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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를 일곱 번 돌게 하시고 무너지게 하신 뜻
여호수아 6장 15절 – 21절 2026년 9월 6일 주일 오전 말씀지
구약에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신약에 복음서와 같고 여호수아서는 신약의 사도행전과 같습니다. 아담 때 가죽옷 구원을 입혀 생명나무의 실과인 영생을 그 손을 들어 따먹지 못하게 내어 쫓으신 후 아브라함 때에 가나안에 들이사 감사로 열매맺게 자손들을 낳게 하신 생명 역사가 창세기요 그 은혜를 잊어버린 야곱의 식구들을 요셉 때 애굽에 내려가게 하셨다가 유월절 십자가 구원으로 나오게 하사 홍해(물세례)를 건너게 하신 역사가 출애굽기요 건너게 하사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사 연단하신 것이 민수기요 여호수아로 담대하게 하사 기어코 가나안에 들이사 1. 요단강(성령세례)을 건너게 2. 할례를 행하게 3. 볶은 곡식을 먹게 4. 신을 벗게 하시고 여리고를 무너뜨려 주시고 5. 가나안 족속과 싸워 이기게 하사 6. 기업을 주사 마음껏 열매와 생명 역사를 이루게 하신 역사가 여호수아서입니다(신랑 예수).
애굽에 나오게 하실 때 먹게 하신 양식은 신령한 젖인 구원의 복음으로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알게 하셨고 광야에서 먹이신 양식은(예수 그리스도) 만나로 자라게 하시려 하늘에서 내리신 생명의 떡으로 은혜의 복음입니다. 요6:51-
여호수아 때 먹게 하신 수5:11에 볶은 곡식은 단단하여 장성한 자가 먹고(그리스도 예수) 가나안에 꿀은(신랑 예수) 요나단처럼 강하게 하시는 영광의 복음입니다. 삼상14:27-
영광길 가게 하시려 나를 강하게 하사 이기게 하시려고 주시는 여호수아서의 말씀, 오늘의 양식입니다. 말씀을 차례대로 양식으로 받았다면 이제 하늘의 영광과 상을 얻게 하시려 가나안 기업이 있는 요단 서편을 보게 하시고 들어가게 하시는데 이미 두 지파 반처럼 동편을 택하는 고집을 부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첫 번째 여리고 성은 영적으로 다시 세상을 고집하는 마음이요 율법을 내가 지키려는 고집이요 기도를 앞세우는 고집이요 때마다 날마다 주시는 양식을 여러 핑계를 대고 받지 않는 고집입니다. 마22:5-
이런 고집은 여리고 성과 같이 견고하여 쉽게 무너지지 않는데 그래서 일곱 제사장으로 일곱 나팔을 잡고 그 성을 새벽마다 돌게 하셨는데 일곱 나팔은 때를 따라 주시는 양식입니다.
15절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뿐이었더라 제 칠일 새벽에 일찍이 마지막 날 칠일은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날입니다. 새벽에 반드시 도우시는 하나님이요 영을 앞세워 살기 원하는 자들을 새벽에 깨우사 각자의 여리고가 무너지는 그 역사가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이 말씀에 순종하여 기쁨으로 성을 도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은 쉽지만 두 번, 세 번 반복될수록 힘이 드니 짜증과 불평과 원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너뜨려 주실 줄 믿고 감사하며 일곱 번 도는 자에게는 소망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 수로 항상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기어코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시12:6-
일곱 수는 성경 여러 곳에 나옵니다. 1. 창2:1에 일곱째 날 안식하는 자에게 복을 주사
7년마다 안식년, 50년에 희년도 주십니다. 레25:8-
2. 왕상18:41-44에 엘리야로 머리가 무릎 사이에 들어가는 자세로 일곱 번 기도하게 하시고 비를 내리셨습니다. 일곱 번은 이루실 때까지 계속 기도하는 자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3. 왕하5:10에 엘리사로 존귀한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하였는데 누구나 한번은 쉽지만 일곱 번까지 하기란 모든 자존심을 다 버려야 하니 쉽지 않습니다.
