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京畿道) 수원시(水原市)
⑴ 권선구(勸善區)
고색동(古索洞), 곡반정(谷泮亭), 곡선동(谷善洞), 구운동(九雲洞), 권선동(勸善洞),
금곡동(金谷洞), 당수동(棠樹洞), 대황교(大皇橋), 서둔동(西屯洞), 세류동(細柳洞),
오목천(梧木川), 입북동(笠北洞), 장지동(長芝洞), 평 동(坪 洞), 평리동(坪里洞),
탑 동(塔 洞), 호매실(好梅實)
※ 수원(水原): 지명(地名)은 그 지역(地域)의 지형(地形), 풍토(風土), 산업(産業), 교통(交通) 등에서 유래(由來)되므로 지명(地名)은 바로 그 고장의 얼굴이며, 조상(祖上)들의 체취(體臭)와 슬기를 느낄 수 있으며, 문화(文化)와 역사(歷史)가 숨쉬고 있는 귀중(貴重)한 문화유산(文化遺産)이라 할 것이다. 지명(地名)에 많이 쓰이는 한자(漢字)는 산(山), 곡(谷), 신(新), 대(大), 송(松), 천(川), 현(峴), 석(石), 상(上), 내(內) 등의 순(順)으로 되어 있다.
수원(水原)이란 지명(地名)의 유래(由來)는 본래 내륙(內陸)이 아닌 바닷가 갯마을에서 비롯되었다. 200년의 열 배가 넘는 천여 년 전의 아득한 옛 날, 현 화성군의 서쪽은 대부분 바다였으리라 짐작된다. 화성과 수원은 그 지형이 야트막한 야산으로 이루어져 그 사이로 호수나 저수지 같은 물이 많기로 유명하다. 본래 바닷물로 출렁거렸을 이 지역에 차츰 물이 빠져나가면서 작은 섬들은 산(山)으로, 그리고 깊은 곳은 지금처럼 호수(湖水)나 웅덩이로 변했을 것이다.
수원(水原)을 모수국(牟水國)이라 하였는데, 모수국(牟水國)은 대체로 물이 많은 곳, 곧 물나라란 뜻으로 쓰인 것 같다. 혹자에 따라서는 모수국(牟水國)을 '벌물', '물벌', 혹은 '물골'의 표기로 보기도 하나 그렇게 읽혔을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모수(牟水)에 접미한 국(國)은 지금처럼 국가 개념의 '나라'가 아니라 단순히 '온누리'라고 할 때의 '누리[세(世)]'와 마찬가지로 지명(地名)에 쓰 인 접미어(接尾語)이다. 말하자면 부족국가시대에 한 부족이 모여 살던 집단 마을을 지칭한 것이다.
※ 권선구(勸善區): '권선(勸善)'이라는 옛날 이름은, 고려말 한림학사 이고(李皐)가 벼슬을 내놓고 이 곳에 살면서 백성들이 어질고 착하게 살기를 권하였는데, 그의 높은 인품과 가르침에 많은 백성들이 감화되어 어질고 착하게 살고자 노력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 곡반정동(谷伴亭洞): 1899년 발간된 『수원군읍지』를 보면, 안녕면 '곡반정(谷磻亭)'이라 표기되어 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수원군의 동리명칭 및 구역변경 때, 그대로 중반정(中泮亭)과 하반정(下泮亭)을 합쳐 '곡반정리(谷泮亭里)'라 하였다.
※ 곡선동(谷善洞): 곡반정리(谷泮亭里)의 '곡(谷)'자와 권선리(勸善里)의 '선(善)'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 구운동(九雲洞): 구운동(九雲洞)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아홉 개의 머리가 달려있는 용(龍)이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승천(昇天)하였다고 해서, 마을 뒷산을 청룡산(靑龍山)이라 하고, 마을이름은 구운(九雲)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상구운석(上九雲石)과 하구운석(下九雲石)을 합쳐 '구운리(九雲里)'라 하였다. 상구운석(上九雲石)은 일명(一名) 상구운돌(上九雲乭)이고, 하구운석(下九雲石)은 일명(一名) 하구운돌(下九雲乭)이다.
