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1078
의상조사법성게78
동봉
고향가는 길(8)
조건없는 선교방편 생각대로 가져다가
집에갈제 분수따라 먹을양식 삼을지라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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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닷새만에 서는 장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1.6장, 2.7장, 3.8장, 4.9장, 5.0장
양력 매달 1일과 6일이 같은 장소이듯이
2일과 7일, 3일과 8일, 4일과 9일
그리고 5일과 0일이 같은 곳에서 열린다
장날만 나오는 물건을 구입하고자
장이 파한 그로부터 108시간이 넘도록
학鶴의 목首처럼 힘들苦게 빼고 기다렸待다
평소 한산하던 시장이 장날이 되면
어디에 있다가 그렇게 많이들 나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기 그지없는 장터다
계절에 따라 상품도 많이 달라지는데
요즘처럼 추운 겨울이면 장갑이 1순위이고
특히 토끼털 귀마개(?)도 값이 있었다
귀까지 내려 덮는 미군 털모자를 보면서
그게 그렇게 사고 싶었는데 사지 못했다
내 형편으로 쉽게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털신 만큼은 겨울마다 장만했다
계속 발이 크니까 해마다 살 수 밖에 ㅡ
10대 후반부터 둘째 형님이 목수였기에
나는 어깨너머로 지게 거는 법을 배웠다
소나무 중에 가지가 잘 뻗은 것을 베어다가
지게 틀을 깎고 네 군데씩 끌로 구멍을 뚫고
구멍과 구멍 사이로 등받이 나무를 끼우면
지게 구조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등받이는 왕골이나 짚 따위를 썼다
거의 매일 지게 하나씩을 걸다시피하여
장날마다 5개 이상의 지게를 팔 수 있었다
육조는 시장에서 땔나무를 팔았는데
나는 땔나무를 짊어질 지게를 판 것이다
다른 품목에 비해 지게는 잘 팔렸다
지게 5개를 다 팔지 못한 장날은 없었다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만드는 것이었기에
부업이 본 농사보다 수입이 높은 편이었다
그 당시 지게 하나는 쌀 한 말이었는데
따라서 매 장날마다 쌀 5말씩 벌어들였다
한 달이면 으레 6번 장이 서니까
한 달에 쌀을 3가마니씩 벌어들인 셈이다
그럼에도 미군 털모자는 구입하지 못했다
장에 갈 때는 지게 5개를 짊어지고 가고
올 때는 빈 지개가 아니라 쌀이 5말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과 그리고 나
4식구가 먹고살아야 했기에
나는 다른 데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지게 거는 데 한계가 다가왔다
생각처럼 매 장날마다 5개 씩 걸 수 없었다
첫째 지게 걸기에 마땅한 나무가 없었고
둘째 정부의 산림녹화 정책에 따라
살아있는 나무는 함부를 벨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이름으로 된 산山이 없었다
남의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건 지게였기에
산 주인에게 걸리면 그 날로 끝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시장에 내다 판 지게가
내 기억으로는 한 달 남짓 이어졌으니까
거의 30여 족 가까이라고 본다
한 달 남짓에 쌀 세 가마니가 들어왔다면
그래도 꽤 괜찮은 수입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게 제작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뒤
시골에서 손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싸리나무로 만든 그릇에 눈길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却說
시장에 나가면 볼거리가 참 많은 편이다
자연 농기구 코너의 광주리 도리깨 따위와
대장간의 호미 괭이 칼 낫 곡괭이 따위와
고비 고사리 도라지 더덕 등 산나물과
장화 산행화 구두 따위의 신발 코너가 있다
이들이 아무리 많아도 다 쓸모가 있다
요즘 백화점department store은 물론
대형 마트mart에만 들어가도
진열된 상품이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명언집《명심보감》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하늘은 녹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고
