탱해 질감이 좋다.
무엇보다 방어는 모두 자연산이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자연산 생선회는 아마 방어밖에 없는 듯하다. 참치처럼 두툼하게 생긴 생선이라 한 마리 떠놓으면 양도 아주 푸짐하고, 몇 점 먹으면 회로 배를 채웠다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울산의 방어진이란 항구는 방어가 많이 잡혀 그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데, 이제는 중공업의 일번지가 되었으니 방어 같은 것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방어’ 하면 제주도다. 제주도 모슬포에서는 제철이 시작되는 늦가을에 방어 축제를 하고, 매니어들은 겨울에 제주도까지 날아가 배를 빌려 방어 낚시를 한다.
살짝 붉은 색이 도는 속살을 한 점 집어 입에 넣는다. 나는 회를 먹을 때 초고추장 찍어 상추에 싸 먹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맛있는 생선살을 왜 채소와 고추장 맛에 기대어 먹는단 말인가. 그에 비해 생선 맛이 그대로 살아가는 고추냉이를 곁들인 간장을 더 선호한다. 그런데 나보다 입맛이 한 급 위인 남편은 된장과 고추장, 식초를 적절히 섞은 된장초장이나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은 양념간장이 붉은 살 생선에는 제격이란다. 가끔 참치회처럼 김과 참기름에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방식은 김과 참기름 냄새가 너무 강해 방어회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게 한다.
방어회의 맛은 입에 짝 붙는다는 표현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달착지근한 감칠맛, 지방의 고소한 맛에 쫄깃거리는 겨울 생선의 질감까지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어쩌면 살이 이토록 차질 수 있을까. 등 부분의 살도 이 정도인데, 방어 뱃살까지 맛을 보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라 할 만하다. 뱃살은 더 고소하고 그 촉감은 아삭거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방어는 워낙 살이 많아 자그마한 것 한 마리도 둘이 먹기에는 버거울 정도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 저녁에 회를 떠오면서 살을 얇게 썰지 말고 살덩어리를 그대로 달라고 부탁한다. 방어회는 약간 도톰한 것이 먹기 좋으니, 집에서 아마추어들이 썰어도 괜찮다. 저녁에 먹을 만큼 썰어서 먹고, 나머지는 비닐 랩에 싸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음 날인 일요일 점심 때 한 번 더 썰어 먹는다. 하룻밤 동안 재운 방어회는 부드럽게 숙성돼 있어 갓 잡은 쫄깃한 맛과는 또 다른 매력을 준다. 일요일 대낮부터 따끈한 청주로 반주를 하게 되는 게 문제일 뿐.
첫댓글 잘먹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