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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순경에 옆지기가 불쑥 한마디 내뱉는다.
"규슈 올레길이 있다는데 한번 가 볼래 ?"
뜬금없이 하는 말 같지만 이미 여행이 확정되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일단 올레길이라니 걷는 것은 당연할테고 걷기 좋아하는 나는 무조건 오케이 했었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알아보니 규슈 올레길은 네개의 코스가 있었고,
마음같아선 다 가보고 싶지만 한정된 시간이라서 그 중 가장 운치있다는 오쿠분고(奧豊後) 코스를 택했다.
참고로 규슈 올레길 네곳의 코스는,
사가현(佐賀縣)의 다케오 코스
구마모토현(能本縣)의 아마쿠사-이와지마 코스
오이타현(大分縣)의 오쿠분고 코스
가고시마현(鹿兒島縣)의 이부스키 코스.
후쿠오카(福岡)에서 오쿠분고 올레길 찾아가는 방법은,
☞ 후쿠오카공항, 하카타항 → 하카타 역 ─(특급 소닉호)→ 오이타 역 ─(보통열차)→ 아사지 역
☞ 후쿠오카공항, 하카타항 → 하카타 역 ─(신간선)→ 구마모토 역 ─(규슈횡단특급)→ 분고다케타 역
두가지 이동방법중에서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하카다(博多) 역에서 오이타(大分) 역까지 특급열차를 이용한 후,
오이타에서 호히혼센(豊肥本線)을 운행하는 보통열차편으로 아사지(朝地) 역에 내리는 코스를 이용한다.
오쿠분고 코스는 규슈(九州) 오이타(大分)현에 있는
작고 소박한 무인역 아사지(朝地) 역에서 분고타케다(豊後竹田) 역까지 11.8Km의 코스로,
일본의 전형적인 산촌과 수려한 자연의 풍광이 잘 조화된 아름다운 길이라고 하여 기대가 크다.
로고는 제주올레의 간세를 그대로 사용하며 제주올레에서와 같이 간세와 화살표, 리본을 따라서 길을 걸으면 된단다.
이른 아침을 먹고서 오이타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카다 역을 08:23 AM 출발하여 오이타에 10:44 AM 에 도착하는 특급열차 소닉(Sonic)의 내부 모습으로,
의자 헤드레스트 모양이 특이하고 통로측에 달려있는 손잡이의 앙증스런 모습이,
어제 구마모토성을 방문할때 이용했던 신간선 열차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벳부(別府)를 지나니 차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데,
나이가 들어도 기차여행은 막연한 기대감이 들게 하고
그 위에 바다모습까지 더해지니 마음 설레이지 않을 사람 뉘있을까 ?^^
하카다 역을 출발한지 2시간 20분 후 오이타 역에 도착했다.
초행길인 오이타 역이고 여기서 다시 호히혼센선으로 갈아타고 아사지 역까지 가야 하지만,
믿음직한 가이드가 있기에 걱정은 뚝~!
오이타 역에서 아사지행 열차를 환승할때,
여유 시간이 없어서 열차타는데 급급하다보니 어떻게 생긴 열차인지도 몰랐으나,
타고나서 보니 앞뒤로 조종간이 있는 딸랑 두량짜리 열차.
오이타 역에서 아사지 역까지 한시간 반정도 걸리는 동안,
차창으로 보이는 생소한 일본의 산골정경에 눈이 바빠 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지 열차는 힘이 부치는듯 점점 더 엔진소리가 커져만 가고~
지도로 확인해 보니까, 내려야 하는 아시지 역의 두구간 전에 있는 분고키요카와 역이 창으로 휘릭~
목적지인 아사지 역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혀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서행하던 열차가 정차를 했는데도 문을 안열어 주는게 아닌가 ??
손으로 열차문을 연다고 낑낑대어 봤지만 열리지 않았고 그 순간 열차는 출발하고 말았다.
당연히 열차가 역에 서면 열차문이 열리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런~ 발만 동동~!
알고보니 아사지 역이 무인역이라,
기관사에게 내린다는 의사표시를 해야하는데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었고,
하필이면 두량의 객차중에서 뒤쪽 객차에 타고 있다보니 생긴 해프닝였단다. ㅎㅎ
결국은 아차하는 순간에 아사지 역에 내리지 못하고,
다음역이자 이 열차의 종점인 분고타케다 역에 내릴 수밖에 없었다. ㅋ~
정차하고, 있는 타고 온 열차 모습.
분고타케다 역앞 모습.
오쿠분고 올레 코스는 아사지 역에서 분고타케다 역까지 한구간인데,
지금 있는 이 곳 분고타케다 역에서 코스를 시작하여 아사지 역으로 도착하는 역코스로 걸으려다가
분고타케다 역을 종착지로 하면 코스를 마친 후 온천 또는 적어도 족욕이라도 할 수 있기에
원래 계획대로 지나쳐 온 아사지 역으로 되돌아 가기로 결정.
오쿠분고 올레길의 종점이자 출발지인 분고타케다 역의 내부.
아사지 역으로 가는 방법은 열차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손쉬운데,
시간상으로는 계획보다 한시간 이상을 허비하다 보니 서둘러야 할 상황이 되었어만,
그렇다고 비싼 택시를 탈 수는 없고 예정시간보다 빨리 출발하는 열차도 아니니 그냥 기다릴 수 밖에~
이번에는 기관사에게 확실하게 내린다는 의사를 전달하니,
아까전에 아사지 역에 못내린 일이 생각났는지 멋적은 웃음을 보이더라.^^*
떠나는 열차의 뒷모습은 언제나 아련한 미련을 남기고...