※ 권선동(勸善洞): '권선(勸善)'이라는 동(洞) 이름은 고려말 한림학사 이고(李皐)가 벼슬을 내놓고 이곳에 살면서 백성들이 어질고 착하게 살기를 권하였는데, 그의 높은 인품과 가르침에 많은 백성들이 감화되어, 어질고 착하게 살고자 노력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즉 이고가 선함을 권한 마을 이라는 의미에서 권선(勸善)이라 칭하게 된 것을 이어받은 것이다.
※ 금곡동(金谷洞): 금곡(金谷)이라는 동(洞) 이름은 예전에 이 지역 서쪽에 있는 칠보산에서 쇠(중석)를 캤다고 해서 금곡(金谷)이라 부르던 것을 이어 받은 것이다.
※ 당수동(棠樹洞): 당수동(棠樹洞)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 지역에 아가위나무, 곧 당수(棠樹)가 많았기 때문에 당수(棠樹)라 불리던 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 대황교동(大皇橋洞): 이 지역(地域)에 있는 '대황교(大皇橋)'라는 다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다리는 본래 '소황교(小皇橋)'라 불리었는데, 1795년(정조 19년)에 이름을 대황교(大皇橋)로 고쳤고, 마을이름도 이에 따라 대황교(大皇橋)로 불리어지게 된 것이다.
※ 서둔동(西屯洞): 서둔동(西屯洞)의 '서둔(西屯)'이란 이름은 정조가 화성(華城)을 축조할 때 그 서쪽에 축만제를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하여 둔전(屯田)을 경영(經營)하였던 것에서 유래(由來)한다. 즉, 서둔(西屯)이 설치(設置)되고 경영(經營)되었던 곳이므로 서둔동(西屯洞)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 세류동(細柳洞): 세류동(細柳洞)이라는 이름은 가는골[세동(細洞)]과 버드나무골[류동(柳洞)]이 합(合)해진 것이다.
※ 오목천동(梧木川洞): 오목천동(梧木川洞)은 '오동나무골'이라고 불렸다. 오동나무가 많이 자란 곳이란 뜻이다. 그리고 오목천(梧木川)이라는 동(洞) 이름은 이 지역을 흐르는 하천이 오목한 곳을 따라 흐르기 때문에 오목내 또는 오목천(梧木川)이라 불리던 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전해진다.
※ 입북동(笠北洞): 이 지역은 본래 광주군 월곡면 지역으로서, 갓뫼[입산(笠山)] 뒤에 위치한 지역이기에 '갓뒤' 또는 '입북(笠北)'이라 불리었다.
※ 평동(平洞): 평동(平洞)이라는 이름은 평야(平野)와 관계되는 것이다. 너른 벌판 가운데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데서, 예부터 벌말, 벌리, 들말, 평리 등으로 불리어진 것을 이어받은 것이다. 즉, 평동(平洞)이라는 이름은 평평한 벌판에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 평리동(枰里洞): 평리동(枰里洞)은 들 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 탑동(塔洞): 탑동(塔洞)이라는 이름은 본래 이 지역(地域)에 탑(塔)이 있었기 때문에 '탑골',' 탑동(塔洞)'으로 불리던 것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다.
⑵ 영통구(靈通區)
망포동(網浦洞), 매탄동(梅灘洞), 신 동(莘 洞), 영통동(靈通洞), 원천동(遠川洞),
이의동(二儀洞), 하 동(下 洞)
※ 영통동(靈通洞): 마을 뒷편에는 청명산이 있는데 봉우리에 우물이 있고, 그 우물에는 고려말(高麗末)의 보물(寶物)이 있다고 한다. 그 우물 속의 보물(寶物)로 인하여 청명산은 신령(神靈)과 통(通)하는 산(山)이며, 그 아래 부락(部落)은 영(靈)과 통(通)한다 하여 영통(靈通)이 되었다 한다.
