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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평범함 안에 숨은 특별함 발견하기
교회의 전례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시기는 연중 시기로 전례력 안에서 총 34주를 차지합니다. 이러한 연중 시기는 다른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요하거나 특별한 전례 시기에 속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신비의 어떤 특수한 측면을 준수하지 않는, 오직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에 시선을 두는 부분을 가리킵니다.
이 같은 특성을 지닌 연중 시기를 저는 ‘평범함에 집중하되, 그 평범함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기’로 여깁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개인의 일상과 눈에 띄는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 세상사의 흐름, 그 안에서 무력감을 느끼기 쉬운 우리에게 연중 시기는 한 해의 전례력 안에서 가장 긴 시간을 무미건조하게 차지해 버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평범함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집중하는 성경 속 예수님의 모습에 깊이 집중하는 시기로 연중 시기를 받아들입니다. 그런 연중 시기는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쉬운 우리네 일상 안에서 미세하게 변화되는 지점들을 포착해 내는 섬세함을 제공합니다. 또 변화의 폭이 느껴지지 않는 세상사의 흐름을 이전보다 더 긴 흐름으로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의 여지를 갖추도록 이끕니다. 이처럼 연중 시기는 우리네 평범함 안에 숨어있는 특별함을 깨우쳐 주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현정 아나운서의 에세이 《유일한, 평범》을 읽으며 연중 시기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특별히 “이렇게 미지근한 나의 삶에, 그 안에서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버둥대는 나에게, 애정을 주고, 인정을 주고 싶다. 이 모습도 만족스럽다고. 그런 마음을 발아래 디디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발걸음을 내딛는 슬로모션이 여기 담겼다.”는 프롤로그 속 작가의 포부가 평범한 삶 속에서 유일함과 특별함을 발견해 내기 위한 의지를 사치처럼 여기기 쉬운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이어서 작가의 ‘평범해 보이지만 유일하고 특별했던 일상’ 속 여러 경험과 체험, 밀려온 감정과 떠오른 생각 등으로 꾸려진 이야기들은 서로의 일을 나의 일처럼 여기며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함, 다르지 않아 보이는 개개인의 평범함 속에 담긴 미세한 차이를 느끼고 그 차이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섬세함 등을 공유합니다. 이처럼 작가의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으로부터 번지는 유일무이한 특별함은, 각자의 삶의 영역을 가꾸어 나가는 모든 범인(凡人) 독자들의 마음을 특별함으로 인도합니다.
《유일한, 평범》에 담긴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네 존재를 감싼 평범함에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는 너른 마음을 품게 됩니다. 더불어 평범하게만 보이던 세상사의 흐름 속에 내재된 유일무이한 특별함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타자의 평범함 안에 감추어진 특별함을 발견해 낼 줄 아는 마음을 갖추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평범하게 흘려 보내고 있을 연중 시기를 향한 마음을 특별하게 다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칼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지녀야 할 책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속 ‘인류의 빛(Lumen Gentium)’이라는 제목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이하 ‘교회 헌장’)은 14항부터 17항까지를 할애해 가톨릭 신자와 예비신자, 비가톨릭 그리스도인, 비그리스도교 종교인, 자기 탓 없이 복음과 교회를 모르지만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이 등을 섬세하게 구분합니다. 교회 헌장은 ‘교회에 완전히 합체된 사람들’로 표현된 가톨릭 신자들과 더불어 언급되는 모든 이들에게 나름의 구원 가능성이 주어졌음을 알립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가톨릭 신자에 대해 언급하는 14항의 마지막 부분에서 “교회에 합체되더라도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교회의 품 안에 마음이 아니라 몸만 남아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선언하는 대목입니다. 교회 헌장은 단순히 교회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교회와 완전한 합체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일깨워줍니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라는 제목으로 엮인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이하 ‘사목 헌장’)은 21항을 통해서 무신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목 헌장은 무신론자들이 하느님을 부정하게 된 연유가 교회가 보인 잘못된 모습으로부터 기인한 것은 아닌지를 살핍니다.
