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어릴 적 부모의 침실을 향해 방뇨를 하는 나쁜 버릇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일곱 살 때에는 부모의 침실에 몰래 들어가 일부러 소변을 본 일도 있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온화한 사람이었지만 정말로 화가 나 아이에게 " 너 같은 놈은 장래에 쓸만한 사람이 되지 못할 거야."라고 호통을 쳤다.
이 말은 어린 프로이트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이 일을 계기로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후일 프로이트는 "이것은 아이의 앞일에 대한 크나큰 모욕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 때의 상황과 유사한 광경이 나의 꿈속에 몇 차례 나타났고 또 그후 몇 번이나 성공했을 때 그때 일이 떠올랐다.
마치 "봐 이렇게 훌륭하게 되지 않았나? 하고 말을 거는 듯이 생각했다"고 말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정말 공부이외에는 좋아하는 것이 전혀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가족들은 모두 공부벌레인 프로이트를 존경했다.
집안을 들여다보면 두 개 밖에 없는 침실에 가족 여덟 명이 사는 것이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에게 작은 방을 마련해 줄 정도였다.
더구나 다른 침실은 양초밖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 작은 방만은 석유램프가 마련되어 있었다.
프로이트의 부모는 순수한 유태인으로 아버지는 모직물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스무 살이나 연하의 명랑하고 활달한 지적인 여성이었다.
프로이트에게는 배다른 형이 두 명 있었는 데, 둘 다 스무 살 이상의 연장자로 프로이트는 아버지를 대하는 듯한 기분을 갖고 있었다.(아버지가 재혼하고 낳은 첫째아이가 프로이트다)
프로이트는 가족의 자랑이었고 사랑을 독점하며 성장했다.
또한 항상 가정의 중심적 존재로 가정의 모든 기대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어머니의 크나큰 총애를 받은 사람은 생애에 있어서 정복자라고 하는 감정 즉 성공에의 확신을 갖고 종종 현실의 성공을 초래한다고"하는 프로이트의 생각은 유아 때의 체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에 93세라고 하는 고령으로 죽기까지 아들 프로이트와 함께 산 어머니는 언제나 프로이트 에 대해서 "나의 황금 같은 지키(프로이트의 애칭)"라고 불렀다.
그때 프로이트의 나이 74세였는데도 말이다.
프로이트와 그 어머니는 유아기때부터 전 생애에 걸쳐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1936년 나치의 압박에 의해 영국으로 망명해 그곳에서 3년 후 죽은 프로이트의 업적은 심리학뿐만 아니라 문학, 사회학, 정치학 등 각방면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있다.
★ 프로이트(1856-1939): 오스트리아의 의학자.
프랑스에 유학.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에서 심층심리학의 체계와 신경증의 치료법을 확립하고 정신 분석학을 창시. 심리학, 문학, 사회학 등 다방면에 큰 업적을 남겼다. 주요저서로 <꿈의 해석 >, <정신분석입문>
★ 시찌다 선생님의 한마디
프로이트는 "너 같은 놈은 장래에 쓸만한 사람이 될 수 없다"라는 소리를 아버지로부터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부벌레로 가족 모두 그를 존경하게 되었고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듬 뿍 받았습니다.
바로 프로이트를 성공시켰던 것은 어렸을 때부터 받은 어머니의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유아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이는 자라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그의 의견에 저도 찬성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습니다.
아이에게는 그것이 성공으로 향한 날개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