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범 김구선생의 평생 좌우명 한시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눈 덮힌 광야를 걸어갈 때에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그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말라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오늘 내가 걷는 나의 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 휴정
이 한시는 임진왜란 때 73세의 노구로 승병을 모집하여 한양수복에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이 지은 것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이시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으며 남북연석회의 참석을 전후해서 백범이 결심을 위해서 휘호로 썼으며 1949년 6월26일 암살당하기 직전에도 썼다고 전한다. 이 시를 통하여 백범은 현실의 정치보다는 조국의 장래와 일신의 편안함과 영광보다는 후손들에게 모범이 될 발자국을 강조 하였던 것이다.
이글을 쓰는 필자의 소견으로도 이시는 위대한 청치인 뿐 아니라 한가정의 가장 교육자 크고 작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나 평범한 자들도 마음에 새겨둘 명시라 생각한다.
1989년 문익환 목사도 평양에 가서 도착 성명에서 이시를 인용하였다는데 과연 백범의 발자국을 뒷사람이 제대로 따라 갔는 것인지?
1948년 김구선생은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 때 많은 독립투사와 애국자들과 서울 시민들은 그의 길을 막으려 하였다. 그가 국민들의 방문 반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조국이 분단되려는 그 순간에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것을 막고자 자신의 몸을 던졌다. 그가 평양에 갔던 것은 조국의 분단을 막으려는 노력을 누군가가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선구자의 모습이었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온몸을 비치려 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민족이 분단된 지 반세기가 넘었다. 그러나 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필자의 좁은 식견으로도 통일에 대한 열망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다만 방법론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통일되지 않고서는 우리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탄스러운 것은 필자 같은 평범한 촌부도 김구의 백범일지를 읽어 보는데 명색이 현실정치인들이 백범일지를 읽어 보았다면 그런 추태들을 보일 수 있을까?
어떤 지도자들은 백범을 흉내내어 이시를 마치 자기의 인격인냥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금전에 연루되어 사회의 지탄을 받고 한편으로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여 국가의 장래보다는 개인의 입신출세에
더 치우치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시의 정신을 더럽히지 말았으면 좋겠다.
백범일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요”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 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70평생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평생에 설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