요즘과 달리 옛날에는 자녀를 많이 두었다
이를 변명하기 위해 속담이 등장한다
'누구나 제 먹을 복은 제가 타고난다'고
천불생무녹지인天不生無祿之人과
지부장무명지초地不長無名之草는
이처럼 다자녀多子女 가정에서 생긴 말이다
따라서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세상은 쓰임새 없는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세부작무용지물世不作無用之物'이다
이는 내가 앞의 문장에 이어 덧붙인 것이다
다른 말로 얘기하면 어떤 사물도
반드시 그 쓰임새가 있게 마련이다
소풍간다며 어쩌다 물잔을 챙기지 못했다
마침 사과가 있어 반으로 쪼갠 뒤
속을 파먹고 물잔 대용으로 쓰게 된다면
과일과 그릇으로서의 역할을 해낸 셈이다
세상에 쓰임새 없는 물건이란 있을 수 없다
위에서 보듯이 시골 장터나
백화점, 대형마트에 진열된 상품들이
모두 다 쓰임새가 있다는 데 초점이 있다
이들 상품들은 다 값을 치른 이들의 몫이다
돈을 주고 사는 이들이 상품의 주인이다
그리고 이들 상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낱낱 중생들 욕구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들 물건들이 다 어디에 쓰일까
삶에서 필요한 편의便宜에 쓰일 것이다
컨비니언스convenience가 편의다
이 '편의便宜'라는 말에 담긴 '편' 자가
방편方便의 '편'자와 비슷한 뜻을 지닌다
대형마켓, 백화점, 편의점을 비롯하여
시골장터에 널려있는 상품은 주인이 없다
값을 지불하고 가져다 쓰는 이가 주인이다
이들 마켓에 진열된 상품은 값을 지불하나
부처님 가르침으로 구성된 선교방편은
아무리 가져다 쓰더라도 100% 다 무료다
게다가 가져가는 방법은 물론이려니와
어떻게 쓸지에 대한 사용설명서까지 들어있다
사용설명서에 쓰인 말은 영어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한국어만으로 된 게 아니다
으레 에스페란토어Esperanto語도 아니다
어떤 인류든 바로 해독할 수 있는
기호법記號法symbolic method 언어다
그러므로 '조건없는 선교방편'은
누구든지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다
가판대에 잘 진열된 선교방편들을
한꺼번에 싹쓸이로 담아간다 하더라도
원숭이 손에 든 콩알처럼 모두 빠져나간다
그러므로 본고향에 가려는 수행자는
부처님의 선교방편이 무료라고 하더라도
싹쓸어가려는 욕망부터 버림이 좋다
하여 완벽하게 마음을 비우지 않고는
마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쉽지가 않다
선교방편은 로드맵road map일 뿐이다
자동차마다 설치된 네비게이션이다
네비게이션이 소중하다고 하여
열 개 백 개 천 개씩 마구 설치한다고 한들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면 족하다
게다가 네비게이션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출발할 때에 비해 먼 길을 가는 도중
제 스스로 업데이트up-date를 일으켜
새로운 정보를 착실히 내려받는다
중생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최상의 목표 부처의 길로 가려는 자가
가는 도중 큰 길 작은 길 오솔길 골목길과
목적지 지번이 자주 바뀐다 하더라도
인공지능人工知能AI 네비게이션은
그 때마다 늘 새로운 길로 안내할 것이다
나는 10대 중후반 녘에
지게를 걸어 장터에 내다 팔면서
몹시 추울 때는 미군 모자에 미련이 있어
가게에 진열된 모자를 도매로 사고 싶었다
미군 모자 하나로 우쭐대던 옆집 친구
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수십 켤레 장갑을 사서
친구들에게 마구 뿌리고 싶었다
추위 때문이 아니라 뻐기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끝내 미군 모자는 사지 못했다
종형從兄인 부처님을 시기하여
부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던 제바달타
어쩜 그가 나의 전신일지 모른다
못난 녀석하고는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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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2017
종로 대각사 '검찾는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