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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씨. 난 할 수 없이 다시 모래주머니 쪽으로 다가갔다. 이제 거의 다 삐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떨어지려고 한다. 다른데에 너무 집중적으로 쌓다보니
맨 나중에 이부분만 모래주머니가 부족했다. 그래서 다른데는 이중, 삼중으
로 쌓았는데 이부분만 소홀하게 돼 있다.
그런데 자세히 다시 보니, 여기가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다른데도 무너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대로 거길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이미 날은 어
두워지고,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것같은 모래주머니, 그리고 세차게 불어제
끼는 바람과 비속에서 난 어쩔 줄을 몰라 한동안 멍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난 그 모래주머니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한 편, 밭에서 돌아온 준기와 일행들은 한 숨을 돌리며 다시 한 번 봐야할 데
가 어딘지, 만약 정통으로 태풍이 친다면 제일 먼저 어디가 터질지, 또 그에
따른 복구는 어찌해야할지 머리를 맞대면서 마을 어른들이 수고한다고 잘라
주신 수박을 맛있게 받아먹고 있었다. 농활대장은 한사코 사양했으나, 어른들
은 ‘그러면 우리가 미안하지. 사람 인정이 그런게 아니제….’ 하시면서 아예
화까지 내시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쓸데없는 고집은 한 풀 꺾고 다같이 태풍
에만 목매고 있었다. 준기또한 아주 땀에 범벅이 되어, 습기찬 비옷을 훌러덩
벗어버리고 아예 윗통도 벗고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더니 헬렌이
슬금 슬금 다가온다.
[잘 다녀왔어? 어디.. 갔다왔어?]
준기는 그제사 엉거주춤 윗옷을 들어 가슴쪽에 갖다댄다. 다시 입을까 말까
고민하는데, 헬렌은 아무렇지 않게 딴 데 쳐다보면서 말한다.
[더운데 그냥 벗고 있어. 안볼게]
[어..어…. 우린… 흠흠.. 밭에 갔었어. 지난해에 포도나무가 단체로 넘어졌다
그래서 미리 좀 말뚝박고 그러느라고]
[그래? 저…아깐… 미안했어. 그리고 고마워.]
[아…아니야.]
[그런데…. 채영이 언니는 후발대로 온다더니? 아까 본 것도 같은데? ]
헬렌은 사람들 사이를 둘러보고 있다. 그제서야 제정신이 든 준기는 헬렌의
존재는 무시하고 즉시 서둘러 윗옷을 다시 걸쳐입는다. 젖은 옷을 갈아입을
여유도 없이 사람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채영을 찾는다. 아무데도 없다.
혹시나 하고 마을회관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겨 보았으나 거기도 마찬가지로
문이 잠겨있고 아무도 없다. 점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준기. 그러나 침착
하게 다시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장님 집으로 갔다. 거기서 농활대장과
총무를 발견한 준기는 얼른 그쪽으로 다가갔다.
[저기.. 채영이 누나 아까 있었죠? 혹시 지금 어딨는지 아세요?]
[채영이누나? 후발대로 온건 봤는데…]
[채영이언니요? 아까 저희랑 같이 방파제 쪽으로 갈 때 있었는데?]
채영이랑 같이 갔던 애가 중간에 끼어들어 말한다.
[그래? 그럼 지금은? ]
[글쎄…?]
[같이 돌아오긴 왔어?]
[글쎄 그것도….좀..]
[어디라구? 방파제쪽?]
준기는 대충 방향만 물은채 비옷을 서둘러 걸치면서 후레쉬를 하나 구해 쥐
고는 어둠속을 막 뛰어가기 시작했다. 농활대장이 ‘야!’ 하고 부르는 소리도
들은척 안하고 빗발치는 시골 진탕길을 마구 뛰어가고 있었다.
한 편, 채영은 아직도 미련을 못버려 깜깜한 어둠속에서, 이젠 더듬거려야만
위치를 알 수 있는 그 모래주머니를, 이젠 아예 확 빼버려? 그래서 다시 처음
부터 쌓아버려?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마
치, 우연히 지나가다가 본, 둑에 난 구멍에 손가락을 끼워넣어 막기 시작한
소년이 이젠 팔뚝으로 막고 있는 격으로, 그야말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계속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채영은 오늘 후발대로 도착한 참이라 그 고단함이 가시지도 않은 참인데도, 워
낙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탓인지 피곤은 커녕, 신경이 예민할대로 예민해져 있
었다. 그 덕인지, 그 세찬 바람과 빗줄기 속에서 누군가가 이리로 달려오고 있
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채영은 그쪽을 향해, 이미 시야
확보는 글렀지만 그냥 눈 감고 얼굴에 세찬 비바람을 맞아가며 고래고래 소리
를 지르기 시작했다.
