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박항서 감독이 올려놓은 베트남 축구에 대한 자존심을 새로운 감독인 트루시에가 망치는 데에는 단 3개월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박항서 감독 부임 시절 축구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던 인도네시아가 베트남을 침몰시키는 대이변을 만들어낸 이런 현상이 일회성이 아닌 베트남 축구의 일상이 될 수있다는 깊은 우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베트남 언론의 주된 보도 내용이다.
며칠전 동남아 축구 최강이던 베트남이 동남아시아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동남아시안 게임에서 탈락했다. 그것도 약체인 인도네시아에게 진 것이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축구의 변방 나라에게 패한 것이나 비슷한 상황이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감독이었던 2019년과 2021년 두차례 연속 정상에 올랐던 것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성적이다. 박항서 감독은 축구의 약소국인 베트남에 축구로서의 가능성을 일으켜 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이룬 성적도 성적이거니와 그것 못지않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축구 감독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모범사례를 심어준 것이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각인된 그의 이미지는 비록 실력에는 밀려도 정신이나 축구를 대하는 태도가 반듯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확신을 심어준데 있다. 박감독에게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축구선수들의 능력이 발휘된 것이지 감독의 능력은 별 것 아니다라는 의견과 외국인 감독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주된 판단은 박감독이 베트남 축구를 반석위에 올려 놓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인도네시아에게 패해 결승진출에 실패하자 베트남은 난리가 났다. 인도네시아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한 시민은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다른 국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인도네시아 축구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와 비슷한 축구 수준을 가지고 있어 베트남과 태국과는 큰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한국과 일본이 중국에게 패배하여 탈락했다고 생각해 보아라"라는 시민의 말에서 베트남 국민들의 실망감과 분노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몇년전 베트남에서 장시간 머문 적이 있다. 베트남이 축구는 잘 하지못해도 축구에 대한 열정만은 남미나 유럽 어느 나라보다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축구에 거의 미친 국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나라 국민이니 지금 베트남의 분위기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베트남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경기후 있은 베트남 감독 트루시에의 언급이다. " 우리팀은 최선을 다했지만 이기지 못했다. 우리는 이것이 현실임을 깨닳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이길 수 있는 팀이 아니다. 지난번 두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어쩌면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지금은 팀이 변하는 시기이다. 우리는 그동안의 전술에서 벗어나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트루시에 감독의 발언은 베트남 국민들의 실망감을 분노로 폭발하게 했다. 3개월동안 변한 것은 감독 한사람 바뀐 것뿐인데 이런 결과에 이런 변명을 내놓은 것에 대한 극도의 분노표출이다.
어떻게 보면 트루시에는 박항서에 비해 초 스타급 감독이다. 프랑스 축구선수 출신 스타급 선수에 스타급 감독으로 명성을 날렸다.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을 지냈고 카타르 국가 대표 감독 그리고 모로코 국가 대표 감독 등 굵직굵직한 국가대표 감독 출신이다. 이에 비해 박항서는 보잘 것 없다.2002 월드컵 한국 축구팀의 코치가 내세울 유일한 명성이다. 하지만 지금 베트남국민들에게는 박항서가 트루시에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감각과 비젼을 가진 감독으로 보이고 있다. 트루시에는 박항서감독의 후임을 맡으면서 박항서 지우기에 나선 것인지도 모른다. 트루시에는 일본 대표팀 감독을 지내면서 한일간의 그 엄청난 갈등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베트남 감독으로 제안받았을 때 박항서라는 인물을 왜 몰랐겠는가. 아주 우습게 판단했을 수도 있다. 자신의 그 휘황찬란한 명성에 비해 박항서감독의 경력은 참으로 미약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트루시에는 간과한 것이 있다. 베트남의 현실과 베트남 선수들의 능력파악 그리고 베트남에 대한 열정에서 자신이 박항서에게 뒤져도 많이 뒤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의 선수들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파악했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을 것을 말이다.하지만 그 단점은 뒤로하고 장점살리기에 주력했다. 항공기로 이동할 때도 자신은 가급적 선수들과 같이 이코노미석에 앉기를 선호했다. 자신에 준 비지니스석은 힘들고 아픈 선수에게 양보했다. 그런 그의 배려가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여 동남아시아 축구 최고 자리에 오르게 한 것이다.
박항서 감독은 지금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팬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복귀설에 강한 선을 긋고 있다.
"나는 한사람의 축구팬으로 베트남 축구를 응원하는 입장입니다. 저의 발언이 일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에게는 굉장히 큰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전 베트남 축구 감독이지 더 이상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라면서 멀리서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아무리 트루시에가 유능하다고 해도 박항서에게는 족탈불급일 수밖에 없다.
2023년 5월 1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