⑶ 장안구(長安區)
상광교(上光敎), 송죽동(松竹洞), 신안동(新安洞), 신풍동(新豊洞), 연무동(鍊武洞),
영화동(迎華洞), 율전동(栗田洞), 율천동(栗泉洞), 이목동(梨木洞), 정자동(亭子洞),
조원동(棗園洞), 천천동(泉川洞), 파장동(芭長洞), 하광교(下光敎)
※ 장안구(長安區): ‘장안(長安)’이라는 구(區) 이름은 이름은 백성(百姓)을 아주 오랜 세월동안 편안(便安)하게 살게 한다는 데서 유래(由來)했다. 그리고 장안(長安)은 화성(華城) 4대문의 하나인 북쪽 대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한다.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주(周)나라 이래로 진(秦)·전한(前漢)·수(隨)·당(唐) 등의 수도 이름이었다. 즉,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쓰여 왔다. 따라서 정조가 화성(華城) 북쪽 문의 이름을 ‘장안문(長安門)’이라 정한 것은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구가한 한(漢)·당(唐)의 서울이었던 장안(長安)의 영화(榮華)를 화성에서 재현하려 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 송죽동(松竹洞): '송죽(松竹)'이라는 동(洞) 이름은 이 지역이 예전부터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아서 '솔대' 또는 송죽(松竹)'이라 불리던 것을 이어 받은 것이다.
※ 신안동(新安洞): 신안동(新安洞)은 신풍동(新豊洞)의 '신(新)'자와 장안동(長安洞)의 '안(安)'자를 따서 만든 명칭(名稱)이다.
※ 신풍동(新豊洞): 신풍동(新豊洞)의 신풍(新豊)이란 지명(地名)은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에서 따온 것이다. 옛부터 신풍루(新豊樓)가 있었던 동네라서 '신풍(新豊)', '신풍굴(新豊窟)', '신풍리(新豊里)'라 부르던 것이 신풍동(新豊洞)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되었다. 현재 신풍(新豊)이란 이름은 한나라 고조가 '풍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華城)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행궁 정문의 이름을 신풍루(新豊樓)라 한 것이다.
※ 연무동(練武洞): '연무(鍊武)'라는 명칭은 이 지역 인근에 동장대(東將臺)가 있고, 이 곳에서 군사훈련과 무술연마를 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 영화동(迎華洞): '영화(迎華)'라는 동(洞) 이름은 이 지역(地域)에 영화역(迎華驛)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때 영화역(迎華驛)을 이곳에 두었으므로 역말, 역촌(驛村), 영화역(迎華驛)이라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 율전동(栗田洞): '율전(栗田)'이라는 동(洞) 이름은 '밤밭'을 한자화(漢字化)한 것인데, 이 지역에 밤나무 밭이 많았던 데에서 나온 것이다.
※ 율천동(栗泉洞): 율천동(栗泉洞)이라는 이름은 관할 법정동인 율전동(栗田洞)과 천천동(泉川洞)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만든 것이다.
※ 이목동(梨木洞): '이목(梨木)'이란 동(洞) 이름은 이 지역(地域)에 배나무가 많아서 '배나무골'이라 불리던 것을 한자어(漢字語)로 표기(表記)하면서 이목동(梨木洞)으로 된 것이다.
※ 정자동(亭子洞): '정자(亭子)'라는 동(洞) 이름은 이 지역(地域)에 영화정(迎華亭) 일명(一名) 교구정(交龜亭) 등의 정자(亭子)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한다.
※ 조원동(棗園洞): '조원(棗園)'이라는 동 이름은, 원래 이 지역에 대추나무가 많아서 '대추나무골', '대추원' 또는 이의 한자어(漢字語)인 '조원말' 또는 '조원(棗園)'이라 하던 것을 이어 받은 것이다.
※ 천천동(泉川洞): 천천동(泉川洞)이라는 동(洞) 이름은 이 지역에 큰 샘이 있어서 샘물이 내를 이루었으므로 '샘내' 또는 같은 뜻인 '천천(泉川)'이라 불리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동(洞) 이름으로 정(定)한 것이다. 큰 샘[천(泉)]이 있어서 그 물이 흘러내려 내[천(川)]를 이루었기 때문에 샘내, 또는 천천(泉川)이라고 한다.