교회가 세상 앞에서 보여야 할 ‘책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60여 년 전 가톨릭교회가 다짐하듯 선언했던 문헌 속 내용들은 교회가 아직 다 하지 못한 책임에 더욱 집중해야 함을 일깨웁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1927년 영국 비종교인협회에서 버트런드 러셀이 종교에 관해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폐부를 찌르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시대를 대표한 철학자 러셀이지만, 사실 그리스도교를 향한 그의 비판은 굉장히 지엽적이라는 한계를 보입니다. 그의 주장은 근본주의적 색채가 매우 짙은 1920년대 영미 개신교회의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그리스도교가 보이는 현실이 백여 년 전 러셀이 펼친 비판에서 자유로운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를 향한 러셀의 지엽적이며 한정적이고 소모적이기까지 한 비판은, 시대를 초월하지 못한 채 고여 있는 일부 그리스도교 내의 행태들, 곧 교회에 몸만 남아있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시대를 초월하는 주장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국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지닌 문제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에서 기인함을 알려줍니다. 더불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비딱한 시선으로, 교회를 왜곡된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 교회공동체 스스로가 일조한 것은 아닌지를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 년 전 그리스도교를 향한 러셀의 비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60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보인 자성의 태도는 아직도 유효해 보입니다.
[도서칼럼] 세상에 ‘사소한 일’은 없다
지난 9월 27일, 세계 불꽃 축제가 한강에서 대규모로 펼쳐졌습니다.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을 불꽃을 감상하기 위해 수백만의 인파가 한강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가까이서 불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상파TV 채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불꽃 축제를 생중계해 주었고, 심지어 아파트 단지 사이 같은 좁은 틈으로 불꽃이 겨우 보이는 지점을 찾아내어 이를 촬영하여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각, 종로 보신각 앞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무고하게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참상을 알리며 하루 빨리 전쟁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집회에 모인 시민들이 함께 모았습니다. 천여 명의 인원이 참여한 이 집회는, 같은 시간 벌어진 불꽃 축제의 화려함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 않습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 두 가지의 풍경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불꽃 축제는 아파트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지점까지 발견해낼 만큼, 어떻게든 여건을 마련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절실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처한 현실은 제대로 마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현실마저도 외면하는 세태도 존재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절실할 일상의 안위가 일 년에 한 번 펼쳐지는 불꽃 축제보다 사소한 일로 치부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인 것입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다수로부터 사소한 일로 취급되어 버리는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실존을 뒤흔드는 긴급한 상황일 수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실화를 모티브로 삼은 이 소설은 1985년 겨울, 아일랜드의 뉴로스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석탄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빌 펄롱은 성탄을 앞둔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넘겨온 불편한 진실에 혼자만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성실히 가족을 위해 살아온 그는 자신이 석탄을 배달하는 수녀원의 보일러실에 갇힌 소녀를 발견하고, 그 순간 자신이 그동안 ‘사소한 것’이라 여기며 지나쳤던 기척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외면해온 현실이 펄롱에게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됩니다. 고심 끝에 펄롱은 돌아올 불이익을 알면서도 침묵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안을 더 이상 사소하게 두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전 세계적 관심이 요구되는 참상에는 시선을 두지 않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현상에 집중하는 세태가,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짚어내고자 하는 우리 시대의 나약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성탄을 앞둔 세상은 주님의 성탄이 품은 본질 대신 조명과 장식 같은 화려함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세상이 몰두하는 지점에서 벗어나,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 시대에 절실해 보입니다.
[K톨릭: 도서] 도서 《고귀한 인류》 • 《영원한 천국》 • 《당신이 더 귀하다》
영원한 천국, 당신이 더 귀하다
레오 14세 교황님의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는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기술 중심 문화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다룹니다. 교황님은 사회 교리의 원칙들이 지니는 중요성과 더불어 기술 진보가 가져오는 위험성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하십니다. 특히 기술이 제공하는 매력적인 열매들에 사로잡혀 인간의 한계를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통한 초월 가능성은 배제하는 문화가 사회 기저에 확산되고 있음에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계십니다.