규슈지역의 왠만한 곳은 표지판에 한글이 병기되어 있지만,
이 곳 아사지 역에 있는 오쿠분고 올레 표지판은 한글이 우선적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만큼 많은 한국사람들의 방문을 기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사지 역의 관광안내소 직원이 반갑게 맞이해 주는 관광안내소 내부에는
그동안 이 곳을 다녀 간 한국사람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다음에 방문하면 혹시 우리사진이 걸려 있을지도 몰라~ ㅎ
위 사진은 그 직원분이 찍어 주었단다.^^
아담한 무인역의 정취를 느끼며,
역을 나서서 바로 오른쪽 차도로 방향을 잡으면 오쿠분고 올레길이 시작된다.
지도와 함께 리본을 이정표 삼아 부지런히 걸어야 하는 상황.
시간을 허비한 탓도 있지만 초행길이라 생소한 길에서 어떤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더군다나 산골에는 해가 일찍 지니 어둡기 전에 목적지인 분고타케타 역에 도착하려면 길을 서둘러야 한다.
코스는 이내 차도를 벗어나서 부엽토가 푹신한 산길로 접어 드는데,
평일이어서 인지 길을 시작하는 사람은 우리 뿐이라 한적하기 그지 없다.
맑은 향기를 머금은 엷은 바람이 산자락을 찾아들어 낯선 여행객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약간 방치한 느낌이 드는 환영 깃발도 보이고~
초기에는 포토존의 기능을 충실히 했을거란 짐작을 하면서 스쳐 지나친다.
올레길 주변으로 보이는 추수가 끝난 논과 일본의 농가들의 모습.
소박한 시골길을 걷는 동안 길에 스며있는 삶의 흔적들을 가슴으로 느껴도 보고...
코스의 연결에 어려움이 있었는지 인도와 아스팔트 차도가 교대로 이어지는데,
보이는 원통 터널을 지나기전 오른쪽으로 나 있는 오솔길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올레길로 접어든다.
시작 기점 1.8Km 지점에 있는 유자쿠공원(用作公園) 입구.
마치 추석때 성묘라도 한 듯 주변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곳으로,
나무 계단이 보기에는 좋으나 경사가 심하지 않은 곳에는 차라리 계단이 없는 게 오히려 걷기가 편한데... 투덜투덜~~
유자쿠공원(用作公園)은 에도시대 오카번의 중신에게 하사된 별장지라고 하며,
현재 당시의 건물은 남아있지 않으나 정원의 흔적으로 '心'과 '丹' 모양을 딴 연못이 남아있고,
주변에는 많은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있어서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연못 주변의 풍치로 가늠해 보면 제철 단풍들면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풀벌레소리와 수풀을 휘젓는 바람소리...
그리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산골의 모습이 왜 이렇게도 가슴벅찬 감동을 줄까 ?!
나이 들면서 감정변화에 인색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아닌가 보다.^^
다시 호젓한 숲속으로 접어드니,
세월이 묻혀있는 듯한 낙엽쌓인 길이 걷는 사람의 심신을 편하게 해주고,
숲의 정기가 어느새 비워진 마음속을 파고들어, 맑은 기운으로 채워지는 충만감에 기분이 짱이다 !!
아주 잠시동안 제주 올레길의 빼어난 풍광이 떠오르기도 했으나,
규슈 올레길이 제주 올레길을 벤치마킹을 했다해서 그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
걷는 걸음마다에 실린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주고
희열과 한탄과 변덕스런 심술까지도 조용히 다독이며 품어주는 고마운 길이라 생각하면 그만인데,
시시비비를 가리듯 굳이 어떻다 하며 의미를 붙이는 수고는 불필요한 사고의 낭비가 아닐까 ?
이 길은, 그냥 세상에 나있는 우리가 감사해야 할 수많은 길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계속 걸었다.
파란색은 분고타케타, 다홍색은 아사지 방향.
규슈 올레의 상징은 다홍색으로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사의 토리이(鳥居) 색깔인데,
일본 문화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색이며 일본을 상징하는 토키(따오기)라는 새의 머리와 발 색깔이라 한다.
다른 뜰에는 이미 추수가 끝났던데,
아직 베지도 않은 논을 보니 아마도 만생종 벼인가 보다.
깊은 산골이라 산짐승의 피해가 많아서 인지 논 주변으로 전기가 흐르는 방책이 설치되어 있었다.
길은 아주 완만한 오름을 이루면서
누렇게 익어가는 산비탈의 계단논을 보여주는데,
아마도 멀리서 보면 이 곳은 다랭이논 형태가 아닐까...
숲속에는 향기가 잔잔하게 퍼지고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는 고요한 평화가 가득해지는 매력적인 길이 계속 쭉~
대나무가 쓰러져 있는 길도 있었는데,
쓰러진 수목들이 덩치가 큰 나무들이라면 경관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나,
바람에 쓰러진 자잔한 나무들은 치워버리는게 오히려 미관상이나 걷기에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주변에 마을이 있는지, 오래된 듯 보이는 나무뿌리 밑의 샘물.
약간 스산한 느낌이 들었지만 더운 여름철에는 나그네에게 아주 반가운 장소임은 분명할 듯~
논두렁을 태우는 연기가 산기슭을 감싸 오르고...
햇볕이 따사롭게 내려 앉는 논에는 가을걷이를 한 볏단이 속알까지 익어가고...
그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평화로운 모습으로 각인되고...
오쿠분고 올레길 2편으로 계속...
첫댓글 부부가 함께 여행 다니기 좋아하는
관순이는 좋겠다.
사진도
설명도 넘 멋지다 .
관순이 부부 대단하다. 멋진 중년을 보내는 것 같다. 부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너무 용기가 필요해
오우~~~ 깨끗한 일본에 다시 한 번 감동받는다. 관순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