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사(居士)와 처사(處士) ♣
우리말에 대사(大師)와 선사(禪師)라는 말이 있지요.
대사(大師)는 한마디로 큰 스승을 일컷는 말이고 선사(禪師)는 일반적으로 선정(禪定)에 통달한 승려를 부르는 호칭이지요.
조선시대 때에는 무학대사를 비롯하여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등이 있었으며 선사(禪師)또한 수월선사, 만공선사, 경허선사 등 수많은 선사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대사와 선사의 한 단계 아래에는 거사(居士)와 처사(處士)도 있어요. 거사(居士)는 통상 남자 신도를 뜻하는 말로서 의미가 매우 깊어요.
<불교학대사전> 에는 “범어를 음역한 것으로 장자(長者), 가주(家主), 재가(在家)라고 변역한다.” 면서 “출가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불교에 귀의한 남자를 일컫는다” 고 설명하고 있지요.
중국 송나라 고승 목암선향(睦庵善鄕) 스님이 편찬한 <조정사원(祖庭事苑)>에는 “네 가지 덕을 갖춰야 거사(居士)라 일컫는다.”했어요.
△벼슬 얻기를 바라지 않는 이(不求仕宦)
△욕심을 없애고 덕을 쌓은 이(寡慾蘊德)
△재물을 모아 크게 부유한 이(巨財大富) △도를 닦아 깨달음을 얻은 이(修道自悟) 라고 구체적으로 밝혀 놓았지요. 또 <보살행경(菩薩行經)>에서는 거사에 대해
△재물을 모은 사람(居財之士)
△집에 거주하는 사람(居家之士) △불법에 머무는 사람(居法之士)
△산에 사는 사람(居山之士) 이라고 적시해 놓았어요.
이처럼 거사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는 크고 넓다 할수 있지요.
역사를 돌아보면 인도의 유마거사(維摩居士), 중국의 방거사(龐居士) 한국의 부설거사(浮雪居士) 등 재가불자(在家佛者)로 신심(信心)이 깊은 이들이 많았어요.
이처럼 거사의 의미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심오함이 있지요.
그러나 처사(處士)라는 의미는 다르지요.
모든 신분을 망라하여 남자 신도를 부르는 대표적인 용어가 처사(處士)이지요.
국어사전에는 “벼슬을 아니 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홍법원에서 발간한 <불교학대사전>에도 “세파의 표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야(野)에 파묻혀 사는 선비”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부산대 출판부에서 펴낸 <불교ㆍ인도사상사전>도 비슷하지요. 경인문화사에서 나온 <불교용어사전>에는 “직(職)이 없는 자. 낭인(浪人)”이라고 해설해 놓았어요. 이렇듯 대부분의 사전이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조용히 묻혀 지내는 이를 처사(處士)라고 규정하고 있지요. 처사(處士)라는 단어 속에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할일 없이 세월을 보낸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거사보다는 처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부정적인 의미가 느껴지는 처사보다는 불교적이고 깊은 뜻을 지닌 거사로 불리는 것이 좋겠지만 거사라는 명칭에는 반드시 ‘거사의 자격’이 따름으로 해서 섯불리 거사라 칭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긴 세월 동안 공직생활을 접고 나름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는데 카페에 가입하다보니 따라서 대명(代名)도 지어야 했어요.
곰곰 생각하다가 "산적(山賊)"이라 이름을 지었지요.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산적"이라는 이름은 변함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카페친구들이 찾아 왔지요 그중 한 친구가 '산적'을 근사한 말로 말하면 "녹림거사(綠林居士)"라는 거였어요.
이 또한 초야에 묻혀 지내는 거사라는 의미였지요. 그래서 무턱대고 산적을 '녹림거사'로 바꾸었어요. 그런데 아뿔사 ~~ 거사(居士)라는 말을 마음대로 섯불리 쓰는 것이 아니었어요. 거사라는 말의 심오함을 알고부터 나름 부끄러움과 자격지심이 들어 요즘 거사를 처사로 바꾸었지요.
그래서 녹림처사(綠林處士)로 부르다가 요즘엔 아예 아호를 따서 일송처사라 부르게 되었어요. 일송(一松)은 언제나 푸른 한그루 소나무라는 뜻으로 소시적 스승님이 지어주신 아호(雅號)이지요.
아무리 대명이라 해도 자기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면 이는 허울에 불과한 것 같아요. 오늘은 나 자신에 대하여 푸념해 봤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일송처사 *-
▲ 이성계와 무학대사 ...
▲ 경허선사 ...
첫댓글 제 호가 笑柱라 소주거사로 자칭 했는데 저도 소주처사로 바꿔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