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김 난 석
새해 첫 영화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택했다. 18세기 불란서 브르고뉴 지방을 배경으로 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여성 동성애 영화다. 백작부인이 두 딸 중 큰딸을 어느 지방 남성에게 시집보내기로 되었는데 딸이 이를 마다하고 자살하게 됨에 따라 작은 딸 엘로이즈를 대신 시집보내기로 한다. 시집보낼 때엔 초상화를 가지고 가야하는 고로 백작부인은 여성화가 마리안느를 초대해 작은딸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지만 시집가기를 싫어하는 엘로이즈는 초상화 모델 하기를 기피한다. 그래서 마리안느는 자신이 화가라는 걸 숨기고 이리저리 엘로이즈의 특징을 살펴가며 초상화를 그려가지만 그 작품은 마리안느에게도 흡족치 못해 찢어버리고 만다. 그러던 중 서로는 조금씩 인간적인 접촉을 해가면서 가까워지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며, 그런 과정에 초상화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영혼이 담긴 작품으로 완성되어 간다.
초상화가 완성되던 날 엘로이즈는 자신의 초상화와 함께 결혼상대인 남성에게 보내지게 되고 이로써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와 결별하게 되는데, 이때 비발디의 4계 중 여름 제3악장이 한참이나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주인공은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린다.
18세기 유럽 특히 불란서는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시대였다. 그런 가운데 영화의 감독을 비롯해 주인공 넷은 모두 여성들일뿐더러(백작부인, 화가 마리안느, 백작의 둘째 딸 엘로이즈 및 하녀 소피) 이들은 여성들만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성이나 사랑 또는 삶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따라서 여성들에겐 동질감을, 남성들에겐 신비감을 갖게 한다.
주인공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좁은 어깨 아래로 풍만한 엉덩이를 감싸는 의상 덕에 바로크 시대의 여성들을 보는 느낌을 준다. 몽환적 윤곽과 볼그레한 뺨에 빛나는 눈동자는 마네나 모네 르노아르 등의 명화를 보는 듯하다.
비발디의 4계 중 여름은 풍요와 격정만이 아니다. 비바람 속에 번개 치고 폭풍이 일기도 한다. 마치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사랑이 달콤하거나 순탄치만은 않음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영화의 한 파트로 끼워 넣은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영화의 스토리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와 소피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르페우스가 스스로 뒤를 돌아보아 에우리디케가 지하로 떨어지게 하기 전에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를 먼저 불렀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해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이별과 묘한 대칭을 이룬다.
지난 먼 일을 되돌아볼 때가 있다. 앞날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이와 달리 앞날을 가늠해보기보다 되돌아보는 것 자체에 관심할 때 이를 추상(追想)이라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삶의 외연(外延)이 넓어지기도 한다. 세월에 쓸려나간 희로애락의 파노라마를 다시 말아 들여 펼쳐볼 수 있기 때문이요, 이것은 거푸거푸 반복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래서 심신의 활동이 왕성할 땐 부지런히 추억꺼리를 만들어나가다가도 육신이 쇠잔해지면 상대적으로 추상하는 일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과거에 너무 집착하면 현상에 고착되고 마는데 몇 가지 서사는 그걸 은유적으로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저주받은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되 뒤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주문을 어겨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만다(창세기).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살려내려고 저승에 내려갔지만 아내를 이승으로 데리고 나가되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주문을 어겨 오르페우스는 결국 아내를 살리지 못하고 만다(그리스 신화).
우리 신화에서도 탁발승에게 쇠똥을 시주한 시아버지와 달리 쌀을 시주한 그 며느리가 부처님의 구원을 받을 찰나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탁발승의 주문을 어겨 그 자리에서 돌기둥이 되고 말았으니(한국문화상징사전 중 장자풀이) 모두 과거에 집착한 때문이었던 것이다. 오늘을 착실하게 경영해야 한다. 과거는 기억의 창고에 쌓아두고 앞을 보며 살아갈 일이요 미래를 위해 오늘을 너무 아껴도 안 되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오늘을 꼭 잡으라 했지만 그의 노래에 주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살아있다는 의미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오늘에 있는 것이니 그래서 우선 오늘을 착실하게 살아갈 일인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화자를 통해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크툽(Maktoob)!” 세상사는 이미 씌어 진 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 씌어 진 대로라는 건 신의 섭리를 말하는 것이겠으나 그 섭리라는 건 아무도 알려주는 이가 없으니 결국 자신이 알차게 써나갈 뿐인 것이다.
시쳇말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 한다. 이 말은 유행하는 노랫말이기도 하지만 사랑은 가지려하는 데에서 눈물이 된다. 사랑하라. 그러나 가지려하지 말라.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한 것처럼 지금 사랑하되 그들이 한 것처러 지나간 사랑을 서로 부르거나 가지려하지는 말라.
2010. 1. 22.
첫댓글 플로라님의 글을 읽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 하나 꺼내봤습니다.
독일영화 카르페 디엠을 추천합니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간이 될것입니다.
그래봐야겠네요.
지금 사랑하되,
지나간 사랑을 서로 부르거나
가지려 하지는 말라.
Carpe Diem !
석촌님의 글,
내용 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에
이제 선선한 바람도 일데요.
오늘을 착실하게 경영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낭비임을 일깨우는 글
잘 보았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경우 남아있는 것은 추억 뿐이니 이 또한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설사 소금기둥이나 돌이 된다고 할지라도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는 없겠습니다.. ㅎ
ㅎㅎ 솔직합니다.
신화에서도 그러하온데,
우리들 인간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이기 땜에...
인간의 정체성은 과거 현재 미래에
골고루 들어있다니
어느 것 하나라도 지울 수야 없겠지요.
두번을 읽어도 본문이 제게는 많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본문 내용과 뜻이 다른 댓글일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뒤를 자주 돌아 보게됨은, 지금과 과거 모두 잘못 살았다는 회한이고 뉘우침이기 때문이지요
단풍들것네님, 별일 없으시죠?
요즘 게시글이 뜸 합니다.
제글에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게시글에 자주오셔요.
수필방 글이 더 멋지지 않아요?
뉘우침이야 인간성의 중요한 부분이지요.
그러나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는 뜻인데
그것도 늘 그런건 아니겠지요.
언급하신 영화 내용은 들어 봤지만 아직 보지 못했는데
자세한 설명 감사 드립니다. 과거는 현재를 위한 돼새김은
되어도 집착하지는 말라는 어구가 와 닿습니다.
항상 좋은 글, 내용 감사 드리며 건강 잘 유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