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그 여자의 안산(鞍山)
방 경희
그 여자는 안산이 바라다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남서쪽 방향의 창문을 열면 비스더미 누운 안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산이 봄부터 사계절 나날이 물감을 바꾸어 가며 한 폭의 수채화를 철 따라 곱게 그려 주고 있다.
1월 달의 겨울은 매섭게 춥다.
어젯밤 내리다만 눈 자국이 산기슭에 희끗희끗 남아 오히려 볼품이 없다.
눈이 오려다 잠간 주춤거리며 서성이고 있었나보다.
여전히 그 여자는 겨울 안산을 걸으면서 찾아 올 봄날의 따뜻한 온기를 기다리며 그리움을 찾아 아니 시(詩)를 찾아 오늘도 안산에 오른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는 올라오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 그야말로 산이 텅 비어있다.
그래서 너무 쓸쓸하고 심심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런 한적함이 오히려 혼자 이 안 산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만족감에 스스로 즐기는지도 모른다.
산 중턱(만남의 장소) 정자 입구에는 김춘수의 <꽃> 시비(詩碑)가 있다.
발걸음이 저절로 그곳에서 멈춰 선 다.
발이 이곳을 기억하고 있다가 여기까지 오면 항상 걸음이 저절로 멈춰 선다.
버릇처럼 정자기둥에 걸린 낡은 벽시계를 쳐다본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없으니 누가 와서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는데도...
그러나 그 여자는 두리번거리며 꼭 누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연을 바라면서 한참을 머
뭇 거리다 텅 빈 산허리를 돌아 깊숙이 걸어 들어간다.
아무도 없다. 빈 하늘아래 벗은 겨울나무들이 적막한 이 안산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여기 오면 스스로 시인이 된 다
하얀 자작나무숲에서는 자작나무를 위해 시를 써서 바치고, 빈 까치집 둥지에는 새봄에 돌아올 산새들을 위한 시를 지어 넣어두고....
노란 낙엽 몇 개 떨어져 쓸쓸히 앉아있는 산속 나무의자에도 가을 시 한 줄 써서 앉혀 놓고......자꾸 뒤돌아보며 돌아 나온다.
마른 나무 가지 끝에는 가버린 날들의 추억의 조각들을 주렁주렁 걸어 놓고, 오기도 한다.
안산은 그래서 그 여자의 시가 솟아나는 샘터이다.
봄날은 따뜻한 꽃노래를 짓고 여름날엔 무성한 녹음 속을 걸어가며 추억에 흠뻑 젖어 노래하고, 가을이면 그때 그 사람 옛 그림자 떠올라 그리움에 젖은 가슴 달래가며 또 그렇게 그 여자는 거기서 아픈 시를 짓고 내려온다.
때론 한 조각 시어하나 찾지 못하고 빈 가슴으로 그냥 내려올 때도 안산은 오히려 무성한 시의 정원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다.
어떤 날은 소설의 배경으로 써 보기도 한다.
누구를 주인공으로, 어디쯤, 어떤 사연을 엮어 나갈 것인가?
소설의 첫 머리에 (안산의 봄)이란 자작시 하나를 머리글처럼 써 넣어 야지...하고 서두에서부터 줄거리를 이어가며 대미까지 완성시켜 보기도 한다.
안산은 하루에도 몇 번의 변신으로 사람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아침은 찬란한 해돋이로 시작하여, 점점 퍼져 나가는 햇살이 산허리를 감돌아 모든 생명들을 깨워놓고...
한낮에는 그 생명들이 서로 어울려 함께 춤추며 노래하게 하고, 노을 지는 저녁에는 거기 찾아간 인생들에게 잔잔한 위로의 묵시를 써 주기도 한다.
오늘은 메타스퀘아 숲길까지 깊이 들어가 본 다.
그리고 문득 눈앞에 자꾸 나타나 밟히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대화하며 걷는다.
그래서 혼자 걸어도 전연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다.
심장으로 따뜻한 열기가 퍼지면서 발걸음이 더 경쾌해진다.
산모퉁이 둘레 길을 몇 구비를 돌아오는 동안 벌써 그와 나눈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아니하였지만...
오늘밤 잠들기 전에, 아마도 그는 또 한편의 시를 위하여 안산의 깊숙한 속살을 세밀히 스켓치 해놓고 설레며 잠들 것이다.
얼마 안 있으면 안산아래 홍제천변 언덕에 노랑 개나리꽃이 피기 시작하면 그는 또 재빨리 물레방아 길로 해서 홍제 천 돌다리 건너까지 내려가 안산으로 들어오는 봄을 제일 먼저 반가이 맞이하며 봄과의 교감을 은밀히 속삭일 것이다.
안산에 들어온 새봄의 서기가 자기에게 젊은 날의 생기를 되찾아 준다고 감사히 생각하기도 하고...
그 봄이 가고나면 여름이 찾아와 안산을 초록으로 물 드릴 때 그때도 그 여자는 무성한 안산의 신록을 노래하며 시를 읊고...
가을바람 불어오면, 안산과 함께 서러운 가을 노래를 짓고,
겨울 오면, 앙상한 안산을 위하여 또 다른 비감의 악보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의 가슴에만 살아 있는 한 사람에게 안산의 온갖 매력을 이야기하며 혼자 흥분하고 들떠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이 안산 깊숙이에서 고운 시어를 건져 내어 아름다운 시를 짓는 시인이고 싶은 것이다.
방경희 시니어기자
첫댓글 계절마다 시선에서 시어로 교감하신
아름다운 안산에 대해 시집이 만들어 질 것 같네요.
출간을 기대해 보고 싶습니다.
글 잘 봤습니다~^^
마술을 부리 듯,
생각만 하면 시가 되어 나오는 능력의 소유자인 멋진 그 여자는 누구?
꽃순희기자님!
김영희기자님!
시인이 되고싶은 그녀에게~/용기와 격려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산의 四季가 시인의 손끝에서 춤을 추는군요.
그 여자의 가슴에 살아있는 한 사람에게만 고백하지 마시고~~ 모두에게 알려주세요~~
서정기자님!
저의 부족한 글 읽어 주시고 댓글달아주심 감사합니다.🍅
안산을 품고 사시는
그녀.
시어로 만들어내는
감성이 참 부럽습니다.
그 기분 읽으면서
같이 느껴집니다^^
오정애기자님!
그 여자의 서투른 감성~!!
오히려 격려해 주신것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