[여기예요. 도와주세요. 이쪽이라구요!!]
준기도 채영이 외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첨벙첨벙, 이미 발목까지 차 온 비를
걷어차며 채영의 옆으로 달려왔다.
[누나!]
[헉. 헉… 준…기니?]
[응. 어떻게 된거야?]
[여기 이 주머니가 빠질라 그래서. 그래서… 걱정이 돼서.]
[어디?]
준기는 채영이가 가르쳐준대로, 채영이 손 끝이 인도하는대로, 어둠속에서 같이
더듬더듬 모래주머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주위의 주머니들도 대충 손으로 더듬
더듬하여 상황파악 대강 끝낸 후, 채영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냥 빼내고, 위에서 꽉 눌러버리는게 나을거 같아]
[그래?]
[누나가 살살 빼봐. 내가 위에서 누를테니까.]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어둠속이었건만, 서로의 거친 숨소리에 의지하여 둘은
그렇게 모래주머니를 빼내고, 그 주변이 무너지는 것을 겨우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어물쩡거릴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이미 빗물은 무릎까지 차오려는
순간이었다. 준기는 얼른 채영의 손을 끌었다.
[빨리 나가야 돼. 빨리 마을로 돌아가야돼. ]
[잠깐만 잠깐만. 나 너무 힘들어. 온 몸에 힘이 쫙 빠져서 도저히 한걸음도 못걷
겠어.]
[그래도 가야돼.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준기는 대충이라도 채영을 들쳐업을 수 있겠다 싶은 곳까지 쓰러지려는 채영을
겨우 질질 끌다시피 해서 나왔다. 후레쉬로 비취니, 그나마 비가 좀 가려지는 커
다란 평평한 바위가 하나 있길래 얼른 채영을 앉혔다. 채영은 그대로 쓰러지려
한다. 준기는 옆에 마주 앉으면서 그런 채영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왜 바보같이 혼자 그렇게 남았어? 왜 다른사람들 안부르고?]
[어….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들리지 않았나봐. 금방이라도 떨어지려고 그러는
데 어떡해?]
[그러게 왜!! 누나는 농활도 처음이면서 왜 그렇게 무단으로 행동하고 그래? 그
러다가 무슨꼴 당하려고? 방금만해도, 조금만 더 그대로 있었으면 금방 물이 허
리까지 불어났을거야. 거기서 그러고 있음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왜 몰라?
응?]
준기는 화가 나서 그답지 않게 입에서 침튀기면서 막 나오는대로 내뱉는다. 하
지만 채영은 힘이 다 빠져 제대로 응수할 수도 없다.
[그래도 너가 이렇게 왔잖아.]
채영은 씨익 웃는다. 컴컴한 어둠속에서 채영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지만, 그녀
가 씨익 웃고 있다는 것과, 그 얼굴이 매우 눈부시게 예쁘다는 걸 준기는 알 수
있었다. 그냥… 그 앞에 대고 막 화내버린게 미안하고 또 이렇게 늦게 달려온
자신이 밉기도 하고, 또 ..그냥 이것저것 복잡한 마음에 그냥 몸을 돌려 채영을
꼭 안아주었다. 채영을 안고는 그녀의 귓가가 바로 입술 옆에 느껴지는데, 딱.
딱.딱.딱. 채영이 가늘게 몸을 떨면서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차. 여기서 이렇게 지체할 수 없어.)
준기는 몸을 떼었다. 그리고 채영이를 업으려고 후레쉬를 들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자, 업혀]
[나 힘들어. 조금만 더 쉬자.]
[그러니까 업혀. 내가 업고 갈게.]
[너도 힘들잖아. 조금만 더 쉬면 내 발로 걸어갈 수 있어.]
[잔말말고 빨리 업혀!! 지금도 계속 물이 불어나는 중이라는 거 몰라?]
[준기야……어?]
그 때 몇 개의 불빛이 이쪽을 향해 분산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준기야!!’, ’채영이 언니!!’ 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마을 어른들과
농활대장이랑 몇명 애들이 이쪽으로 오는게 보였다. 이제 살았다 싶으니 준기
도 힘이 났다.
