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도(生死島) 1-7
제비 베기.
낮게 스쳐 나는 제비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가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힘의 강약에 대한 자유로운 조절이었
다. 순식간에 그 엄청난 빠르기로 쳐나간 검의 흉폭함을 마음먹은 지점
에서 마음먹은 순간에 맺고 끊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방금 전의 제비 한 쌍은 정수리에 와 닿았다가 가볍게 멎어버린 검세
에 잠시 기절했던 것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정교함은 강호의 어느 문파
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검격이었다. 육초량은 백원곡에 숨어든 지 꼭 육
년 만에 그만의 검격을 이루어낸 것이다. 대자연이 그의 스승이었고, 삼
라만상이 그의 검법의 조력자였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계곡의 구석구석을 더듬어 보는 그
의 얼굴에 감회가 서렸다. 그는 드디어 <바람의 검>을 터득한 것이다.
이제는 실전을 통해서 정교한 운용과 자유로운 변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
들어 가는 일만 남았다고 여겼다.
육초량은 그 동안 자신의 손안에서 닳고닳은 목검을 미련 없이 던져
버렸다.
<3>
온주현은 하북성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는 삼백여 호의 아담한 마을이
었다. 현의 외곽으로 뻗은 골목길을 걷는 한 청년이 있었다.
일견 야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장발의 괴청년은 육 년 전
흑룡방의 무리들에게 쫓겨 현을 떠났던 육초량이었다.
그가 현을 떠났을 때는 열 여섯의 소년이었으나 지금은 스물 둘의 헌
칠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하루 하루를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육 년
의 세월은 길고 고단하기만 했다. 그 세월 속에서 다시 돌아온 육초량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육초량은 천천히 눈에 익은 거리를 걸었다. 그의 거친 행색에 마을 사
람들 모두가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왔다. 그러나 육초량의 차갑게 가
라앉은 눈빛을 대하면 저마다 시선을 떨구기에 바빴을 뿐, 누구 하나 그
를 똑바로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여전히 겁 많고 풀이 죽어 있는 촌민
들이었던 것이다.
허리를 곧게 펴고 구름처럼 가볍게 걷던 그의 발길이 멈춘 곳은 저자
거리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만두 가게였다. 따뜻한 마음으로 언제
나 그를 돌보아 주었던 장삼의 가게였다.
지난 육 년 동안 육십 년은 늙어 보이는 장삼의 아낙이 멍한 시선으로
뜻 없이 밖을 내다보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초췌해진 얼굴을 보자 육초
량은 가슴이 아팠다. 여자 홀로 육 년 간이나 이 비좁고 초라한 가게를
지키며 버텨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는 그녀의 얼굴이 잘 말
해 주고 있었다.
잠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장삼의 훈훈한 얼굴을 회상하
던 육초량이 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넋을 놓고 앉아 있던 아낙이
낯설고 거친 손님을 맞아 깜짝 놀랐다. 구석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육초량은 만두 한 접시를 시켰고, 장삼을 생각하며 천천히 그것을 씹었
다.
아낙이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두려움에 떠는 눈으로 육초량을 힐끔거
렸다. 그의 거친 행색이 금방이라도 행패를 부려올 부랑아 같이 보였던
것이다. 그런 아낙의 모습이 육초량을 서글프게 했다. 한때 자신의 집처
럼 스스럼없이 드나들었던 가게였다. 언제나 장삼의 털털한 웃음이 있었
고, 분주히 오가며 수다를 떨던 아낙의 손길이 있었다.
자식을 맞는 듯한 따뜻함으로 맞았던 장삼이었고, 그의 아낙이었건만
오늘은 전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긴 머리카락과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훤칠하게 커진 키와 단단해진
몸매는 사실 누구라도 그를 예전의 영악했던 사냥꾼 소년 육초량이라고
는 여기지 않게 했다. 게다가 그에게서는 한 마리 야수를 대하는 듯한
거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한 접시의 더운 만두를 다 먹은 육초량이 천천히 일어서자 장삼의 아
낙이 엉거주춤 따라 일어섰다. 그녀의 긴장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 눈
이 다가오는 육초량을 향하고 있었다. 육초량은 메고 있던 행낭 속에서
두 뿌리의 산삼을 꺼내 들었다.
『가진 돈은 없습니다. 이것으로 대신하지요.』
아이의 팔뚝만한 귀물이었다. 그것이면 족히 은자 오륙백 냥의 값어치
는 될 것이다. 평생 만두를 팔아도 만져볼 수 없는 엄청난 거금인 셈이
다. 아낙의 눈이 놀람으로 부릅떠졌다.
