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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 II
1911
파리에서의 작업은 이전의 러시아 시기의 작품과 많이 틀린 양상을 나타냅니다.
고전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요소 들이 대거 빠져버리고 그곳에 표현주의적인 자유분방함을 채웁니다,
당시의 파리는 과거 고전주의의 미약한 세력앞에 야수파(이미 야수파들도 한물 지난 그림 취급을 받았었습니다,)와
1900년대 초반 활발하던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력이 파리등에 활발히 펼쳐져 있어서 기존의 화풍의 질서를
무너뜨리던 시기였었고 이미 피카소와 브라크가 입체주의적 작품을 발표했었던 시기 였으며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가 이미 1907년에 완성 되었습니다,)
또한 1910년부터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미래파 운동이 불붙기 시작할때였습니다.
Reclining Nude
1911
이시기의 샤갈의 그림에서 위에서 말한 여러 유형의 유파들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수 있을겁니다.
위의 그림에서만 보더라도
좌측 붉은 커텐과 화분 받침과 침대의 시점등에서 보이는 세쟌의 향기
침대 문양과 중앙 화분에서 보이는 마티스풍의 야수적 이미지
여인의 형태에서 볼수있는 입체주의적 표현법
좌측 침대의 나이프 워크에서 보이는 표현주의적 방법
이시기는 그가 새로운 회화양식의 집결지였던 파리에서 스펀지 처럼 여러 가지 양식을 자신의 화폭안에서
적용하고 실험 하던 시기임을 알수 있습니다.
To Russia, with Asses and Others
1911
위의 그림은 마치 페르낭 레제나 말레비치의(아래 그림 참조)1910년대 작품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지만
샤갈 특유의 감수성과 개성이 뚜렷하게 남아있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폴리네르가 초자연주의같다고 표현했던 샤갈의 작품들이 10년이 흘러 나타난 초현주의작품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추었을지는 이작품 하나만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 것입니다.
Kazimir Malevich
Description | Taking in the Rye Kazimir Malevich 1911.jpeg
English: "Taking in the Rye" (also known as "Taking in the Harvest"), oil on canvas. Courtesy of the Stedelijk Museum, Netherlan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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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11(1911) |
Source | |
Author |
Kazimir Malevich |
Adam and Eve
1912
위의 작품은 당시 파리를 휩쓸던 입체주의의 광풍에 샤갈 역시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반증일것입니다.
이후 그는 이러한 과도한 입체주의적 표현법에서 훨씬 자유롭게 되지만 이러한 면의 분할과 구성법은 오랜기간 그의
작업에서 그 흔적을 찿아 볼수 있습니다.
Picasso
Portrait of Daniel-Henry Kahnweiler, 1910,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Picasso wrote of Kahnweiler What would have become of us if Kahnweiler hadn't had a business sense?
The Soldier drinks
1912
아래그림은 말레비치의 종합적 입체주의 양식으로 그린 모스코바의 영국인이란 작품 입니다.
비논리적 특성인 말레비치의 기념비적 작품과 샤갈의 위의 그림을 비교해 볼때 양식적인 면에서
두 그림은 많은 부분이 닮아있을 알수 있습니다.
양식적인 면에서 입체주의적 양식의 많은 부분을 차용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두 그림은 거의 닮은 부분이 없다는것도 알수 있습니다.
말레비치는 기호와 의미없는 상징으로 일관된 작업을 하지만
샤갈은 어른이 그린 동화같은 모습입니다.
전장에서는 자신의 생존을위해 적군의 목을 베고 총을 쏘는 병사이지만
술잔을 앞에 둔 병사의 테이블 위에서 그는 전장의 참혹함도 살육의 공포도 느끼지 않는듯 합니다.
병사는 따뜻한 벽난로와 아름다운 아내가 있는 그의 집을 떠올리며 그는 아내와 추던 춤과 그때의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 입니다.
Kazimir Malevich
Artist |
Kasimir Malevich |
Title |
Englishman in Moscow |
Date |
1914(1914) |
Medium |
Oil on canvas |
Dimensions |
088 × 57 cm (34.65 × 22.44 in) |
Current location |
Stedelijk Museum |
Amsterdam, Netherlands | |
Source/Photographer |
Feast Day (Rabbi with Lemon)
1914
그는 1915년 평생의 반려자인 벨와 결혼 합니다.
한참 연애시기이던 1914년 그의 그림은 양식적인 면에서 그리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갑자기 상승하는듯한 느낌입니다.
물론 가정환경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던 벨라와의 사랑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두사람은 결혼으로 맺어지고
두사람의 핑크빛 사랑의 영향 때문인지 그의 그림은 더욱 밝게 빛나고 탄탄해지기 시작 합니다.
위의 축제일 이라는 작품을 보며 갑자기 베이컨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듯 합니다.
물론 작품의 의도와 내용적인 면에서는 전혀 상이한 작품 이지만 형식적인 면에서 베이컨은 샤갈을 많이 닮아 있습니다.
Francis Bacon
1825 Dominique Ingres, Oedipe et le Sphinx, 1808-25
On 25th July, 1915, Chagall married Bella(1895-1944)
The Birthday
1915
사랑하는 여인의 생일날
샤갈은 그녀에게 예쁜 꽃다발과 기습적인 키스를 날립니다.
그는 벨라 주변의 공기이며 햇살이자 또다른 하지만 똑 같은 영혼 입니다.
