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군사명저] 존 스토신저의
『전쟁의 탄생: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국가지도자의 오만·오판이 전쟁을 부른다
 
“정확한 현실 인식은 전쟁을 회피하고, 잘못된 인식은 전쟁을 서두르게 해”
전쟁 감행하려는 자에게 경고 메시지
1975년 출판…11판 간행한 고전, 전쟁 원인·발발 과정 생동감 있게 묘사
인상적인 문체로 지혜로운 통찰 제공
 
존 내시(John N. Nash, 1893~1977). 「돌격, 앞으로」(1918). 캔버스 유화. 79.8 × 108cm.
영국전쟁박물관 소장. 존 내시가 그린 이 작품은 서부전선에서 적진을 향해 돌격한 영국 군인들의 모습을 인상주의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병사들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소모전을 느낄 수 있다. 이 세계대전에 유럽의 거의 모든 제국이 참전하면서 모든 전쟁과 갈등을 끝내기 위한 전쟁으로 일컬어졌다. 러시아에 대한 독일의 경멸과 무시,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불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허세, 러시아의 허풍이 상호작용하면서 전 세계는 미증유의 세계대전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4년간의 전쟁으로 1천만 명 이상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John G. Stoessinger. 2011(1975). Why Nations Go to War, 11 Edition.
Cengage Learning | 임윤갑 옮김. 2009. 플래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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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이들이 부단히 탐색해온 주제다. 그러나 인류는 여전히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쟁의 발발 원인과 과정은 너무 개별적이어서 보편적인 원인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전쟁의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한 연구는 인류의 역사 연구와 같이 시작됐다. 역사학의 기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헤로도토스의 『역사』(BC 440년경)나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BC 410-400)는 모두 당시의 전쟁 기원과 전개 과정을 다루고 있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손무의 『손자병법』은 서기전 500년경 집필되어 통치자들의 필독서로 읽혔다. 『삼국지』 또한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전쟁을 모르고는 국가를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된 주제에 대해 우리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갖지 못한 원인을 무엇일까. 많은 연구자들은 전쟁의 복잡성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6·25전쟁에도 참가한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왈츠(K. Waltz)는 전쟁의 다양한 원인을 호전적 인간 본성, 팽창적 국내 체제, 무정부적 국제 체체라는 세 가지 이미지로 정리했지만, 전쟁의 수많은 원인과 경로에 대해 ‘과격한 단순화’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이 전쟁을 일으키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스토신저의 주장은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다. 20세기 이후 8개의 주요 전역을 다루면서 저자가 내린 결론은 “20세기에 전쟁을 시작한 어떠한 국가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항복했고 히틀러는 자살했다. 일본 역시 패전의 책임을 져야 했고 1950년 불법 남침한 김일성 역시 적화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에 뛰어든 미국은 지독한 열패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스라엘을 4차례나 공격했지만 아랍 국가들은 자신의 영토만 빼앗겼다. 여성 총리를 우습게 보고 인도를 공격했던 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를 잃었다. 쉽게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 이란과 쿠웨이트를 공격했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그 어느 전쟁에서도 승리하지 못했고, 인종청소를 벌였던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도 비극적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의 운명 역시 그리 분명하지 않다. 전쟁은 끝났지만 3000명 이상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고 2만 명이 부상했다. 또한 4만 명의 이라크인이 죽었고 전쟁 비용만 1조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그럼에도 이라크는 여전히 내전 중이다.
개전의 책임과 승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이러한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전쟁을 감행하려는 이들에게 던지는 중요한 경고이다. 아무리 압도적인 전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결전의지로 무장하고 저항하는 게릴라를 완전히 제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베트남에서 미국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이 경험했던 참혹한 실패였다. 그리고 다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의미는 실패할 전쟁을 왜 일으켰는가 하는 점이다. 스토신저는 국가지도자의 성격과 잘못된 지각(misperception)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쟁 발발에 연관되어 많은 요인이 작용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정책결정자들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전쟁의 원인으로 간주돼 왔던 민족주의, 군국주의, 또는 동맹체제와 같은 추상적인 힘의 역할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결국 정책 결정의 당사자인 국가지도자의 성격과 현실인식이 전쟁발발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잘못된 생각은 크게 4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우선, 전쟁을 일으키려는 지도자들은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있다. 그들은 단기 결전을 통해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을이 되기 전에 승리하리라 자신했던 히틀러나 2개월이면 남한을 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김일성이나 다 마찬가지다. 베트남에 뛰어든 미국이나 이란을 공격했던 후세인 모두 잘못된 상황 인식을 하고 있었다.
국가지도자의 잘못된 지각
이들은 상대에 대해서도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나 문화적 멸시는 객관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베트남에서 미국은 아시아 공산주의에 대해 무지했다. 아랍과 이스라엘,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전쟁은 상호경멸과 증오가 작용했다.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함으로써 잘못된 정책 결정을 낳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전쟁에 임하는 지도자가 적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높다. 상대에 대한 불신의 결과로 객관적인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모두 깊은 상호불신에 차 있었다. 상대가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병력 총동원령을 내렸고, 이러한 사실이 상대의 두려움을 자극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은 것이다. 이라크가 보유한 대량살상무기가 미국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전쟁을 감행했던 미국의 사정 또한 마찬가지다.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
적의 능력(혹은 상황)을 잘못 인식하는 것도 전쟁의 원인 중 하나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과 같이 상대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1914년 독일이 러시아 힘을 얕잡아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맥아더는 중공군의 전력을 우습게 봤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전쟁을 회피하는 반면 잘못된 인식은 전쟁을 서두르게 하는 것”이다.
스토신저는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역사는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외교정책을 결정한다. 이들은 지혜롭게 혹은 어리석은 정책을 만든다. 전쟁 이후에 역사가들은 종종 전쟁을 뒤돌아보고 운명이나 불가피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결정주의는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은유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의 생애는 자유의지와 자기 결정이 있을 뿐이다.”
다소 오래전인 1975년에 출판되었지만 전쟁의 원인과 발발 과정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우리에게 지혜로운 통찰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고전적 지위를 갖고 있다. 이미 11판이나 간행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보여준다. 인상적인 문체와 뛰어난 번역 덕분에 술술 읽히는 게 큰 장점이다. 결론 부분인 1장 ‘국가는 왜 전쟁을 하는가’만 읽어도 핵심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만 본문을 두루 읽기를 권한다. 현대전의 발발을 이처럼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 책도 발견하기 어렵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 교수>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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