『이, 이런 귀한 것을......』
『장아저씨의 마음에 대한 작은 보답의 뜻입니다. 그럼.』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아낙을 스쳐 성큼성큼 걸어 멀어진 육초
량은 골목을 돌아 가게가 보이지 않게 되자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부디 편하게 사시기를......』
다시 한 번 가게가 있는 방향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더
이상 어려운 가게를 꾸려 나가지 않고 전답을 구해 편히 살 수 있게 되
기를 진심으로 빌고 또 비는 육초량이었다.
* * * *
가정(世宗嘉靖帝) 12년(1533년) 여름, 산서성(山西省) 북단(北端)에
있는 대동(大同)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총병(總兵) 왕정필이라는 자가
휘하 병사들을 충동하여 난을 일으키고, 같은 총병인 이근을 살해한 것
이다. 순무도어사(巡撫道御師) 장영규는 호위 군사 몇 명에게 에워싸여
겨우 대동을 벗어나 삭주성(朔州城)을 의지하고 숨어 버렸다.
대동은 장성을 경계로 하여 막북의 패자인 달단부와 대치하고 있는 전
략적 요충이었다. 달단부의 지배자인 알단칸(俺答汗)은 명에서 도망쳐
온 병사들에게 땅과 집을 주어 살게 하며 우대했다.
그에 비해 고향을 떠나 변방에서 힘든 싸움을 하며 살아가는 병사들에
대한 조정의 관심은 한심할 지경이었다. 병사와 하급 지휘관들 중에는
삼 년이 넘도록 후속 부대와 임지 교체를 하지 못하고 눌러 앉아 있는
자들이 태반이나 되었다. 게다가 부임해 온 고관들은 하나 같이 병무(兵
務)를 핑계삼아 오히려 병사들을 조이고 수탈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으
니, 대동부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의 사기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짐승 취급을 받으며 배를 주릴 바에야 차라리 장성을 넘어가
집과 땅을 받고 농사지으며 거기서 살자.>
병사들에게는 이러한 생각이 만연했다. 그런 병사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던 왕정필이 평소의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대동을 통째로 들어
알단칸에게 바칠 생각이었다. 그 대가로 달단부에서 요직을 받아 부귀와
권세를 누릴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조정에서는 대동부의 병란에 뒤늦게 위기를 느끼고 토벌대를 보냈으나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 있었다. 은연중에 알단칸의 지원을 받으
며 기세가 욱일승천한 반군들 앞에 토벌대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던 것
이다.
대동부는 바로 하북으로 통하는 관문과도 같았다. 산서성에 속해 있었
지만 연경(燕京)까지는 육로로 불과 열흘 길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대동부에서 연경에 이르는 길에는 험한 산도, 깊은 물도 없었다. 몽고의
빠른 말로 달리면 닷새면 충분히 대군이 도착할 만했다.
가정제와 대신들은 두려움으로 떨었다. 그러면서도 몇날 며칠을 두고
갑론을박할 뿐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것이 구중궁궐에 머무르
며 턱짓으로 수하 부리기에만 익숙해져 있는 자들의 한계인지도 몰랐다.
* * * *
『와라! 대동부의 참장(參將) 유운필이 바로 나다!』
무리를 헤치고 바람처럼 말을 달려 그의 앞에 다가온 적장 하나가 오
십 근은 나가 보이는 무거운 파풍도 한 자루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쩌르
릉 고함을 질렀다. 칼자루에 달린 한 발이나 됨직한 붉은 수실이 현란하
게 나부꼈다.
전투 중에 투구가 벗겨졌는지 맨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머리를 감
싸고 있는 수건이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에 살기가 번
뜩였다. 여기 저기 베이고 찢긴 갑옷도 피에 절어 있었다. 자신의 상처
도 있었지만, 상대를 찍으며 얻은 핏자국들이었다.
육초량은 단번에 그 자가 악귀처럼 자신의 동료들을 찍어 넘기던 그
용맹무쌍한 장수라는 걸 알았다. 용서할 수 없다는 투지가 불길처럼 일
었다.
『악인부대의 육초량. 그럼!』
짧게 대답한 육초량이 그의 철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곧이어 굉장한
기합 소리가 남평진(南平鎭)의 벌판을 떨어 울린 순간, 그의 몸이 땅을
박차고 뛰어 오르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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