The Poet Reclining
1915
결혼한해인 1915년의 작품중에는 유난히 그의 그림에서 분홍빛이 많이 감도는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화면 하단에 무엇인가 갈망하는듯 갈증에 목메어 메마른채 누워있는 시인은 샤갈 자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왠지 불쌍해 보여야할 시인이 그다지 가여워 보이진 않습니다.
Peasant Life (The Stable; Night; Man with Whip)
1917
1917년 그의 모국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그의 그림에서도 혁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 합니다.
위의 샤갈답지 않은 셩직된 구조의 그림은 그가 핍박받는 노동자의 삶을 그려낸것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채찍을 든 남자와 위축되 보이는 여인의 모습등이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직선과 원의 구도가 단순하면서 강렬 합니다.
그는 모국에서 교직에서 후배를 양성하는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지만
애초부터 그의 작업과 혁명의 이상과 논리는 맞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1922년 그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듬해인 1923년 파리로 옮기게 됩니다.
Peasant Life
1925
몇년간의 러시아 생활에서 그의 작업은 잠시 방향성을 돌리는듯 보이지만 파리 정착후 다시 예전의 그의 작품 세계를
구축 하게 됩니다. 꿈과 사랑과 자유가 충만한 어른의 동화세계속으로 다시 몰입합니다.
이제는 그의 작업속에서 초기의 큐비즘 적인 요소는 대부분 사라지게 되고
외면의 형태 재현이나 일부 남아있던 구도의 관습에서도 해방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외형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흡수 되기도 하는등 자유로워 지고
화면 구석 구석에 그의 특유의 은유와 상징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색상은 더욱 환상적으로 빛나기 시작 합니다.
The Rooster
1929
샤갈은 늠름한 수닭이 되어 그의 사랑하는 부인 벨라를 업고 힘차게 걸어갑니다.
벨라는 온몸을 그에게 의지하며 마치 꿈을 꾸는듯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뒷편의 배를 탄 두연인은 또다른 샤갈과 벨라일 것입니다.
어느 안개낀 아침 호수가를 노저어가며 느낀 감상을 샤갈은 이렇게 표현한듯 합니다.
수닭의 얼굴을 자꾸 보니까 샤갈과 조금 닮은듯도 합니다,
The Acrobats
1930
붉은 옷을 입고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 여인은 샤갈이 어렸을때부터 보아오던 동네 서커스단의
어느 소녀였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그림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것은 어쩌면 어릴때 부터 보아왔던
떠돌이 서커스단의 곡예공연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소녀의 볼에 키스하려는 사람은 바로 어라린 샤갈의 모습이기도 할 겁니다.
Lovers in the Lilacs
1930
라일락 꽃향기에 취해 길게 누운 두 연인은 지금 이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입니다.
강위에서 비추는 보름달은 역시 똑같은 자신을 강위에 품고있습니다.
샤갈의 그림에서 연인은 항상 혼자가 아니듯 달 또한 혼자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White Crucifixion
1938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힘을 그린 이그림은
많은 화가들이 평생에 한번 정도는 그리고 싶어하는 소재 입니다.
르네상스의 대가들부터 시작해서 중세 시대의 대부분의 거장 그리고 근대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 까지
심지어 고갱도 바로 Crucifixion를 소재로 작품을 남겼습니다.
샤갈 역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중심으로
인간들의 소소한 일상과 잔인함등을 화면 곳곳에 배치하여 그의 죽음을 애도 합니다,.
이전의 Crucifixion화와 조금 다른것이 있다면 샤갈은 유대인이었다는것, 그래서 예수의 표현이
이전의 카톨릭신자들이 그려낸 예수의 모습과 복식등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난다는 점 입니다.
Emil Nolde
The Three Candles
1940
세개의 촛불에 대한 의미를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카톨릭 문화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에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부합되지가 안않았고
제가 유대교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확실한 해석이 가능했을테지만 그렇지 못한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그림은 1940년에 완성은 했지만 발표는 샤갈의 아내 벨라가 사망한 후에 되었습니다.
떨어지려는듯 위태로워 보이는 천사의 모습과 무엇인지 안타까워 보이는 지상의 사람들의 모습들
무엇보다 벨라로 보이는 흰색옷의 여인을 간절하게 안고있는 남자(샤갈)의 모습을 볼때
이그림은 죽은 벨라를 위해 다시 재작업이 된 그림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제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카톨릭에서 세개의 촛불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만약 샤갈도 이러한 관점에서 촛불을 그렸다면 그는 죽은 벨라에 대한 한없는 아쉬움과 슬픔을
그리고 다시 살아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신에게 향한 바램과 기도를 이그림을 통해 표현했다고 볼수 있을 겁니다.
L'Obsession
1943
2부에서는 벨라가 사망한 1944년부터 그의 말년의 작업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휙, 스크롤바를 내리고 댓글부터... 감사하다고요... 자꾸 읽어도 잊어버리는 까먹기대장아줌니가 시간을 좀 많이 내서 다시 봐야겠어요... 음,,, 토욜날 꼭 참석하고 싶은데... 될지 모르겠어요.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피카소와 모던아트전에서 샤갈의 그림을 보았는데 그야말로 동화같았어요.
좋은글이네요...많은 도움되었습니다.
전 스터디방에서 샤갈 1,2부 다 보았습니다..ㅎㅎ무중력 상태로 날아 볼 생각입니다~~
좋으시것어유 소모임 스터디방 자료두 보시구. 전 아직 우수운 회원이 못된지라... 너무 멀리 날아가진 마세요.
달님보다 아주 쬐끔만 더 날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