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도(生死島) 1-3
당시 하북의 무림 제문(諸門)은 당대의 신검문주인 은하검(銀河劍) 옥
구렴(玉龜濂)을 맹주로 하여 거대한 연합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당연히
신검문은 하북 무림 연합의 주축으로서 맹약을 맺은 여러 방회를 거느리
고 있었는데, 흑석곡(黑石谷)도 그 중 한 곳이었다.
당대의 흑석곡주(黑石谷主)는 육가릉(陸加陵)이었다. 그는 철담소심
(鐵膽素心)이라는 명호로 강호 동도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의
로운 일에는 물과 불을 가리지 않았고, 불의한 일에는 목숨을 걸고 달려
드는, 보기 드문 호한(好漢)이기 때문이었다.
벗을 사랑하기를 피붙이와 다름없이 했으며, 불의한 자 대하기를 원수
처럼 했다. 철담소심이라는 별호만큼이나 두려움을 모르는 깨끗한 성품
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은하검 옥구렴은 그런 육가릉의 호협함을 높이 샀다. 그는 육가릉과
의형제를 맺었고, 그 때부터 흑석곡은 신검문의 한 식구가 되어 하북 무
림을 이끌어 갔다.
신검문의 전대 문주이자 신선의 기품을 지니고 있는 소요선검(逍遙仙
劍) 옥궁적(玉宮積)의 이순(耳順) 하례연에 수많은 군웅들이 모여들어
보름을 머물며 그치지 않을듯한 연회를 즐겼다. 드디어 그 마지막 날 옥
구렴은 각 방파의 사절들과 지인, 문중의 원로들만을 따로 초빙해 신검
각(神劍閣)에서 송별회를 겸한 연회를 열었다.
육가릉(陸加陵)은 그 자리에 하나뿐인 아들 육초량(陸超梁)을 데리고
참석했다. 열 한 살의 어린 소년에 불과했지만, 육초량의 의젓한 기품은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육초량은
단번에 연회의 중심에 섰다. 그를 가장 마음에 들어한 것은 그 연회의
주인인 옥궁적이었다.
『아비보다도 오히려 크게 될 아이다.』
옥궁적은 연신 탐스러운 수염을 쓰다듬으며 육초량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손자인 옥풍규(玉風揆)를 돌아보고 육초량을 다시
보며 마음에 이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손자이자, 아비의 뒤를 이어
신검문을 이끌어가야 할 옥풍규였지만 그 타고난 기품에 있어서 눈앞의
육초량보다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풍규보다 네 살이 위라니 앞으로는 형이 되어 풍규를 잘 보살
펴 주거라.』
육초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타이르는 옥궁적의 눈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는 문득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옥구렴 곁에 다소
곳이 손을 모으고 서있는 아름다운 여아(女兒)를 보았다. 옥궁적의 입가
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당대의 신검문주인 은하검(銀河劍) 옥구렴(玉龜濂)이 뒤늦게 맞아들인
후처에게서 얻은 딸이자 옥풍규의 이복누이인 옥소소(玉素小)였다. 아홉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옥소소에게서는 벌써 정숙하고 우아한 기품이 엿
보였다.
옥궁적은 그 자리에서 장차 옥소소의 배필로 육초량을 꼽았다. 흑석곡
이라면 신검문의 사돈이 될 가문으로써 부족함이 없었고, 육초량의 뛰어
남에 이르러서는 소소의 아비인 옥구렴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겨우 일곱살의 옥풍규는 아직 그녀가 자신의 이복누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녀간의 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옥풍규는 다만 자신이 마음으로부터 아끼고 곱게 여기는 누이가 생전 처
음 보는 또래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웃는 것을 보고 심통이 났다. 네 살
위라지만, 자신보다 훨씬 의연해 보였고, 기품 있어 보이는 육초량에 대
한 미움에 질투의 감정까지 덧씌워졌다. 육초량이 소소의 작은 손을 잡
고 서서 모두의 웃음과 갈채를 받으며 옥궁적에게 절을 올릴 때 옥풍규
는 두 눈 가득 분한 기운을 담고 혼자서 씩씩거렸다.
한 가문이든 한 나라이든, 그것이 쇠퇴할 때면 먼저 안에서 조짐이 보
이는 법이었다. 신검문도 옥구렴의 대에 이르러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순의 연회를 받은 옥궁적이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산수간에 노
닐기 위해 온다 간다 말 없이 떠난 다음 해의 일이었다.
신검문의 세력 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난 흑룡보(黑龍堡)의 처음은 보
잘것없이 미약했다. 그러나 그것은 신검문의 실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
안주인 사이의 암투에 편승하면서 조금씩 발톱을 세워갔다.
옥구렴의 정부인이자 옥풍규의 모친인 강수은은 시앗이 심한 여자였다.
옥구렴의 사랑이 첩실인 주연연에게 기울자 그 분노가 지아비에게까지
미쳤다. 그녀는 자신을 배신한 지아비를 몰아내고 아들인 풍규를 문주로
세울 계획을 세웠다.
