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운 2장 31절 갑자년 十一월에 태인도장에 가셔서
庚은 변경지이시(變更之伊始)하고
申은 신명지의당(神明之宜當)이라
천어사어경신(天於斯於庚申)하고
지어사어경신(地於斯於庚申)이라
만물종어경신(萬物終於庚申)하고
아역여시경신(我亦如是庚申)이라
고 밀양의 이 우형ㆍ김 용국ㆍ박 민곤ㆍ안동의 권 태로ㆍ청송의 조 호규ㆍ의성의 김 장회ㆍ봉화의 박 붕래ㆍ김천의 김 규석 등에게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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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度數 와 관련되어 있는 글이다.
그런데, 度數 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아직까지 이 글에 실려져 있는 度數 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거들기만 할 뿐
(1) 神明之宜當
庚은 변경지이시(變更之伊始)하고
申은 신명지의당(神明之宜當)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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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무당들의 모임을 < 庚申회> 라고 했었다고 한다.
그만큼 庚申 이라고 하는 두 글자는 무당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
'神明之宜當' 에 관해서는 申 의 글자풀이를 통해서 이야기했었다.
申 의 반대쪽에 있는 글자는 寅 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申 을 이야기했다면 반드시 申의 짝인 寅 도 동시에 떠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고법을 "음양적"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삼합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주로 <寅午戌 삼합> 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설명하기 쉽기 때문이다. 아침(寅: 동방 인)에 일어나 낮(午) 에 활동하다가 저녁(戌)에 집으로 돌아가는 인간사와 비슷하기 때문에 설명하기 쉽다. 午가 <寅午戌 삼합> 의 中 이기 때문에 <寅午戌 삼합>은 5행으로 보면 火 에 해당한다. .....이것은 마치 독존석가불 의 두 글자인 '용봉' 의 관계와 같다. 龍 은 鳳 이 필요하고 鳳은 龍 이 필요하다. 여기서 천하일등무당(人)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神) 가 있다. 물론 천하무당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
<寅午戌 삼합> 의 반대편에 <申子辰 삼합> 이 있다.....
도주님의 " 申은 신명지의당(神明之宜當)이라" 라는 표현은 <申子辰 삼합> 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鳳 을 중심으로 놓고 쓴 글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萬物終於庚申 이 언급되고 있다.
(참고)
교법 3장 24절 상제께서 교훈하시기를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느니라. 이제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 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라.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
”예시 67절 상제께서 또 어느 날 약방 대청에 앉고 류 찬명을 마루 아래에 앉히고 “순창 오선위기(淳昌五仙圍碁), 무안 호승예불(務安胡僧禮佛), 태인 군신봉조(泰仁群臣奉詔), 청주 만동묘(淸州 萬東廟)”라 쓰고 불사르셨도다. 이때에 찬명이 좀 방심하였더니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신명(神明)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네가 어찌 방심하느냐” 하셨도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보면.....
도주께서 이런 이야기를 왜 泰仁 도장에 가셔서 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義 의 반대편에 仁 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
행록 3장 43절 어느 때 고양이를 보시고
嘴力未穩全信母 卵心常在不驚人
身來城國三千里 眼辨西天十二時
라고 지으셨도다.
(2) <寅午戌 삼합> 과 <申子辰 삼합>
성사의 공사에 중요한 두 가지 동물이 나온다.
(寅午)戌 과 ( 申子)辰 이다.
(참고)
공사 3장 12절 상제께서 남쪽을 향하여 누우시며 덕겸에게 “내 몸에 파리가 앉지 못하게 잘 날리라”고 이르시고 잠에 드셨도다. 반 시간쯤 지나서 덕찬이 점심을 먹자고 부르기에 그는 상제의 분부가 있음을 알리고 가지 아니하니라. 덕찬이 “잠들어 계시니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기에 덕겸이 파리를 멀리 쫒고 나가려고 일어서니 상제께서 문득 일어나 앉으시며 “너는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느냐. 공사를 보는 중에 그런 법이 없으니 번갈아 먹으라”고 꾸짖으셨도다. 이 공사를 끝내시고 상제께서 양지에 무수히 태극을 그리고 글자를 쓰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덕겸에게 동도지(東桃枝)를 꺾어오라 하시며 태극을 세되 열 번째마다 동도지를 물고 세도록 이르시니 마흔아홉 개가 되니라. 상제께서 “맞았다. 만일 잘못 세었으면 큰일이 나느니라”고 말씀하시고 동도지를 들고 큰 소리를 지르신 뒤에 그 문축(文軸)을 약방에서 불사르시니라. 그 후 상제께서 다시 양지에 용(龍) 자 한 자를 써서 덕겸에게 “이것을 약방 우물에 넣으라” 하시므로 그가 그대로 하니 그 종이가 우물 속으로 가라앉았도다.
예시 49절 김 경학이 김 자선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냈을 때 상제께서 “어젯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하라”고 경학에게 이르시니 그는 “개 한 마리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보고 구하러 달려갔더니 그 개가 우물에서 뛰어나와 다른 곳으로 가 버렸나이다”고 꿈 이야기를 여쭈니 상제께서 “속담에 강성(姜姓)을 강아지라 하니라. 네가 꿈을 옳게 꾸었도다”고 말씀하셨도다.
(2) 變更之伊始
庚은 변경지이시(變更之伊始)하고
申은 신명지의당(神明之宜當)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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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變更之(伊)始> 의 출처는 아래에 있다.