교황님께서 지적하신 문화적 서사는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사조입니다. 두 사조는 완전한 인간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전제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열등한 요소로 간주합니다. 무능, 질병, 노화, 고통 등은 교정해야 할 결함일 뿐입니다. 결함이 있는 사람들은 2등급 인간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해 온 소설가 정유정의 작품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2024)은 이 두 가지 사조가 지향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소설에서 인간은 한계가 모두 극복된 완전한 가상 세계로 이주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결함으로 가득한 육체에서 벗어나 개인의 고유한 의식, 무의식, 본성, 반사작용, 감각이나 신경 회로 같은 모든 것을 정보 형태로 네트워크에 올릴 수 있습니다. 육체는 미련 없이 남겨 두면 그만이고, 업로드되기 전의 과거가 싫었다면 얼마든지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인간 존엄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상 세계 플랫폼이 정식으로 출시하는 데 필요한 임상 실험 단계에서 노숙자는 선별되어 폐기됩니다. 불치병 환자가 고통스러운 육체와 결별하여 자유로운 가상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최선의 선택일 뿐입니다. 사회 교리에서 강조하는 윤리적 원칙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가상 세계에 이주한 사람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대면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구급 소방대원 백경 작가가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한 〈당신이 더 귀하다〉(다산북스, 2025)라는 책에는 기술 발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회 교리의 핵심 가치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과 공명하는 부분입니다. 동시에 작가는 현실에서 만나는 이들이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인간의 유한성 앞에서 절망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함에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교황님이 회칙을 통해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가 아닐까요.
[K톨릭: 도서] 《손절사회, 손익계산이 된 인간관계, 연결 불가능의 시대에 대한 탐구》 · 《말하지 않고 말하기》 ·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손절의 시대, 경청의 사목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사목 헌장〉 62항은 사목과 관련해서 신학 원리뿐만 아니라 일반 학문, 특히 심리학과 사회학의 발견을 활용하여, 신자들을 더 순수하고 원숙한 신앙생활로 인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한국 사회를 심도 있게 고찰한 사회학자 이승연의 《손절사회, 손익계산이 된 인간관계, 연결 불가능의 시대에 대한 탐구》(어크로스, 2026)는 교회가 사목 차원에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주목해야 할 지점들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젊은 세대가 외로워하면서도 깊이 있는 관계에서 도피하는 현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특히, 일상의 많은 것들을 정신 건강에 대한 위협이나 치유의 측면에서 이해합니다. 예를 들어 몸에 상처가 생기면 환부를 도려내고 소독을 한 후에 병원균의 침투를 막듯이, 일상 안에서 누군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가 자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손절의 문화가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직장이나 가족 안에서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생기면 손절이 아니라 순응하는 것이 덕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것의 손익을 따지고, 손해라고 판단되면 즉시 손절하는 것이 미덕이 되었습니다. 한편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젊은이들의 노력 부족에서 찾으려는 시선을 경계합니다.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고통스럽고 불편한 관계마저 끌어안을 여유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손절은 관계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사목의 관점에서 본다면 손절이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연대와 사랑의 신앙 가치를 전하는 것은 막막해 보입니다. 결론에서 저자는 손익을 따져서 타인과 관계를 손절하고 “나는 특별하다.”고 끊임없이 되뇌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로 대하는 타인의 경청하는 눈빛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자의 목소리에서 시노드 정신에 따른 경청을 강조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만나게 됩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관계 안으로 젊은이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손절 문화 안에서 고통을 외면하는 데 익숙해진 젊은이들이 자신을 경청해 주는 누군가로 인해 하느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고통의 의미를 바라보게 된다면, 그 지점에서 진정한 돌봄의 사목이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청의 중요성을 인간관계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면 《말하지 않고 말하기》(김정운, 21세기북스)를 추천합니다. 문화 차원에서 사람들의 욕구가 기술을 진화시키고 기술 진화가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이해하고 싶다면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나다 도요시, 현대지성)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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