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후 몸과 마음이 모두 여유로와 졌어요. 여기는 출퇴근 시간 개념이 아니라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지면 일이 끝나요. 자연의 순리에 따라가는 생활을 한다는 것에 만족해요"
젊은 농부 김태형(41·충남 아산) 씨. 김 씨는 팍팍한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의 삶을 선택한 귀농인인데요, 올해로 귀농 4년차를 맞았습니다.
<귀농 4년차, 여유로움을 배우고 있다는 귀농인 김태형 씨>
최근 경제위기 한파가 몰아닥치며 삶의 터전을 도시에서 농촌으로 바꾸는 '귀농'을 생각하는 도시인들이 늘고 있는데요, 하지만 도시와 농촌의 문화 차이, 힘든 농사 일, 경제적 문제 등 삶의 터전을 바꾸는 '귀농'은 생각보다 그리 녹록치만은 않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이 동네에 들어오는 것보다 젊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때 귀농하는 것이 빨리 정착하는 지름길 아닐까요?"(웃음). 라고 말하는 김태형 씨.
Q. 귀농 결심에서부터 실행까지, 귀농스토리가 궁금합니다.
A. 도시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매일 쳇바퀴처럼 도는 직장생활로 인해 몸과 마음이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고 깨닫게 되었어요.
특히 인터넷 신문사에서 근무했는데 특성상 기사마감에 대한 스트레스가 견디기 힘들었어요. 또 취재원들과 매일 반복되는 술자리를 한 10년 하다보니 몸이 못 버티겠더라고요. 몸은 불어 몸무게가 100㎏에 육박했고 술먹으면 필름이 끊겨 다음날 기억이 안나고... 정말 이러다가는 40대가 되면 쓰러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보다도 아내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남은 인생 가난하지만 즐겁게 살자"고요.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 몸과 마음을 가꿔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평생 건강하게 사는 게 농사짓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3년정도 준비했어요.
텃밭도 가꿔보고 귀농학교 강좌, 생태건축 강좌도 들으면서 말이죠. 그리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에 맞춰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무작정 내려왔어요.
Q. 귀농 선언 후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부모님이 가장 걱정이었죠. 분명 반대하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제가 2남4녀 중 장남이라 장남 컴플랙스가 심했거든요.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던가 집안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던가 하는 그런거요.
집안에서 제대로 역할도 못하면서 생각만 많이 하는 게 장남들의 특성이거든요(웃음).
그런데 부모님은 오히려 제 결정을 존중해 주셨어요. 아마 알아서 잘 살 거라는 믿음이 있으셨나봐요. 저도 자식을 키우지만 자식을 믿어준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부모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친구들은 부러워하는 한편,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기도 했죠. 팍팍한 도시를 떠나 농사짓는 모습은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먹고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들 하잖아요.
Q. 어떤 농사를 지으세요? 처음하는 일일텐데 힘들진 않으세요?
A. 귀농 첫해는 자급자족을 첫 번째 목표로 하고, 만약 먹고 남은 것이 있으면 팔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귀농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내가 먹는 음식은 내가 키우겠다는 자급자족의 실현이었거든요. 그래서 벼, 감자, 고구마, 고추, 들깨, 참께, 배추, 채소 등 마을 사람들이 심는 농작물은 모두 따라서 심었어요. 그렇게 따라하다 보니 몸이 무척 힘들었어요.
처음하는 농사일이 몸에 익숙치 않아서인지 꿈속에서도 온몸이 쑤시고 아플 정도였으니까요. 올해로 귀농 4년차인데 지금도 일을 하고 난후 저녁이면 허리와 팔다리가 쑤셔요. 아마 농사일이 몸에 익숙해지려면 적어도 5년은 지나야 하는 것 같아요.
<감자, 고구마, 대파, 오미자 등 젊은 농부 김태형 씨가 키우는 작물은 실로 다양하다>
Q. 농사일, 직접해보시니 어떤가요? 판로개척 등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A. 귀농한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한 종류의 농작물을 넓은 땅에 대규모로 지을 것인가 아니면 여러 작물을 골고루 심을 것인가에 대해 결정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택할 것이냐에 대한 결정인 것이죠. 일반적인 농사관행은 소품종 대량생산을 택하는데 저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지향하고 있어요.