4. 시119:164에 하루에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찬양하는 삶입니다. 일곱 번 하니 이제 습관처럼 되는 것입니다. 한 주간 새벽을 깨우는 것을 시작하면 그다음 주간은 쉽고 이제 습관이 되는데 쉬지 않고 항상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려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눅22:39-
5. 마18:21-22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영광길을 갈때에 나를 방해하는 자들은 원수인데 일흔 번씩 일곱 번은 무한정이라는 뜻으로 언제라도 돌아와 회개하면 요13장에는 그 발을 씻겨 주며 다 용서하는 신부의 믿음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누가로는 하루에 일곱 번 잘못하고 일곱 번 용서를 빌면 다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눅17:4-
6. 특히 계시록에 일곱 교회, 일곱 사자,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성령까지 일곱 영으로 나타내사 일곱 단계로 충만케 하셔서 순교케 하시는 역사를 나타내주셨습니다. 계1:4-
성을 일곱 번 돌기는 오늘만 일곱 번을 도는 것이 아니라 성령 시대부터는 새벽부터 항상 자신을 살펴서 내 속의 견고한 고집이 또 올라오지 않게 계속 살피는 것을 나타냅니다.
16절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일곱 번째 나팔은 내 속에 고집이 무엇인지 성령의 역사로 확실히 깨달아지게 하신 때입니다. 내 속에 여리고 고집을 보이신 날이요
외치라 하신 날로 산과 같은 그 고집이 무너지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마17:20에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다] 고 하셨는데 눈에 보이는 앞산 뒷산 큰 산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고집과 교만은 견고한 산과 같아 이 고집 때문에 너도나도 교만하게 된 것을 나타냅니다. 마태로는 간질케 하는 귀신을 쫓으실 때 겨자씨 만한 믿음을 나타내시는데 겨자씨 믿음은 구원의 복음이 믿어지게 하신 믿음인데 이제 진리의 양식을 받아 자라나는 대로 쓸데없는 견고한 산과 같은 내 고집과 높은 산과 같은 교만을 버리게 하시는데 그것이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지우는 것입니다. 마가로는 무화과나무가 열매없이 잎만 무성한 것을 저주하신 후에 나타내주신 말씀입니다. 막11:23-
다 잠자고 있는 고요한 새벽에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나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아직도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처럼 내 마음대로 하려는 고집이 있는가? 헛된 삶을 좇는 고집스런
마음이 보이면 내 힘으로는 뽑아낼 수 없으니 무너뜨려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이제야 외치라 하시는 날이 온 것입니다. 누구나 사람 앞에서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자기의 약점 부끄러웠던 과거는 숨기려 합니다. 여호수아로 외치라 하셨을 때 각자가‘나는 이런 사람이였다’‘나는 죄인의 괴수라’하며 자기 속에 못된 것을 자백하며 큰 소리로 외쳐야 하는데 그때 자신들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그러나 지난날 광야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통회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모든 것을 다 잃고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진정으로 통회 자복하며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눅15:18,1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삼위로 계셔서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이 성을 주실 것을 이미 말씀하셨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성은 여리고 성으로 무너지면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었다 하나 전혀 성령의 역사가 없는 자들은 아직 자기 고집대로 삽니다. 갈2:20-
17절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여리고 성에 있던 물건들은 내 육신 고집대로 살면서 열심히 모아 세상에 쌓아놓고 자랑하던 것들입니다. 바치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3:10에 온전한 십일조는 이 땅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내게 주신 모든 것도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라 하셨는데 오늘날 별소리하는 자들이 많은데 그런데 문제는 예배당마다 그 많은 십일조가 생명 역사에 쓰이지 않고 어디에 쓰이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마23:23-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라합은 히브리어로 분노, 오만, 맹렬함, 자부심 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단어로, 성경에서는 이집트를 표현할 때 자주 쓰였습니다.
