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관옥은 의료인류학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현재는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있다.
이 책은 13년간의 현장 경험과 7년간의 강의 경험을 통해 다듬어진 몸에 대한 나름의 인류학적 소결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작은 결론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몸은 자세이며, 둘째, 몸은 순서이다. 우선 몸을 자세로서 경험하게 된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처음 현장 연구를 시작할 때 나는 몸이 도화지라고 생각했다. 사회문화의 메시지가 새겨지는 수동적인 공간으로 말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여러 노동하는 몸의 아픔을 목격하며 몸이 항상 무언가를 지향하고 있는 ‘자세’임을 깨닫게 되었다. 무언가가 새겨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끊임없이 몸으로 실천하며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정된 몸이 아니라 움직이는 몸이었다.
두 번째는 바로 ‘순서’로서의 몸이다. 상식적으로 몸에는 두 가지 시간이 흐른다. 우선, 나이 듦과 같은 자연적 시간이 흐른다. 다음으로 사회문화적 시간이 흐른다. 어떤 사회에 속해 있고, 그래서 특정한 문화를 공유함에 따라 지향해야만 하는 몸의 순서, 혹은 삶의 과업이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두 가지 종류의 시간을 뛰어넘는 몸의 순서와 마주하게 됐다. 바로 그러한 시간 ‘너머의’ 순서를 창조하는 몸이었다.
몸은 반드시 사회와 문화가,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이 요구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그 자세는 온갖 느낌들이 흐름 속에 움직인다. 하지만 그 몸들이 지향하는 곳에는 반드시 ‘순서’가 존재한다. 무엇에 의해서든, 어떤 내용이든 몸은 다음 순서를 기대하며 살아내고, 말하고, 저항한다. 그것이 고통과 절망으로 이어질지, 행복과 희망으로 이어질지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의 경험 속에서 몸은 그 어느 때도 순서를 포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