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신> 런던 기행(5)
2009년 8월 13일 목요일.
오늘을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그동안 빡빡한 일정에 시달렸으니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다. 해머스미스 역에서 '그린 파크'까지는 지하철로, 그리고 'Highbury' 역에서는 지상으로 달리는 국철로 갈아탄 뒤 얼마간 가다가 'Hackney' 역에서 내렸다. 출찰구를 빠져나온 뒤 일행을 확인해 보니 원로 연극인인 장세종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국철로 갈아탈 때 아마 다른 칸을 탄 모양이다.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장 선생님은 미국 유학 경험이 있으며 거의 30여 년을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 했으니 대영박물관까지 찾아 오거나 이나면 호텔 숙소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조금 걸어서 '버버리' 매장까지 갔다. 옷, 지갑, 허리띠, 버버리 코트, 가방, 핸드백, 티츠와 와이셔츠 등 없는 물건이 없다. 버버리 코트 가격을 보니 100파운드(20만원)이다.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6, 70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한동안 매장을 돌아다니다 "아. 이 포도는 너무 시어서 못 먹겠어."라는 여우의 푸념으로 꼬리를 감추고 매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거기서 이층 버스를 타고 대영박물관으로 향했다.
<헤크네이 역 근처에 있는 버버리 매장>
이층버스를 타고 대영 박물관에 도착했다. 각자 점심을 먹고 박물관을 구경한 뒤 입구에서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는 허영길 선생님과 동행하면서 유믈 등을 구경했다. 가정 먼저 본 것이 이집트의 '로제타 스톤'이었다. 모두가 침략국에서 훔치거나 식민지에사 강제로 약탈해 온 것들 뿐이다. 영국 자체의 유물은 거의 없다. 영국의 수치심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별로 개운치 않았다.
<대영박물관 앞에서 사진 한 컷. 원주 기둥 위의 조각물이 아주 섬세하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앞에 서 있는 필자의 모습>
오후 7시 30분 뮤지컬을 구경하기까지는 서너 시간이 남아 있다. 나는 연극배우 권 철 후배와 함께 '피카딜리 써커스'에서 점심을 먹고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하는 수 없이 맥주를 마시기 위헤 가게에 들렀다. 한 족기에 4파운드(8천원)하는 '기네스' 흑맥주를 시켜 놓고 시간을 죽였다. 이곳에선 아무리 오래 있어도 종업원이나 주인이 짜증내거나 눈치를 주지 않는다. 혹시 젊은이가 들어와 맥주를 주문하면 종업원은 반드시 성인인가를 확인하는 것을 보면 질서가 나름대로 잡혀 있는 것 같다.
차이나타운의 한국식당 <왕갈비>에서 또 김치찌개를 시켜 먹고 오후 7시 경 마제스틱 극장 앞으로 갔다. 우리 일행이 한 둘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장 값싼 좌석인 3층 '그랜드 써클' 석에 자리를 잡았다. 신기한 것은 관객의 거의 대부분이 40대에서 60대의 중년과 늙은이라는 점이다. 2, 30대 층이 거의 대부분을 이루는 우리나라 관객층과는 전혀 딴판이다. 생활에 여유가 있고 어릴 때부터 공연 문화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접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3층 그랜드 써클 석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의 모습>
< 오페라의 유령이 상영되고 있는 웨스트 엔드 명물인 마제스틱 극장>
7시 30분부터 10시 20까지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대 메카니즘의 놀라운 기술은 놀랍다. 호수 위를 배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무대 밑바닥에서 촛불이 솟아오르는 장면,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 대형 커튼과 무대 세트가 관객이 보는 앞에서 순식간에 전환되는 모습, 배우들의 노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공연을 보고 나온 우리 일행들은 부러움과 자괴감으로 표정이 모두 일그러져 있었다. 역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상술은 놀랍다. 공연 실황 음악 CD, 티셔츠, 머그 잔, 포스터와 팸플릿 등 어느 것 하나 상품 안 되는 것이 없었다.
< '런던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는 홍보 문구가 새겨진 포스터>
호텔로 들어오자 장선생님이 이미 와 있었다. 장 선생님은 낮에 미모의 흑인 대학원생을 만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스트래트포트 온 에이븐에서 버스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만나 서로 애기를 하다 서로 이메알까지 주고 받았단다. 우리와 헤어져 호텔로 돌아온 장선생은 그 흑인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 종일 함께 햇다고 한다. 맥주를 마시고 심지어는 키스까지 했다고 자랑한다. 그 이상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생략한다. 나는 침대 바닥을 치며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내 신세를 한탄했다. 술김에, 홧김에 일찍 잠이 들었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이 흐르고 있었다.
첫댓글 와아...대영박물관이다......저는 박물관에 흥미가 없어서 그때 대충보고만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깝습니다. 좀 더 많은 것을 자세하게 보고 나왔어야 했었는데.......마제스틱극장은 풍경 자체가 예술이네요. 너무 멋집니다.
오페라의 유령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배 앓이를 하셨겠습니다. 돌아오시면 영어 공부에 매진하시는 거 아닌지요. ㅎㅎㅎ
영어 못하면 마임으로 한 번 밀어 붙여보죠? ㅎㅎㅎ
버버리가 20만원밖에 하지 않는군요^^ 대영박물관을 둘러보고 피카딜리 써커스에서 점심먹고 팔천원짜리 맥주 마시고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하고 관객이 대부분 중년이라는 말에 우리나라도 어서 빨리 공연 문화를 누리는 나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