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2,1-2.7-14; 루카 11,1-4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1571년 오늘, 즉 10월 7일에 ‘신성 동맹’이라 불리는 그리스도교 연합군과 오스만 제국은 그리스의 레판토 앞바다에서 전쟁을 벌였는데요, 이를 ‘레판토 해전’이라 부릅니다. 여기에서 승리한 것이 묵주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전구 덕택이었다고 믿어서 ‘승리의 성모 축일’이 제정되었는데요, 1960년에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바뀌었습니다.
언뜻 듣기에, ‘아니, 전쟁에서 이긴 날이라 정한 기념일이라고?’ 하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 수 있는데요, ‘레판토 해전’이 얼마나 중요한 전투였기에 그랬을까요?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는 동방과 사방으로 나뉘어 있었는데요,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되면서 동로마제국이 멸망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늘날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인데요, 많은 주민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갔고, 상당수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또한 여러 성당과 수도원이 약탈과 훼손을 겪었고, 성 소피아 성당은 이때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서쪽으로 확대되면서,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의 중심인 로마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습니다. 성 비오 5세 교황님은 유럽 전역의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했고, 로마에서 직접 묵주기도 행렬을 이끄셨습니다.
신성 동맹의 함대는 전력과 수적인 면에서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는데요, 당시 신자들은 이 전투가 성모님의 전구를 통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그리스도교 교회를 지켜낸 승리로 이해했습니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도 이 전투에 참전해서 왼쪽 손에 부상을 입고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자신은 이 상처를 무척 영예롭게 여겼다고 합니다.
레판토 해전은 1571년에 있었는데, 그로부터 26년 뒤 1597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 있었습니다. 두 전투 모두 열세의 상황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승리의 성모 축일’은 1716년에 보편교회로 확대되었고, 1883년에 레오 13세 교황님은 10월 한 달을 성모님께 봉헌하도록 하셨는데, 이것이 오늘날 묵주기도 성월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결국 오늘 축일과 묵주기도 성월은 레판토 해전과 관련이 있다고 보겠는데, 오늘날 우리는 악과의 전투에서 묵주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전구로 승리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베드로 사도와 충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할례받은 이들, 즉 유다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면, 바오로 사도 자신은 할례받지 않은 이들, 즉 이방인들에게 그 일을 위임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처음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자, 유다인들이 두려운 나머지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유다인이 다른 민족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않는 것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그 이후에 형성된 관습이었는데, 베드로 사도가 이를 따르게 되고 그를 본뜬 여러 사람들이 이를 따라 하면서 유다인 그리스도인과 비유다인 그리스도인 사이에 형성되었던 일치가 깨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공개적으로 베드로 사도를 비판합니다. 이는 베드로 사도뿐만 아니라 그 행동을 모방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베드로 사도에게 너무 심하게 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베드로 사도의 행동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심하게 훼손하는 일이 되었기에 바오로 사도가 이처럼 ‘열폭’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이시고, “날마다 저에게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청합니다.
우리는 묵주기도 성월을 보내고 있는데요, 묵주기도는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하도록,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우리와 이 세상에 이루어지도록 청하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 역시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적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와 마찬가지로 성모송 역시 ‘이제와 제가 죽을 때’가 아니라, ‘이제와 저희 죽을 때’라고, ‘죄인인 저’가 아니라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오늘날 이기심, 교만, 파벌, 거짓과 폭력적 선동이 우리나라를 뒤흔들려 하고 있습니다. 레판토 해전이 모양을 바꾸어 우리 안에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전투에서 진리와 사랑과 일치가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라는 무기로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베로네세, 레판토 해전, 1572년 경
출처: (Venice) Allegoria della battaglia di Lepanto - Gallerie Accademia - 레판토 해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