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도(生死島) 1-9
『놈, 이번에도 군호금은 떼어놓지 않을 셈이냐!』
눈을 부릅뜨고 육초량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고양지가 버럭 고함
을 질렀다.
『내 몫은 칠십 냥이 아니라 구십 냥이라야 맞아. 졸개 다섯에 적장
한 놈이 계산에서 빠졌으니까. 그 이십 냥이면 군호금치고는 과하다고
생각하는데?』
고양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치열
하게 얽혔다.
(언젠가는......)
육초량은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그는 이 자, 악인부대의 수장인 고
양지가 오래 전부터 무사들의 포상금에서 군호금 명분으로 일할 씩의 돈
을 떼어 착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포상액을 조작
하여 챙기는 돈만도 적지 않았다.
그는 도독부(都督府)에서 내려보낸 서기 관안사와 짜고서 병부에 포상
금을 과다 청구하고, 병사들에게는 그것을 깎는 이중의 방법으로 매달
엄청난 양의 은자를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은 악인부대 내의 공
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모두는 비리를 알면서도 고양지의 흉포함과,
그를 비호하는 일부 무장들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눌려 모르는 척 외면하
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한 내막을 알고부터 육초량은 과감히 그들의 손을 거절하고 있었
다. 목숨을 내걸고 싸워서 얻은 대가를 가로채는 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적 앞에 섰을 때보다 더 컸다.
군례도 생략한 채 휭하니 돌아서서 거칠게 포장을 들추고 나가 버리는
육초랴의 등을 무섭게 쏘아보던 고양지가 부드득 이를 갈았다.
『놈, 언젠가는 나 고양지의 무서움을 알게 될 것이다.』
『내일은 청수하로 이동한다는군.』
『그곳에 수괴인 왕정필의 본진이 있으니까. 아마 그것이 마지막 싸움
이 될지도 몰라. 』
반란을 일으킨 자의 목을 치고 나면 남은 적도들은 제풀에 꺾여 흩어
지고 말 것이다. 문제는 왕정필이 그처럼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라는 데
에 있었다. 벌써 십여 년 가까이나 대동부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막북의
강자인 오이랏트와 달단부에 맞서 싸워온 자였다.
명 조정으로 본다면 그들의 무지함 때문에 참으로 아까운 장수 하나를
버린 셈이었다. 제대로 된 군주를 만났더라면 왕정필은 벌써 오군도독부
(五軍都督府)의 대장군이 되어 연경에 진출해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도
지휘사(都指揮使)의 직함을 받고 높은 태사의에 앉아 만군(萬軍)을 호령
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무리를 이끌고 장성을 넘어 달단부에 투항하려는 초라한
배신자의 모습을 하고 지금 청수하(淸水河) 변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한 때 기세를 떨치며 중앙에서 파견된 토벌군을 박살내던 그들의 전성
기는 너무 빨리 끝났다. 악인부대가 오천 리나 되는 길을 달려 대동에
이르면서부터 왕정필의 외곽 부대들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버린 탓이
었다.
대동에서 참장(參將) 장성길이 성벽과 함께 무너져 형체도 찾아볼 수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맞더니, 믿었던 유운필의 부대마저 남평진에서 괴멸
되었다. 두 날개를 모두 잃어버린 왕정필은 겨우 그의 친위병 이천을 거
느리고 청수하에 머물며 달단부의 눈치만 보는 한심한 처지가 된 것이다.
그처럼 좋아하던 달단부에서도 이제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왕정필의
기세가 불같이 일었을 때는 그를 도와 곧 장성을 넘을 것 같더니, 그가
일패도지하여 장성 밖으로 내몰리자 이제는 명의 보복을 은근히 걱정하
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왕정필은 달단부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알단칸(俺答汗)은 분주히 척후를 놓아 악인부대의 이동을 예의 주시하
면서 그 불똥이 자기에게 튀지 않도록 주변을 단단히 하는 일에 주의를
쏟고 있었다. 청수하에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왕정필의 마지막 싸움이
알단칸의 결심을 어느 방향으로든 굳혀 줄 것이었다.
『흥, 죽어라 싸우면 뭐해. 그래봐야 고양지와 그 일당들에게 좋은 일
시키는 꼴밖에 더 되겠어?』
육초량은 초원 위에 한가롭게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악인들의 투덜거
림을 듣고 있었다.
『벌레 같은 놈들.』
그의 입에서 경멸에 찬 낮은 웅얼거림이 흘러나왔다.
* * * *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하고 유유히 흐르
고 있는 청수하변에 함성이 진동하고 있었다. 낮은 구릉을 타고 악인부
대의 선봉 일백 오십 인의 무사들이 악귀처럼 내달렸다. 그들을 맞고 있
는 것은 이제 오백여 명으로 줄어들어 있는 왕정필의 마지막 군세였다.