기생이니 천한 자로 심령이 가난해진 자입니다. 그러나 먼저 복음으로 살림 받은 라합을 통해 그 집에 함께 사는 자들이 살림을 받습니다. 복음이 믿어지게 하신 나 하나를 통해서 나의 가족, 집안 모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왜? 내 가족은 아직까지 살리심 받지 못할까요? 수2:18, 행16:31-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라합이 말로만 ‘믿습니다’했습니까? 복음이 믿어져 자기 신변이 위험해지는 것도 감수하고 사자를 숨긴 것입니다. 복음이 믿어졌나요? 그러면 아무리 힘들어도 아버지 집에 나와 양식을 받습니다. 이것이 믿음이 앞선 행함이요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자라나 행실로 본을 보이니 식구들이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약2:25-
18절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영적 생활에 몰두해야지 다시금 자기 고집을 부리면 여리고 물건을 내 것으로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삼가라 하셨으니 말씀을 받았으면 되새겨 내 양식으로 삼고 이제부터는 내 고집이 또 다시 나오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에 아간이 취하게 되는데‘구부러진’이라는 뜻입니다. 수7:18-
예배당에 나왔지만 게으르고 정직하지 못하고 기회주의로 사는 자들 마음이 삐뚤어진 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자들은 책임감도 없고 가정을, 직장을 생각지 않고 단체를 생각지 않고 나만 편하게 잘살면 되지 하며 제멋대로 행하는데 이런 자들이 바로 아간입니다.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할까 두려워하노라
나 하나의 쓸데없는 고집으로 인해 가족은 물론 이스라엘 전체에 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아간은 유다 장자 지파에 먹물을 칠했고 아이 성을 공격할 때 이스라엘은 대패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수7:5-
19절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찌니라
은금도 하나님의 것이요 동철 기구들은 농사기구들입니다. 이제 가나안에서 농사를 지어
열매맺게 하시려 구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학2:8-
아직도 자기 수중에 있는 재물들이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자들은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못하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믿어진 자들은 마리아처럼 기쁨과 정성으로 귀한 옥합까지 깨뜨려 여호와의 곳간에 들여 생명 사역에 쓰여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0절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19절의 말씀까지 받고서 자기 고집을
깨닫게 된 백성들입니다. 가나안은 관광하러 놀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마음껏 열매맺게 생명역사하게 하셔서 영원한 하늘 기업을 얻게 하시려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백성들은 나팔 소리인 말씀을 받고 자기들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기를 구하고 제사장들은 계속해서 때의 양식을 나눈 것이 나팔을 분 것입니다. 사58:1-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이제 자기 속에 어떠한 고집이 있었는가?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요 그 고집을 꺾어주시기를 외친 것으로‘나는 죄인이요 내 고집대로 살아온 자라’고 가슴을 치며 철저히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오늘날 책망의 말씀을 받고 죄인인 마리아처럼 눈물로 회개 기도하는 것입니다. 눅7:38-
그 성을 취한 것은 회개한 자들은 가나안 생활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기 고집을 부리는 자들은 주신 것을 다 잃고 나서야 첫 관문을 통과하게 됩니다.
21절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리고의 남녀는 육신주의로 살던 각자의 지난 생활입니다. 여리고에 老幼(노유)는 어려서부터 늙도록 육신적인 내 생각을 고집하며 살던 생활입니다. 여리고에 牛羊(우양)은 소와 양으로 주인도 모르고 순종하지 않고 살던 옛 생활입니다. 역시 나귀는 주인을 떠나 제갈길로 다니던 옛 생활입니다(삼상9:3). 사울 왕은 아말렉을 치게 하셨을 때 나귀처럼 자기 고집대로 그 우양을 다 죽이지 않아서 불 순종자가 되고 버림을 받습니다. 삼상15:9-
칼날로 멸하는 때마다 주시는 진리의 양식은 히4:13처럼 날카로워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여 내 속에 숨어있는 고집, 교만, 거짓, 악함을 책망하는데 예배 때마다 귀에 듣기 좋은 설교나 하고 성경을 공부식으로 가르치는 자들은 머리만 커져 아직도 옛날에 우상을 섬기던 그 고집스런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여리고 첫 성을 통과하지 못한 자로 여전히 육에 속하여 영적 생활을 마음껏 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옛사람을 말씀의 칼날로 다 청산하는 것입니다. 엡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