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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의 집과 제비의 보금자리
시편 84: 1~7
오늘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복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혈연관계인 부모와 자녀와 형제 가족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인 곳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은 하나님의 집 성전을 사모하며 노래하는 내용입니다. 거기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참새의 집과 제비의 보금자리로 묘사하였습니다. 이 비유는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의 가정 곧 행복한 가족을 두고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씀입니다.
1. 사랑스러운 가족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없고 그보다 더 행복하게 하는 요소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누리는 조건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그의 마음과 삶의 자세에서 묻어나는 것입니다. 참새나 제비 같은 동물의 세계에는 사람들처럼 임의대로 문화나 환경의 치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지는 본성에 따라서 생활하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합니다. 그렇지만 어미와 새끼 또는 자기 가족끼리 가지는 순수한 모습은 동물적인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본문의 시인은 참새와 제비의 생태에서 사랑스러운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2. 평화로운 가족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특징은 온 가족이 마음을 같이하며 화목하게 사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가족이 저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곤 하지만 집안에서 자기 가족에게만은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며 협력을 하게 됩니다. 가족은 경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서로 적대관계에 있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처럼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를 가족으로 비유하였습니다(엡 2:19). 하나님의 가족들은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서로를 용납하며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자들입니다(엡 4:2-3). 참새의 집과 제비의 보금자리와 같은 동물의 세계에서 우리는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가족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3. 희망을 가꾸는 가족입니다.
처마 밑 보금자리를 들락거리며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제비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지배배 소리를 내며 앞을 다투어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새끼들은 하루하루 자라갑니다. 몸에 깃이 나고 날개가 힘을 얻게 되면 어느새 창공을 향하여 힘차게 비상하게 됩니다. 건전한 가정은 노인과 젊은이와 어린이가 함께하는 가족입니다. 때로는 세상사에 시달리기도 하고 어려운 시험을 당하게도 되지만 가족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이를 극복해 나갑니다. 본문 6절에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나이다” 고 하였습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역경에도 인내하며 이겨 나갑니다. 오히려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가는 비결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되시며 축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출처: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엘리야
장경태목사
사모하는 마음
시편 84:1-12
동물들에게는 歸巢本能(귀소본능)이 이있습니다.
즉 집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이지요. 아무리 멀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늘 동물들에게는 이 귀소본능 때문에 결국은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몇 년전에 한국에서 백구라는 진돗개의 이야기가 유명한적이 있었습니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던 할머니가족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한집에서 같이 살던 진돗개 백구를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백구는 300Km나 떨어진 대전까지 팔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백구가 새주인과 어울리지를 못하고 결국 외롭게 살아가는 할머니가족을 찾아서 온갖 어려움 끝에 장장7개월을 거쳐서 집으로 찾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을 향하여 돌아가고 싶어하는 귀소본능이 동물들에게 있습니다.
이런 본능은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고향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귀향본능이 있습니다.
이억만리 낮선 나라에서 살아가면서도 외국인으로 어떤 서러움을 다 받아가면서도,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성공해서 돌아가리라!, 보라는 듯이 錦衣還鄕(금의환향)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마음이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도 이런 본능이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나는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간다. 주님 계신 곳으로 간다, 이런 본능은 우리가 이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오늘도 이렇게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도 바로 그런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귀향본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낮선 땅에서 사치하지 않습니다. 한푼이라도 모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고향에서 보란듯이 쓰고 싶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서 배운 학식을 자신의 나라에 가서 나라를 위해서 쓰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외국에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모은 돈을 가지고 자신의 고향에 가서 고향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어려운 집안식구들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사치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적 투자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어느 나라로 이민을 가든지, 그곳에서 제일먼저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중심으로 이런 천국으로의 귀향본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다윗왕이 자기의 아들 압살롬에 의해서 갑자기 도망자의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고향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언젠가 돌아가려나! 라는 소망으로 많은 시편을 쓰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그가 마음에 가장 사모하는 곳을 향하여 그곳을 그리워하면서, 그곳으로 언제나 돌아가려나! 는 영적 서러움이 오늘 시편기자를 통해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하면, 성전입니다. 다윗의 사모하는 곳은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다윗의 사모하는 마음을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의 집을 사모하는 마음.
먼저 다윗의 사모하는 마음은 주의 집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성경의 인물 중에서 다윗처럼 성전을 사모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온통 성전밖에 없었던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자신은 좋은 궁에서 살면서 주의 장막이 이슬 맞고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 하면서 성전을 지어서 봉헌하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 앞에 그 꿈이 거절을 당했습니다. 너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습니다. 다윗은 많은 전쟁을 치룬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전쟁의 피가 묻어 있는 그손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손이 아닌 그 아들 솔로몬의 손에 의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지만, 사실은 그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준비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거절된 기도의 응답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준비하는 그 마음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요, 성전을 향한 사랑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1,2)
그는 지금 성전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멀리서 그렇게도 좋아하는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에 그의 마음과 몸이 쇠약해졌다고 합니다.