따라서 판매방식도 다양한 농산물을 일정 한정된 소비자(가족)가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방향으로 판로를 개척하고 있죠.
Q. 연 소득은 어느정도인가요?
A. 글쎄요.. 귀농해서 연간 억대의 매출을 올린다는 기사들도 간혹 보긴 했지만, 저하고는 너무 거리가 먼 얘기더라구요(웃음). 지난해 농사를 지어 2천만원을 벌었는데, 이 중 농자재비를 제외한 순소득은 약 1천500만원 정도 될 겁니다.
귀농 첫해 소득이 50여 만원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성장한 셈이죠. 올해나 내년 정도면 부유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게 살 수 있는 경제적인 안정은 이뤄질 것 같아요(웃음).
<서울에서와는 달리 농촌에서는 아빠의 역할도 강조된다.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
Q. 귀농 생활이 후회될 때는 없는지요?
A. 서러움이 가장 크죠. 도시의 문화를 많이 접한 사람이 농촌을 이해하기란 참 힘든 일이더라구요. 문화차이로 인해 마찰이 일어날 경우 귀농인은 항상 이방인 취급을 받아요. ‘이것이 바로 텃새라는 거구나’ 하는 느낌.. 그런 생각이 들면 외롭고 서글퍼지죠.
Q. 귀농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때는 언제?
A. 귀농후 몸과 마음이 모두 여유로와 졌어요. 여기는 출퇴근 시간 개념이 아니라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지면 일이 끝나요. 일요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비가오면 쉬고요. 자연의 순리에 따라가는 생활을 한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봄이오면 꽃이피고 여름이 오면 온산이 초록빛으로 우거지는 모습을 매일 보면서 산다고 느낄 때 행복해집니다.
Q. 귀농 후 가족들과의 관계도 좋아졌을 것 같은데요.
A. 아내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4시간을 마주해야 합니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일을하고 술도 같이먹고, 잠도 같이자고... 서울에서는 얼굴을 마주대하는 시간이 하루 한시간이나 됐을까요?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한 속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반면 너무 잘 알다보니 서로에 대한 신비감은 줄어들죠(웃음).
아이들의 경우 일방적으로 엄마에 의존해왔던 것에서 아빠의 역할도 강조된다는 점이 좋아요. 서울에서는 평소에는 자는 얼굴만 보고 살다가 시골에선 같이 놀고 숙제하는 일이 일상이 되버렸으니까요.
<얼마전 바쁜 농사철에 잠씨 짬을 내 순천향대학으로 밤마실(벚꽃 구경)을 다녀왔다는 김태형 씨>
Q. 귀농인으로서 정부로부터 바라는 지원이 있다면?
A. 농촌은 개발보다는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농촌의 공동체 문화는 우리 사회 모두가 배우고 가꿔나가야 할 소중한 전통입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개발과 산업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예를 들면 농어촌 종합개발계획이나 테마마을, 체험마을 선정 등의 지원사업을 보면 농촌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보다는 관광 상품과 기업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대부분의 마을들이 돈 때문에 구성원들 간에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거예요. 젊은이들이 대부분 떠나가고 피폐화된 농촌이 공동체로 되살아날 수 있는 지원이 절실할 때입니다.
귀농하면 2∼3년이 고비입니다. 문화의 이질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큰 원인일 거예요.
돈보다는 귀농인들이 실제 정착할 수 있는 집과 땅을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여기에 사용되는 농기계나 농자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귀농을 계획하거나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귀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 다수가 “돈 때문에 내려가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러나 실제 시골에 내려와 생활해보니 돈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수치로 따지면 한 30% 정도나 될까요. 온 마음을 열고 사람과 땅을 맞이하고 검소하고 가난하게 살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이 동네에 들어오는 것보다 젊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때 귀농하는 것이 빨리 정착하는 지름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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