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답다
손 원
산은 멀리서 보아야 완전한 형체를 볼 수가 있다.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이 산의 형체도 각기 다르다. 산의 전경 사진을 보면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북한산을 쉽게 구분할 수가 있다. 그 산만의 특유한 모양새와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산에 다른 배경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다양한 모습도 있다. 동녁하늘 산 끝의 장엄한 일출, 해 질 녘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연출하는 일몰은 횐상적이다. 이러한 모습은 멀리서 산, 바다, 태양을 통째로 조망할 때 더 아름답다. 영롱한 무지개는 가까이 가면 사라진다. 아름답고 영롱한 무지개를 보려면 적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 웅장한 형상은 멀리서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같이 전체를 즐길 수 있다.
반면에 가까이서 봐야 아름다움을 잘 볼 수 있고 실상 파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다. 실생활에서 가까이 볼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글을 읽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볼 때가 그렇다. 노안으로 눈 수술을 받았다. 가까운 물체를 잘 볼 수 있는 수술과 먼 곳을 잘 볼 수 있는 두 종류의 수술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노후의 삶의 질과도 직결되는 것 같아 고민했다. 아침저녁으로 베란다에서 커피 한 잔 들고 일출 일몰을 조망할 것인가, 아니면 여가 날 때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인가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얼마전 문학동호회에 가입하였기에 가까운 물체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덕분에 문학 활동을 보다 잘 할수 있어 만족스럽다.
살다 보면 눈앞의 것만 보고 소중히 여길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기본적 욕구는 쉽게 채울 수 있겠지만, 가슴에 품는 삶과는 거리가 생길 수도 있다. 가끔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고층 아파트 창문을 통하여 아스라한 먼 산을 바라보자. 푸른 공원, 은빛 하천, 곧게 뻗은 도로, 벌집같은 아파트, 근교의 산을 넘어 수백 리 밖의 산이 희끄무레 눈에 든다. 그만큼 멀리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눈앞의 가까운 곳은 벌집 같은 아파트만 보인다. 누가 사는지조차도 모르는 콘크리트 벽에 붙은 작은 창문만 보여 답답하다. 그래서 노인네들은 아파트 생활을 싫어한다. 어릴적 뛰놀던 들과 산의 흙냄새가 그립기 때문이다.
멀리 바라보면 여유롭고 긴 안목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면밀히 살피기가 어렵다. 가깝게만 보면 현실적인 처방은 쉽지만, 미래 설계에는 구멍이 있을 수도 있다. 가까운 것이 눈에 잘 들기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먼저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백년대계를 소홀히 할 수도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으로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고 좋다고 했다. 즉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기에 실리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다. 한평생이 길다면 길다. 한평생을 값지게 멋있기 살려면 우리는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오늘의 삶은 미래세대에 남겨질 유산이기에 더욱 그렇다.
근시안적인 잇속만을 챙기는 생존경쟁, 당리당략으로 세상은 메말라가고 불신으로 가득하다. 누구나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프로젝트가 없어 아쉽다. 한 민족이 국가를 이루고 있다면 국리민복을 위해 한 마음이 되어야 함에도 서로를 시기하고 헐뜯고 있다. 그래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결코 국민에게 해가 될 뿐이다. 정치가도 단수가 있어 어떤 이를 정치 9단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늘 실망하고 있다. 정치란 본래 상대의 잘못을 비판하고 자신을 내세워 권력을 잡는 속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상대의 잘잘못을 들추어 잘된 것은 수용하고 지지하는 아량이 있어야 함에도 비판 일색인 점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고 국가가 어려워지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악습이 되풀이 된다. 차라리 정치를 모르는 덕망 있는 자가 정치지도자가 되면 어떨까. 때로는 가까이 민생을 챙기고, 때로는 멀리 바라보고 미래를 설계해 주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면 좋겠다.
인생 전반전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근시안적인 삶에 충실했다. 맡겨진 업무, 해야 할 일에 매달려 가끔 작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윗사람으로부터 입에 발린 칭찬도 들었다. 일상 업무에 대한 칭찬은 오히려 자기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작은 성과에 만족하고 안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과는 오래되지 않아 잊힌다. 일시적으로 자신의 작은 성과로 인정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것이 아닌 조직 책임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확실한 자신의 성과가 되려면 조직 목표에 부합하고 두드러져야 한다. 그러한 목표와 성과는 멀리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생 후반전을 아름답게 장식하려면 예지력을 갖춰 때로는 가까이, 때로는 멀리 바라보는 혜안을 길러야겠다. 그래서 나의 글솜씨가 날로 늘어 생을 마감할 때쯤 오래 기억될 작품을 남기고 싶다. (2023.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