⑷ 팔달구(八達區)
고등동(高等洞), 교 동(校 洞), 구천동(龜川洞), 남수동(南水洞), 남창동(南昌洞),
남향동(南香洞), 매교동(梅橋洞), 매산동(梅山洞), 매향동(梅香洞), 북수동(北水洞),
영 동(榮 洞), 우만동(牛滿洞), 인계동(仁溪洞), 장안동(長安洞), 중 동(中 洞),
지 동(池 洞), 팔달동(八達洞), 화서동(華西洞)
※ 팔달구(八達區): '팔달(八達)'이라는 구(區) 이름은 팔달산(八達山)과 화성(華城) 남쪽문인 팔달문(八達門)에서 따온 것이다.
※ 고등동(高等洞): '고등(高等)'이라는 동(洞) 이름은 고려시대에 이곳이 고등촌처(高等村處)였으므로 고등촌(高等村)이라 불리던 것을 이어받은 것이라 전해진다. 팔달산 서쪽 기슭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붙여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 교동(校洞): 교동(校洞)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향교(鄕校)가 생기게 된 이후로 붙여진 것이다. 향교(鄕校)가 있는 마을 또는 향교(鄕校)가 있는 동네라는 의미에서 교동(校洞)이라 불리던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 남창동(南昌洞): 남창교(南昌橋)라는 명칭(名稱)이 순조(純祖) 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화성(華城) 축성후(築城後) 곧바로 마을이 형성(形成)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남향동(南香洞): 남수동(南水洞)의 ‘남(南)’자와 매향동(梅香洞)의 ‘향(香)’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 매교동(梅橋洞): '매교동(梅橋洞)'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정조의 거둥길에 유명한 매교(梅橋)에서 유래(由來)한 것이다. 즉 매교(梅橋)가 있는 지역이기에 매교동(梅橋洞)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원래 매교(梅橋)의 처음 이름은 매산교(梅山橋)였는데, 1795년(정조19) 거둥길이 이곳을 지나게 되자 이름을 매교(梅橋)로 바꾸고 길 서편에 표석(表石)을 세웠다.
※ 북수동(北水洞): 북수동(北水洞)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시내 북쪽 지역에 해당되므로 ‘북숫골’ 또는 ‘북수동(北水洞)’이라 불리던 것에서 유래(由來)한 것이다.
※ 영동(榮洞): 영동(榮洞)이란 이름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 뜻은 화성(華城) 축성이후(築城以後) 이곳에 성외시장(城外市場)이 서서 번성(繁盛)하였으므로 영화(榮華)를 누리라는 뜻으로 지어졌을 것이다.
※ 우만동(牛滿洞): 우만동(牛滿洞)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 지역에 살던, 최씨(崔氏)와 임씨(林氏) 등이 소를 많이 먹여 키웠기 때문에, ‘소만이’, ‘우만이’라 불리던 것에서 유래(由來)한 것이다.
※ 인계동(仁溪洞): 인계(仁溪)라는 동(洞) 이름은, 이 지역(地域)에 산골짜기에서 비롯된 작은 내가 있었기 때문에 인도천, 인도래, 인도내 등으로 불리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傳)한다.
※ 지동(池洞): 지동(池洞)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地域)에 못이 있었기 때문에 ‘지곡(池谷)’이라고 불리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傳)한다.
※ 화서동(華西洞): 화서(華西)라는 이름은 화성(華城)의 서쪽 문(門)인 화서문(華西門)에서 따온 것이다.
저 원천동ㅋㅋㅋㅋㅋㅋㅋㅋㅋ수원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싸 ㅋㅋㅋㅋㅋㅋㅋ 화서동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영통동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영통초옆
오오오 ! 진짜요?ㅋㅋㅋㅋ 저는 권선동 !!!!ㅋㅋㅋㅋㅋ터미널근처 ㅋㅋㅋㅋㅋ
오!!레알??전 세류동 ㅋㅋㅋㅋ 아무데나 콜함요 ㅋㅋ
글쓴이에요^^* 당연히껴주시겟죠♥
님 저도 ㅋㅋㅋㅋㅋ 권선동
영통구 매탄동 분들 계시나염..ㅎㅎ
매탄동 여기있어염ㅋㅋㅋㅋㅋ
매탄3동 췌키럽~
승리의 ★매★탄★동★
고등동없나...고등동인....
나호매실동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