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최저임금 1만원 육박하지만…지방선 “야간 알바해도 못 맞춰줍니다”
야간 아르바이트해도 시급 8000원 받는 곳도
내년 최저임금 1만원 육박…노동계는 성토하지만
자영업자는 “전기료 내고 재료비 빼면 남는 게 얼마 없다”
포항=홍다영 기자
입력 2023.07.26 06:10
“하루 숙박비가 3만원, 저렴하죠? 값이 싸니까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일용직 근로자가 많이 와요. 그런데 요즘은 비가 와서 공친 날도 많고 손님도 줄어서 영 시원찮네요. 서울이랑 물가가 다른데… 지방은 최저임금 맞춰주기 어려워요.”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구인 공고를 보고 지난 24일 오후 경북 포항의 한 숙박업소를 찾아가자 관리자 A씨가 한 말이다. 이 숙박업소는 일주일에 6일간 오후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카운터에서 고객을 맞이하는 일을 할 직원을 구했다. 급여는 월 230만원. 시급으로 환산하면 약 800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9620원)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지난 24일 경북 포항의 숙박업소 밀집 지역. /홍다영 기자
지난 24일 경북 포항의 숙박업소 밀집 지역. /홍다영 기자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5% 오른 9860원으로 결정됐다. 노동계는 이번에도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지 못했다며 정부를 성토하지만,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인건비 부담이 또 늘었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수도권보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지방일수록 충격은 더하다. 지방의 자영업자들은 수도권보다 인건비 지급 여력이 적고, 물가도 싼데 전국에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사정 생기면 잠깐 자식에게 가게 부탁” “인건비 감당 안 돼 영감과 둘이서 꾸린다”
야간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숙박업소는 객실을 90여개 갖추고 있다. 규모가 상당하지만 직원은 2명 뿐이다. A씨는 낮에 근무하고, 밤이 되면 다른 직원과 교대한다. 직원 2명이 동시에 쉬는 날에는 업주가 대신 근무한다. A씨는 시급 8000원 수준의 임금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는 “(최저임금을 맞춰주지 못해도) 전날에도 지원자가 있었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은 업종에 관계 없이 1만원에 육박하는 최저임금이 부담된다고 했다. 포항 바닷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오늘 비가 와서 하루 종일 손님이 4~5명뿐이었다”며 “동태탕, 황태탕 몇 그릇을 팔아도 전기료 내고 재료비 빼면 남는 게 얼마 없다”고 했다. 그는 “직원은 무슨 직원이냐”며 “혼자 재료 준비, 요리, 서빙, 계산까지 하고 사정이 생기면 잠깐 자식에게 가게를 부탁한다”고 하소연했다. 포항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C씨는 “직원을 쓰자니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영감과 둘이서 꾸려간다”고 했다.
지난 24일 경북 포항의 한 식당가. /홍다영 기자
지난 24일 경북 포항의 한 식당가. /홍다영 기자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을 주겠다는 공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D씨는 월급 40만원에 직원을 구하고 있다. 한 달에 15일 간,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고객 예약을 받고 파티 음식 준비와 객실을 관리하는 업무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3800원 수준이다. D씨는 “직원들이 공용으로 머무는 방을 제공한다”며 “근처 게스트하우스는 80~90%가 무급”이라고 했다.
광주광역시의 한 독서실은 월 30만원에 총무를 구하고 있다. 일주일에 6일 간 오후 7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학생을 관리하고 청소를 해야 한다. 야간 근무지만 시급은 2300원 수준이다. 독서실 업주 E씨는 “자리를 제공하고 공부와 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시급이) 저렴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독서실은 다들 그렇게 한다”고 했다.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인건비가 부담스러운 일부 자영업자와 일자리가 급한 일부 근로자는 눈을 감고 현실을 받아들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275만6000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의 12.7%였다. 근로자 8명 중 1명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것이다. 최저임금 미만율은 농림·어업(36.6%)과 숙박·음식점업(31.2%)이 높았다.
지난 19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 모니터에 표결 결과가 게시되어 있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회의실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업종·지역 묻지 않고 전국이 동일한 최저임금…소상공인 “가게 문 닫으라는 이야기”
대안으로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본과 미국 등 해외는 지역과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지급하고 있다. 지역별 물가 수준과 업종별 근무 형태가 다른 점을 감안하는 것이다.
일본은 지역과 업종에 따라 최저임금이 다르다. 행정 구역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된 뒤 산업별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 일본의 올해 전국 평균 최저임금은 시간당 961엔(현재 환율로 8700원)이다. 가장 높은 도쿄는 1072엔(9700원), 가장 낮은 오키나와·아오모리 등 10개 현은 853엔(7700원)이다.
미국은 연방 최저임금을 결정한 뒤 주(州)마다 최저임금을 다르게 정한다. 워싱턴DC와 뉴욕 등 30개주는 연방보다 주 최저임금이 높다. 텍사스 등 15개 주는 연방과 주 최저임금이 동일하다. 미시시피 등 5개 주는 주 최저임금 자체가 없고 연방 최저임금을 따른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가 처음 시행된 1988년을 제외하고 업종별 차등 적용이 이뤄진 적은 없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6년간 최저임금이 48.7% 오르며 숙박·음식점업 등이 한계 상황에 내몰렸다”며 “영세 소상공인은 고용을 포기하거나 가게 문을 닫으라는 것”이라고 했다.
홍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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