벌써 사흘 째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 격전이 벌어졌다. 거울처럼 맑던
청수하가 혈하(血河)로 변한 지도 오래다. 고양지가 이끄는 악인부대와
왕정필의 이천 반군들은 서로를 물어뜯는 주린 들개들처럼 사납게 뒤엉
켰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실 시간도 없었다. 동료와 적의 주검이 뒤엉켜 있는
벌판에서 한 손에는 칼을 쥐고 다른 손으로 주먹밥을 뜯어먹었고, 갈증
이 나면 붉게 물든 강물을 움켜 마셨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지겹도
록 죽이고 죽었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게 된 왕정필의 친위군들은 악착같았다. 그러나
이제 모두가 악이 오를 대로 올라 악귀 나찰이나 다름없이 변해 버린 악
인부대의 흉포함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악을 쓰는 듯한 고함소리가 청수하를 들끓게 했다.
머리 위에는 한낮의 청청한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고, 멀리 푸른
초원 너머로 한가롭게 걸쳐 있는 구름이 태평스럽기만 한데, 고함과 비
명과 병장기 부딪는 날카로운 쇳소리는 이 청명한 가을날 오후의 풍경과
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조금씩 밀리던 난군(亂軍)들이 청수하에 발목을 담그고 말았다. 더 이
상 발 딛고 설 땅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 나가라! 그럴 수 없다면 강물에 코를 박고 죽어라! 더 이상
갈 곳은 없다!』
장수의 처절한 외침이 난군들 모두에게 마지막 투혼을 일깨워 주었다.
사나운 몽골의 기마군단을 상대로 수십, 수백 번의 전투를 겪어 내며 단
련된 변방의 정예군들이었다. 비록 그 처지자 오늘은 반도의 무리라는
오명 속에 더럽혀졌고, 명분을 잃은 싸움이었지만 그렇다고 무인의 칼끝
같은 기세마저 던져버릴 수는 없었다.
『물러서지 마라!』
선두에서 장창을 휘두르던 자가 뒷걸음질쳐 오는 동료의 등을 사정없
이 꿰뚫어 버렸다.
『죽이지 못하겠거든 스스로 죽어라! 우리가 언제 싸움터에서 등을 보
인 적이 있던가! 우리는 대동(大同) 황금호(黃金虎)의 군사들이다!』
절규하듯 피눈물을 삼키며 부르짖은 자가 장창을 들고 미친 듯 적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 그를 향해 한 마리 날렵한 사슴을 노리고 달려
드는 굶주린 들개들처럼, 악인부대의 무사들이 환호와도 같은 함성을 울
리며 달려들었고, 처절한 비명과 함께 난도질된 그의 육신이 조각조각
흩날렸다.
『가자!』
그것을 보던 난군들 속에서 마지막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뒤로 밀
리던 발꿈치에 부쩍 힘을 주고 한 덩어리가 되어 강물을 차며 뛰쳐나오
는 그들의 기세가 그 어느 때보다 사납고 용맹했다. 이제 악에 치받치기
는 악인부대의 무사들이나, 난군들이나 다를 게 없었다.
『대단하다. 과연 대동부(大同府)의 무사들이다!』
잠시 검을 쉬며 그것을 지켜보던 육초량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감탄
하고 말았다. 여태까지 악인부대를 맞아 이처럼 용감하고 치열하게 버텨
낸 자들은 없었다. 사납고 잔인하기로 이름난 남해의 왜구들도 악인부대
의 깃발만 보면 창대를 거꾸로 잡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아무리 어려운 싸움이라도 하루 낮과 밤이면 족했다. 그 이상을 끌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오백 정병들은 달라도 한참 달랐
다. 대동부의 병사들이 오군도독부의 일백 만 정병들 중에서도 가장 뛰
어난 자들이라더니 과연 헛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앞장섰던 자가 죽으면 그 주검을 밟고 한 덩어리가 되어 달려드는 그
들의 처절한 투혼 앞에서 육초량은 일말의 경외지심마저 느꼈다. 무적을
자랑하던 악인부대의 무사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난군의 발악 앞
에서는 기세가 한풀 꺾여 주춤거렸다.
육초량은 야차처럼 그의 철검을 휘둘러 닥쳐드는 반군을 찍어 넘기며
전세를 살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하고 만다는 위기감이 밀려왔다. 굶
주린 야수 같던 자들이 전의를 잃고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후위를 돌아
보았다. 구릉 위에 악인부대의 깃발 아래 정연하게 벌려 서서 명령을 기
다리고 있는 본대 일천의 군세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고양지라는 놈!)
육초량은 부드득 이를 갈았다. 그는 이번 전투에서 자신이 전사하도록
내버려 둘 속셈이 분명했다.
(후위 부대는 없다!)
육초량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들려주었다. 후속부대의 지원을 기대하는
마음 따위는 깨끗이 버리고 이제는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 남던지 죽던지
결단을 내야 할 때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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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만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는자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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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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