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에 성공했다. KBS는 지난 31일 '9시 뉴스'를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 인터뷰를 몇 꼭지로 나눠 내보냈다. △[단독] 젤렌스키 대통령 “북한군과 수일 내 교전 예상…북 공병부대 파병 추진 정황” △ [단독] “북 노동자, 러시아 내 자폭드론 공장 투입 예상” .. ‘군사기술 이전’ 우려 △매일 밤 공습 이어지는 키이우…“한국산 방공 시스템 원해”...
인터넷에는, KBS에서 전문을 제공했는지 여부를 모르겠으나,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1문1답도 올라와 있다.
유별난(?) 관심 탓이겠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그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관한 미국 CNN의 보도와 NGO 단체의 주장을 부인한 대목이다. 그는 '교전 중에 북한 전사자가 나왔다'는 리투아니아 NGO ‘블루-옐로’(우크라이나 국기의 색깔)의 요나스 오만 대표를 인용한 보도와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통과했다'는 CNN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약 3천명의 북한 군인이 러시아 훈련 캠프에 있으며 곧 1만2천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군과의 교전은 며칠 내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나 그 주변에서 나온 정보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의 발언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크라이나군은 아직 전선에서 북한군과 맞딱뜨리지 않았다. 양측의 교전 보도와 그에 따른 후속 기사는 모두 '오보', 시쳇말로는 '가짜뉴스'라는 뜻이다.
'교전 중 모두 죽고,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북한 군인의 SNS 영상(텔레그램 Exilenova+, 가입자 1만9천여명)도 전시 중에 숱하게 나오는 프로파간다(선전 선동)성 가짜 뉴스(?)다. 그것도 친우크라이나 SNS에서 내보냈으니 더욱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북한군 생존자라고 주장하는 텔레그램 영상/캡처
그렘에도 불구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따낸 KBS조차 이 영상을 인터넷에 띄웠으니, '전쟁 저널리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듯하다.
우리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확인한 뒤 쏟아진 온갖 기사들은 나름의 출처를 갖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와 정치인, 유력인사, 외신 보도, SNS 게시물 등 출처는 다양하다. 또 다루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이슈의 선택과 분석은 보도 성향이 서로 다른 언론사의 몫이니 따로 잘잘못을 지적할 것은 없다. 독자가 선택하면 된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KBS 인터뷰를 다룬 방식을 보면, 그 언론은 물론, 그 언론이 속한 국가의 보도 성향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포탈 사이트 얀덱스(yandex.ru)의 뉴스 모음(dzen.ru)에서 KBS로 검색하면, 러시아 매체들은 KBS의 젤렌스키 대통령 인터뷰 내용을 크게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를 공격한 이유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영토 양보를 통한 전쟁 종식은 쉽지 않을 것 △앞으로 한국에 포병과 방공망 지원을 요청할 것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의 체포(영장)를 ICC에 요청 등으로 나눠 다뤘다.
KBS와 인터뷰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러시아어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에서 접속이 금지된 매체/편집자)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를 포기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고 △'러시아 정보기관은 북한군의 참전에 대해 서방측 정보기관에도 통보했다'고 한 것을 크게 다뤘다.
반면 친정부 성향의 우크라이나 매체 rbc-우크라이나(러시아어판)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보 요구할 것인가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쿠르스크주 공격은 외교적 노림수라고 인정 △푸틴(대통령)은 지뢰밭에 선 공병 부대원처럼 북한군 파병으로 서방의 반응을 시험한다 △한국으로 대표단을 언제 보낼 것인가 △한국에 무기 지원을 요청할 것 △ 김정은에 대한 ICC 체포를 요구할지 여부 등의 꼭지로 나눠 다뤘다.
서로 다른 이슈를 내세우더라도, 팩트(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전시에 쏟아지는 프로파간다성 정보다. 특히 친우크라이나 성향의 SNS에서 내보내는 정보다. 프로파간다용 정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첫 전투를 치른 북한군 선발대가 1명을 빼고 모두 전멸했다"(친 우크라 성향의 NGO ‘블루-옐로’의 요나스 오만 대표) "전우의 시체 밑에 숨어 간신히 살아남았다"(생존 북한 군인의 SNS 영상), "러시아군이 한글을 배우면서 어렵다고 욕실을 내밷었다"(SNS 게시물) 등은 유력 언론이 그토록 강조하는 '팩트 체크(사실 확인)'를 나름대로 거쳤거나, 그 진위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도 빼놓치 않고 제기했을까? 아니다.
KBS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강조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캡처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과의 교전 자체를 부인했으니, 북한군 선발대 전멸이나 생존자의 존재는 '거짓'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러시아가 한글을 배운다는 게시물 또한 상식적으로 석연찮은 점이 없지 않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전투를 총괄 지휘하는 러시아군의 말(러시아어)를 배워야 한다. 북한 파병군이 러시아어를 배우는 게 먼저이지, 러시아군이 북한말을 익히는 게 우선일 수는 없다.
물론, 북한군의 러시아어를 배우는 현장은 목격하지 못했으니, 그 장면을 올리지 못했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북한말을 배운다는 주장에 한번쯤은 왜? 라는 의문을 표시해야 하지 않을까?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전시에도 어느 일방의 프로파간다성 정보를 구별해내고, 진실을 추구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언론의 역할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전쟁 저널리즘'의 원칙이자 기본이다.
각종 설과 주장이 쏟아지는 전쟁 상황에서 '팩트 체크'는 말처럼 쉽지 않다. 출처를 달고 일방적인 주장을 인용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는지 그간의 흐름과 맞아떨어지는지 여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2년 8개월을 넘긴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전황에 관한 수많은 보도가 나왔지만, 거기에는 적잖은 프로파간자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방어에 급급한 우크라이나 측이 더욱 그렇다. 이기는 쪽이야 사실 그대로 전해도 손해 볼 건 없지만, 지는 쪽은 대국민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프로파간다가 필요하다.
전쟁 초기에 국내 언론을 뒤덮은 '키이우의 유령'이라는 우크라이나의 전설적인 조종사가 그렇고, 우크라이나 정보기관(SBI) 등이 주장한 러시아 장군급 지휘관 제거설이 그렇다. 아무리 큰 허리케인이 덮치더라도, 며칠만 지나면 그 피해 상황을 다 알 수 있듯이, 전쟁도 대략 2년쯤 지나고 보니 자극적이고 무리한, 또 비상식적인 보도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게 언론의 미래를 위한 자세다. 그래야 페이크(가짜)와 팩트가 뒤섞인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와 우리 사회를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