(아래)
九五는 貞이면 吉하여 悔亡하여 无不利니 无初有終이라 先庚三日하며 後庚三日이면 吉하리라.
구오(九五)는 정(貞)하면 길(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져서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초(初)는 없고 종(終)은 있다. 경(庚)으로 3일을 먼저 하고 경(庚)으로 3일을 뒤에 하면 길(吉)하리라.
【本義】 貞하여 吉하니,
【본의】 정(貞)하여 길(吉)하니,
【傳】 五居尊位하여 爲巽之主하니 命令之所出也라 處得中正하여 盡巽之善이나 然巽者는 柔順之道니 所利在貞하니 非五之不足이요 在巽에 當戒也라 旣貞則吉而悔亡하여 无所不利하리니 貞은 正中也니 處巽出令이 皆以中正爲吉이라 柔巽而不貞이면 則有悔니 安能无所不利也리오 命令之出은 有所變更也니 无初는 始未善也요 有終은 更之使善也니 若已善이면 則何用命也며 何用更也리오 先庚三日, 後庚三日吉은 出命更改[一作故]之道 當如是也라 甲者는 事之端也요 庚者는 變更之始也라 十干에 戊己爲中하니 過中則變이라 故謂之庚이라 事之改更을 當原始要終하여 如先甲後甲之義니 如是則吉也라 解在蠱卦하니라.
오(五)가 존위(尊位)에 거하여 손(巽)의 주체가 되었으니, 명령이 나오는 곳이다. 처함이 중정(中正)을 얻어 손(巽)의 선(善)을 다하였으나 손(巽)은 유순(柔順)한 도(道)이니, 이로운 바가 정(貞)에 있으니, 오(五)가 부족한 것이 아니요 손(巽)에 있기 때문에 마땅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정(貞)하면 길(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져서 이롭지 않은 바가 없을 것이니, 정(貞)은 바로 중도(中道)에 맞는 것이니, 손(巽)에 처하고 명령을 냄이 모두 중정(中正)을 길(吉)함으로 삼는다. 유손(柔巽)하기만 하고 정(貞)하지 못하면 뉘우침이 있으니, 어찌 이롭지 않은 바가 없겠는가. 명령을 냄은 변경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무초(无初)’는 처음에는 선(善)하지 못한 것이요, ‘유종(有終)’은 변경하여 선(善)하게 하는 것이니, 만약 이미 선(善)하다면 어찌 명령할 것이 있으며, 어찌 변경할 것이 있겠는가. ‘선경삼일(先庚三日) 후경삼일길(後庚三日吉)’은 명령을 내어 변경하는 도(道)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갑(甲)은 일의 시작이고 경(庚)은 변경의 시작이다. 십간(十干)에 무기(戊己)가 중간이니, 중(中)을 넘으면 변한다. 그러므로 경(庚)이라 이른 것이다. 일의 변경은 마땅히 시초를 근원하고 종(終)을 맞추어 선갑후갑(先甲後甲)의 뜻과 같이 하여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길(吉)하다. 해설이 고괘(蠱卦)에 나와 있다.
【本義】 九五剛健中正而居巽體라 故有悔나 以有貞而吉也라 故得亡其悔而无不利하니 有悔는 是无初也요 亡之는 是有終也라 庚은 更也니 事之變也라 先庚三日은 丁也요 後庚三日은 癸也니 丁은 所以丁寧於其變之前이요 癸는 所以揆度(탁)於其變之後니 有所變更而得此占者는 如是則吉也라.
구오(九五)가 강건중정(剛健中正)한데 손체(巽體)에 있기 때문에 뉘우침이 있으나 정(貞)이 있어 길(吉)하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어져서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뉘우침이 있음은 이는 시초가 없는 것이고, 뉘우침이 없어짐은 이는 종(終)이 있는 것이다. 경(庚)은 변경함이니, 일을 변하는 것이다. 경(庚)보다 3일을 먼저 한다는 것은 정(丁)이요, 경(庚)보다 3일을 뒤에 한다는 것은 계(癸)이니, 정(丁)은 변경하기 전에 정녕(丁寧)히 하는 것이요 계(癸)는 변경한 뒤에 헤아리는 것이니, 변경하는 바가 있으면서 이 점(占)을 얻은 이는 이와 같이 하면 길(吉)하다.
象曰 九五之吉은 位正中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구오(九五)의 길(吉)함은 자리가 바로 중도(中道)에 맞기 때문이다.”
【傳】 九五之吉은 以處正中也니 得正中之道면 則吉而其悔亡也라 正中은 謂不過, 无不及[一作无過不及]하여 正得其中也라 處柔巽與出命令은 唯得中爲善이니 失中則悔也라.
구오(九五)가 길(吉)한 것은 처함이 바로 중도(中道)에 맞기 때문이니, 바로 중도(中道)에 맞으면 길(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진다. 정중(正中)은 과(過)하지 않고 불급(不及)함이 없어서 바로 그 중도(中道)를 얻음을 이른다. 유손(柔巽)에 처함과 명령을 냄은 오직 중도(中道)를 얻음이 선(善)하니, 중도(中道)를 잃으면 뉘우치게 된다.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TMN43-wb5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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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스핏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스핏님은 왜 이 글을 올렸을까? ... 를 늘 궁금해 합네닷. 본인은 알고 썼겠지만 읽는분들은 감을 잡지 못한다에 500원 x 10 = 5,000원 겁네다. ^^
그러면 글을 지대로 쓰고 있는 거군요...ㅎ
(예정에 없던 글인데, 쉬운 글 하나 올렸습니다. 맘에 드실런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