신검문 내에 그런 암투가 벌어지자 문중의 충복들은 물론 문 밖의 세
가들까지 두 패로 나뉘어 반목하기 시작했다. 그 그늘에서 흑룡보는 서
서히 구름을 끌어 모으며 못을 떠나 구만리 창천으로 날아 오늘 날을 손
꼽았다. 어쩌면 흑룡보라는 세력 자체가 신검문에서부터 싹튼 건지도 몰
랐다. 아니면 신검문의 힘을 먹고 자란 뿌리혹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
다.
강수은과 그녀의 지지 세력들 중 일부가 흑룡보와 내통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흑룡보가 웅크렸던 음지를 버리고 마각을 드러냈을 때, 그들이
첫 제물로 삼은 것이 흑석곡이었다. 흑석곡이야말로 신검문의 외문을 지
키는 수호자였으며, 바깥으로 내뻗은 한 팔이기 때문이다.
신검문의 지원이 없이 혼자의 힘으로 흑룡보의 드러난 힘을 당해낸다
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육가릉은 세 번째의 파발마가 빈손으로 털레
털레 돌아왔을 때 옥쇄를 결정했다. 세 번씩이나 급박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달려간 사자들은 신검문주 옥구렴을 만나기는커녕 본전(本殿)에 발
도 들이지 못한 채 내성 문밖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을 버티고 흑석곡은 흑룡보의 발아래 처절하게 짓밟혔다.
곡주 육가릉을 비롯한 가솔과 문하인들 이백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
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흑석곡은 석 달 동안 피비린내가 떠도는 귀곡이
되고 말았고, 옥구렴은 그것이 반란을 꾀하던 자의 말로라고 믿었다. 베
개머리 송사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고, 침상에서 속삭이는 강수은의 이간
질에 귀를 빼앗긴 탓이었다.
흑석곡의 이백 가솔들이 몰살당했을 때, 육초량은 가복의 희생으로 겨
우 몸을 빼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는 하북의 말단 자운부(磁暈府)에 속한 온주현(溫州縣)에서 신검문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흑룡보의 깃발이 신검전 앞에 내걸렸다지만
육초량은 애써 무관심하게 외면했다.
<이것은 아비가 택한 길이다. 너는 네 길을 갈 뿐, 아비의 죽음에 연
연해하지 말아라. 더 큰 뜻을 세우고 이루었다면 그 때 이 못난 아비와
가문의 명예를 네 손으로 되찾아 다오. 그거면 족하다.>
울부짖는 그를 쫓아내며 엄하게 이르던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그 때부
터 어린 육초량의 가슴속에는 무거운 바윗돌 하나가 가라앉았다. 복수는
작은 일이다. 가문의 명예를 만천하에 드날리는 일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큰 일이다. 육초량은 늘 스스로에게 그렇게 이르며 살아 남기 위해
활 한 자루를 둘러메고 용화산중을 떠돌았다.
『꿇어라!』
옥풍규의 입에서 날카로운 호통이 터져 나왔다. 육초량은 허리를 곧게
펴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아버님이 홀로 궁벽한 산곡에서 검을 꺾이는 수모를 당하고 목이
떨어졌을 때 신검문과의 인연도 끝났다. 더구나 나는 신검문의 가신도
아니고 충성을 맹약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내가 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이유가 있나? 있다면 꿇지.』
감정을 절제한 육초량의 당당한 기개 앞에서 옥풍규는 분노로 부들부
들 떨었다.
『외숙, 저 발칙한 놈을 잡으세요!』
육초량을 손가락질하며 강사옥을 향해 호통쳤다.
『문주, 참으시오. 어쨌든 그는 생명의 은인. 그의 가문 또한 신검문
의 충신이었소. 그가 오늘 본문과의 인연이 끝났다고 한 이상 그대로 돌
려보내는 것이......』
강사옥이 옥풍규의 외숙이라는 데에 육초량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개
의 무리 속에 호랑이는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육초량은 안타까운 눈으
로 강사옥을 한 번 바라보았을 뿐 이내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갔다.
『외숙마저......』
자신의 말이라면 모든 것을 다 들었던 강사옥이 육초량을 비호하자 옥
풍규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말을 잇지 못하고 한동안 몸을 떨던 그가
품속에서 예리한 비수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강사옥이 앗! 하고 놀라
는 사이에 옥풍규는 몸을 던져 육초량을 찍었다.
『죽엇!』
어깨 너머로 섬뜩한 살기가 뻗쳐왔다. 그러나 돌아선 육초량은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우뚝 서서 옥풍규의 악에 치받친 비수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어깨에 파고드는 서늘한 느낌과 함께 뜨거운 통증이 가슴을 달구었다.
한 줄기 선연한 피보라가 밤하늘을 물들이며 쭉 뻗어 나갔다.
『문주!』
다급히 몸을 날린 강사옥이 육초량의 앞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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