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 영화 리뷰
《오베라는 남자》(En man som heter Ove)는 2012년 발행된 스웨덴의 소설로, 프레드리크 배크만이 집필했다. 2015년 영화화되어 동명 영화로 공개되었다.
고집불통 까칠남 ‘오베’.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하고,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던 아내 ‘소냐’까지 세상을 떠난 이후, 그에게 남은 것은 ‘소냐’를 따라가는 것뿐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오베’. 마침내 계획을 실행할 결심을 하고, 마지막 순간을 앞둔 바로 그때!
그의 성질을 살살 긁으며 계획을 방해하기 시작한 누군가가 있었으니 바로!!!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이웃들!
그의 삶에 제멋대로 끼어든 사람들!
과연 ‘오베’ 인생 최악의 순간은 반전될 수 있을까?
오베라는 남자 [전 세계 베스트셀러 1위] [영화리뷰] [결말포함]
https://youtu.be/s1IGW1x0wpk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
출처 : 카페 ‘초등교육과정포럼’
https://cafe.daum.net/el-curriculumforum/95IR/19?svc=cafeapi
소설은 주인공 오베가 59살의 나이에서 시작된다. 그는 사랑하는 부인과 사별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저 죽기로 작정하고 그 방법을 나름대로 생각하고 실천한다. 그런데 그의 빈틈없는 생활방식도 자살에서만큼은 주변의 이러저러한 일들로 자꾸 어그러지고 만다. 그때마다 매일같이 찾아가는 사랑하는 아내의 무덤 앞에서 일이 어그러진 사정을 이야기하고 곧 만나게 되리라고 말한다.
오베의 이웃에 희한한 기족이 이사를 해왔다. 오베의 독특한 삶이 이들 가족으로 인해 조금씩 바뀌어가게 된다. 오베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고수하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말자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동네의 모든 것이 잘 정돈이 되어있는지를 살핀다. 그는 늘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그렇다고 동네에 무슨 큰 신세를 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 여겼다. 모두가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살아야 정상이라고 믿는 그에게 새로 이사 온 가족들이 유쾌하게 끼어든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자녀가 둘이 있는데 다시 아내가 임신 중이다.
소설은 오베와 이 임신 중인 이란 태생의 아내 파르바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금까지 오베는 40여 년 동안 옹고집이든 뭐든 별 불편 없이 살아왔는데 이들 가족으로 인해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파르바네는 오베의 옹고집에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늘 적절할 때 오베에게 달려들고 또 늘 적절할 때 돌아선다. 말하자면 치고 빠지기의 명수다. 그런 파르바네에 대해 오베는 그의 일상의 일들이 꼬이기도 하고 느닷없는 일에 동원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오베는 주변 사람들과 차츰 소통의 범위를 넓혀간다. 물론 그 소통은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순전히 그 만의 방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들로 인해 동네 사람들은 차츰 오베를 중심으로 몰려들게 된다.
아마도 그런 오베의 변화는 그의 아내가 40여 년을 함께 살면서 고쳐주려고 했던 바로 그런 변화였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오베는 옹고집에 그저 직진의 인생이지만 한 번도 남을 해친 적이 없이 정직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오베는 자기 같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것이다. 거기에 자존심이 강하다보니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 자존심과 타협을 모르는 옹고집은 그의 이웃이자 함께 마을로 이사를 온 루네와 끊임없이 티격태격하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루네가 중풍을 앓게 되어 집안에서만 생활을 하게 되자 은근히 그 가족을 돕는다. 그의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매우 즐거워했을 것이 틀림없다.
오베는 자살을 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동원하고 자기의 사후에 대한 문제에 대해 혹시라도 주변에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서 빈틈없이 준비한다. 라이플 총을 사용할 경우 혹시라도 피가 거실 사방으로 튀길까봐 바닥에 자리를 깔기도 한다. 그리고 죽은 후의 시신처리를 위한 준비며 재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세세한 것까지 목록으로 작성해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살을 감행한다. 자기 집 거실에 목줄을 매달 나사못을 박는 중에 이사 온 파르바네네 가족이 먹을 것을 들고 오면서 일이 꼬이기도 하고, 한번은 목줄을 걸었지만 그 줄이 튼튼하지 못해 끊어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기차에 몸을 던질 요량으로 기차역으로 갔지만 우연치 않게도 플랫폼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이 선로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를 구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자기 집 차고에서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이용해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었지만 이 역시 파르바네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어떻든 그는 꾸준히 사랑하는 아내 옆으로 가기 위해 자살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번번이 실패를 하고 만다.
그의 자살 시도는 단순한 삶의 포기가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옆에 있을 때 가장 그는 편안했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헌신할 때 그의 가치는 빛났다. 그러므로 그가 있을 자리는 당연하게도 아내의 옆자리였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자살 실패 과정에서 오베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그런 진면목으로 인해 주변의 시선을 조금씩 바꾸어 가게 된다. 말하자면 오베는 그 마을의 ‘키다리 아저씨’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는 어김없이 이웃으로 새로 이사 온 파르바네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마을에 강도가 든 것을 목격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인지라 그저 보아 넘길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나섰고 결국 강도들이 휘두른 흉기에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그런 그를 구한 사람이 파르바네였다. 기차역에서 사람을 구해준 일이 지역신문 1면에 나기도 했지만 이번 마을의 강도 사건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그에 대해 깊은 연민을 지니게 되었다.
결국 오베는 그의 뜻대로 자살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해를 더 이웃들과 어울려 나름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았다. 파르바네의 가족과 따뜻한 교류를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어느 날 스스로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는 편안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의 유서에는 파르바네의 가족을 따뜻이 감싸 안은 내용으로 가득 했다. 옹고집에 타협을 모르는 그였지만 그의 옹고집이 그저 세상을 거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그의 삶의 방식이었고 그것이 주변에 해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모두를 따뜻하게 했으므로 그의 장례식에는 그의 거부의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다.
오베라는 남자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애도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갔다. 오베라는 남자를 읽으면서 이 소설은 마치 어른들을 위한 따뜻한 어른들의 동화 같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터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도대체 선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하는 참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