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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광해군이 대동법의 창시자라구??
securitad 추천 0 조회 549 21.05.29 13:13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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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1.05.29 13:51

    첫댓글 대동법이... 뭐 방납의 폐단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었던 건 맞습니다만... 그건 저희가 지금 시점에서 돌아봤을 때 그런 것이고 실제 조선 중기-후기 공물에 대해서는 이외에도 할말이 많죠.

    공물의 폐단에 대해 조선 후기 관료들은 크게 두 입장을 취합니다. 하나는 공부를 재작성하고 그 부담을 감하자는 측과 공물을 미곡이나 삼베, 동전으로 바꾸자는 얘기가 다른 한 측입니다. 초반에는 전자가 우세하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후자의 견해가 우세해지면서 대동법이 전국에 시행됩니다.

  • 21.05.29 13:58

    전자가 꼭 잘못된 것이냐.. 라는 걸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면 공부상 통상 납부할 공물의 가액은 대동법상 가액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통상 1결 12두가 대동법상 세액인데, 공물은 그의 1/3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동법을 실시하자는 의견은 처음에는 반대의견이 있응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공부상 공물을 경정한 가액에는 운송비용이나 위험비용, 행정비용이 가산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공부상으로는 그 부담이 크지 않아 보이니 당연히 임금 입장에서야 대동법을 실시해서 세액을 늘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건 일반 부민의 부담만 늘어난다고 볼 수 있었으니 임금은 대동의 폐단도 생각했을 것이라 보입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떤 입장이 합리적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할 뿐입니다. 누가 대동을 해서 더 낫네 마네라는 건 가능하겠지만 왜 그 대동에 소극적이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김육, 이원익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광해의 판단에 합리적 근거가 전혀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당시 한계로는 말입니다.

  • 작성자 21.05.29 14:36

    @다음연금술사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대동법 자체도 폐단이 있을 수 있고 합리적인 반대이유도 있을테지만 원래 개혁이라는 게 모든 게 다 들어맞거나 바람직하게 진행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그리고 갠적으로 광해군이 백성의 복리에 부합하는 어떤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서 유독 대동법 추진에 소극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입니다.

  • 21.05.29 21:59

    당시 신하들과 관료들 대부분은 대동법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군요 광해군은 강원도에 대동법 확대시행에 반대했군요

  • 21.06.05 09:56

    하지만 폐지하자는 안도 딱히 손을 들어주지 않았고 스까 형태로라도 꾸준이 유지되게 해 줌 으로 대동법의 확장에 관성은 실어주었지요. 리플에서 말씀하신대로 대동법의 확장은 결국 시장경제(특히 화폐경제)의 확대와 궤도를 같이 하는것이었기 때문에 화폐경제가 안착되며 대동법도 같이 안착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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