[여기요, 여기!!!]
준기도 마주 후레쉬로 다가오는 사람들쪽으로 마구 비추며 소리를 질렀다.
[여기들 있었구나. 다행이다.]
[물이 불지도 모르니까 우선 빨리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채영을 업은 준기는 마을분들의 도움을 받아 채영을 이장님집으로 옮겨 눕혔다.
이장 조카가 채영의 옷을 갈아입혀준 후, 다른 사람들은 태풍 때문에 잠을 설치
고, 또 준기는 채영의 옆에서 간호한다고 잠을 설치느라 긴긴 하룻밤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채영은 온몸이 묵직한 가운데 스르르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
고는 곧 자기가 낯선 곳에 누워있다는 걸 알았지만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눈을
내리깔아보니 누군가가 침대 위에 엎어져 쿨쿨 자고 있다. 그 때서야 스르르 몸
을 일으켰다. 침대에 허리를 기대고 제대로 앉아보니 이제야 방 전체가 눈에 들
어왔다. 다시 눈을 내리깔아 그를 쳐다보았다. 준기다.
하…정말 어째야 할 지 모르겠다. 벌써 두번째야 두번째. 밤새 이렇게 날 간호하
고 그러면 니 몸이 어떻게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채영은 눈물이 다 나
려고 했다.
준기가 부스스 몸을 들어보니 채영이 우는건지 뭐하는건지 얼굴을 가리고 어깨
를 필요이상으로 심하게 들썩거리고 있다. 뭐가 잘못됐나 싶어
[누나]
하고 부르자 마자 채영은 두 손을 훽 내리더니 울부짖는다.
[준기야. 제발 이젠 이러지마. 내가 뭐라고! 내가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까지 널
희생하는거야, 응? 난 그럴 가치도 없는 앤데, 왜들 나한테 목매달고 이러는거
야? 그게 나한테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알아? 제발 부탁이니까 이젠 나한테
잘해주지 마. 나한테 잘해주지 말라구. 으허허허허!!!!]
(잘 해줘도 지랄이고, 못 해줘도 지랄이네)
정말 생쑈를 한다 생쑈를 해. 도대체 누가 자기한테 목매달고 희생을 한다고 저
러는지 원. 저..저.. 오버액션 하는것 좀 봐. 아픈거 다 나았으면 밭에 나가서 무
나 좀 뽑지 그러니?
[됐다 됐어. 밥이나 먹자.]
준기는 한심하다는 듯이 채영을 흘겨보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옹? 하면서 준기
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채영.
[응? 아닌가? ]
잠시 후 이장 조카딸이 죽을 받쳐들고 방에 들어왔다. 체온을 재고는 채영이가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러는데도 한사코 말리면서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저.. 태풍은 어찌됐어요?]
[모두들 기도해준 덕분에 최악의 사태는 비껴갔어요. 지금 비가 엄청 내리긴 하
지만. 어차피 비때문에 오늘 논에도 못나가니까 나눠서들 실내에서 뭐 노인교실
열고 그런다네요. 일손들이 남아서 걱정이니까 걱정말고 푹 쉬어요.]
말씀은 고맙지만 그렇게 하루 이틀 쉬다보니 곧 농활 마지막 날이 되었다.
첫댓글 와이~~~ 일빠다~~~
ㅋㅋㅋ 축하드립니다~~
재미있게 읽어네요.....채영이없는걸보고 준기가 찾아가는군요....다행이도 찾아서 와서 채영이를 또 간호 해주는군요.....그런데 채영이는 자기한데 너무 잘해주지 말라고 하는데....잘해줘도 탈 못해줘도 탈 어느장단에 맞쳐줘야하는지....정말 준기랑 채영이 여전히 이대로 가는건가요 ...다음편도기대...
정말.... 채영인 너무 복잡한 인간...
잘 봤습니다. 담편도 빨리요~
네..늦지 않게 올리겠습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요~
항상 감사합니다요~
재미있네, 준기 참 멋져요~, 채영이는 바보~~^^
ㅋㅋㅋ 채영이 진짜 바보죠~
기다린 보람 있었습니다~~
기다려 주셨다니 황송하네요 ^^
우아아 재밋어요~~~
ㅋㅋㅋ
ㅋㅋㅋㅋ 재밌어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작가님, 우수작가 선정 되셨네요? 추카 추카 추카~~~
앗. 빨리도 아셨네. 감사해요
흠. ㅋㅋ 채영이가 오버??
그러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