상사병(相思病) 이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 자기 마음에 사무처서 오는 병입니다. 아마도 다윗은 그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에 바로 이런 상사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의 몸과 마음이 다 쇠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으로 멀리서나마 성전을 바라보니, 그 눈에는 참새 한 마리가 보입니다. 마음대로 평화롭게 성전귀퉁이에 집을 지어놓고 날아다니는 저 참새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고, 또 한편에서는 제비가 둥지를 틀고 그 속에 새끼에게 먹이를 넣어주는 그 모습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낮 미물들도 저렇게 마음대로 성전에 날아드는데, 그 사모하는 성전을 찾지 못하는 그의 안타까움을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성전을 얼마나 사모하고 계십니까?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여러분은 얼마나 마음을 조리고, 주일날 다른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까? 한국에서는 주일예배를 드리고 하는 것이 아무런 어려움이 아니고, 또 그것을 위해서 특별한 기도도 없었던 분이 일본에 와서는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또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늘 다윗은 성전 사모하는 마음에 그 마음이 쇠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4절에 보면"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교회에 와서 주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복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여러분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일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은 복된 부러움입니다.
이 복의 가치를 여러분들, 소중하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복을 지키려고 애를 쓰시길 바랍니다.
2. 시온의 대로를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5절에 보면"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합니다. 다윗은 시온의 대로를 사모했습니다. 시온의 대로는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는 사람은 복이 되다. 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시온의 대로를 사모했습니다. 그의 형편에서 보면 그의 발걸음은 시온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에게 쫒기어, 낮선 이방 땅으로 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하는 그 시온의 대로를 그는 사모했습니다. 그 시온의 대로가 있어야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온의 대로로 향하는 길은 눈물골짜기입니다. 6절에"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은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눈물골짜기인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지금 눈물골짜기를 걷고 있습니다. 아들의 반란을 받고, 아들에게 쫒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가 걸었던 그 눈물골짜기...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 믿는 길은 그리 쉬운 길만은 아닙니다. "너희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는데, 자기 십자가를 지는 모습은 눈물골짜기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길,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길,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 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39-44) 는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눈물골짜기를 걸어야 합니다. 그 길이 시온의 대로를 향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시온의 대로에서는 그 곳이 복을 받는 길이라고 합니다. 샘의 저수지가 되고, 이른비도 은택을 입는 곳이고, 그 길을 걷는 사람에게 힘을 주시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온의 대로를 걷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난의 길인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수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길이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경험하며, 주님의 축복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는 기쁨입니다. 고난이 축복입니다. 이 땅에서 말할 수 없는 삶의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왜 살아가는지의 이유가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다.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찬송을 해도 누가 방해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교회에 와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우리에게 시온의 대로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주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금 여기에 앉아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여러분은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다윗은 지금 이 자리에게 주님을 예배드리며, 시온의 대로가 놓여져 있는 여러분들을 복받은 사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3. 주의 궁정을 사모했습니다.
10절에"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왕입니다. 비록 지금 쫒기고 있는 왕이지만, 왕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합니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은 근처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고사하고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그 어느 것보다도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교회에서도 그래도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 예수를 만난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의 어떤 일을 맡겨도 감사해 합니다. 사회에서는 아무리 사장이요 회장이라 할지라도 교회에 들어오면, 성도요, 작은 직분자입니다. 섬기는 자입니다. 교회의 청소도 할 줄 알고, 신발도 정리할 줄 알고, 설거지도 할 줄 알고, 온갖 굿은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님전의 문지기입니다.
어느 영화를 보는데, 남자는 조폭(아꾸자)입니다. 수많은 조직원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느 여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난 다음부터는 그 여인의 사랑을 위해서 온갖 헌신을 다합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유치하게 보일 정도로 겸손하고, 재롱도 부리고, 여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나중에 조폭인 것을 알고 그것을 그만두겠냐고 했더니, 그 사랑을 위해서 조폭의 두목의 자리를 내어놓습니다. 사랑의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은 그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행복을 느낍니다. 저게 사랑이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뭐든 못하겠습니까?
성전의 문지기 노릇 그가 비록 왕이라 하지만, 내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복귀하는 날 나는 성전의 문지기라도 하겠다는 마음이 진정으로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성전의 문지기는 주님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오늘 성경기자는 그 사람이 복되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복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성전의 문지기 노릇을 하시겠습니까?
내가 이 성전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일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복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성경기자는 다윗의 심정을 정말로 잘 표현했습니다. 오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그 말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랑"입니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주의 장막이 사랑스러울 때, 모든 것이 해결되어집니다. 주의 장막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곳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해도 아깝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더 드릴 것이 없는가!를 찾게 됩니다. 그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고 오늘 성경은 고백합니다.
그리고 지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의 전을 찾아서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 여러분이 바로 그 복된 사람이라고 축복합니다. 다윗은 오늘 여러분이 예배드리고 있는 그 모습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왕이 사모했던 그 성전, 그 예배, 그 섬김을 여러분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주님오시는 그 날까지 이 복된 모습을 놓지 않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