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주일오전 설교문
모르고 있었던 죄
요한복음 5:14~15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5장은 베데스다 연못에 있는 38년 된 환자를 고치는 장면...
베데스다는 성전의 북쪽 양문 곁에 있는 연못이다.(실로암 예루살렘 남)
양문은 제물이 될 양을 끌고 들어가는 문이다.(성전의 북쪽)
베데스다의 뜻은 「은혜의 집」이다.
-베데스다는 처음에는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제사를 드리기 가져온 희생양을 씻은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이러던 것이 시간이 흘러 예수님 시대로 넘어 오면서 또 바뀐다.
/ 장사꾼들의 사악함에 희생양을 씻고 다듬던 기능은 없어진다.
/ 본문처럼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고 그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것이다.
이 베데스다 연못에는 행각 5개가 있어서 성전에 오는 사람들이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그 행각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했다.
이 5개의 행각에는 각종 환자들이 독차지를 하고 있다....
일반 예배자들, 순례자들은 그 자리를 빼앗겨 버렸다.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서울역 지하보도, 옛 청사 앞의 의자들은 노숙자들이 차지 해 버렸다..)
일반사람들은 접근하기가 어렵다. 의자와 그 밑의 보도가 찌들었다...)
이 소문을 듣고 이 행각 밑에 와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 - 38년 된 병자
이 사람은 보행 장애 - 여기 온지가 얼마가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사람 말로 보아 베데스다 연못의 이야기는 꼭 헛 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사람의 말에?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 사람은 몇 번?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그 때 들어갈려고 했으나 동작이 느려 먼저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 연못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저번에 먼저 들어간 그 사람이 낫는 것을 보았기 때문?.....
저번에 먼저 들어간 그 사람이 낫지 않았다고 하면?........
주님은 여기에 많은 사람이 있지만 이 사람에게 다가 가시고 말씀하신다.
그 사람의 병이 벌써 오랜 줄을 아시고.....
이 사람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부터 이렇게 아파오던 사람...
(단순 산수적으로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5년~8년 전부터)
주님은 이 사람에게 신앙고백도 받지 않으시고 바로 말씀을 주신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보통의 치유 사역에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 「믿음을 보시고」이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눅 5:20)(지붕뜯은 중풍병자)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마 9:22)(혈루증)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막 10:52) (여리고 소경)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9)(문둥병자)
그러나 여기의 주님은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치유를 하신다.
그래서 사건의 흐름도 이렇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어! 걸어지네, 걸을 수 있네, 일어서니네? 가 먼저이다.
그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다.....
Vs 실로암 소경에게는 믿음을 확인?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나아서 걸어간 곳? ⇨ 성전
우선적으로 자기에게 그 말씀을 하신 그 분에게 인사를 하는 것인데...
이 사람은 예수님에게 그 인사를 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시는 분이시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에 갖고 오면? 예수님은 베데스다다. -은혜의 집
-예수님을 실로암 소경 치유로 가져오면? 예수님은 보냄을 받으신 분
-예수님을 양의 문으롤 가져오면? 예수님의 양의 문이 되시는 분.
다행히 이 사람은 성전으로 들어간다....
-지척에 있던 못에도 들어가지 못하던 자가 성전에 들어간다.....
-성전을 지척에 두고, 수 많은 사람들이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아야만 했던 이 사람.... 이제 자기도...
성전에서 이 사람을 만난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한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 이 사람은 치유되어 걸어다니는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모르던 것이 있었다....
-그가 38년 동안이나 질병으로 고생한 그 이유가 그의 죄 때문이란 것이다.
-너가 이렇게 오랜 세월 질병으로 고생한 것이 너의 죄 때문이었어!!
이 사람은 생각지도,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사람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한 것이 죄 때문이었다고?
그렇다! 적어도 너에게는 너의 죄 때문이었다.
Q.T// 이 주님의 소리에 이 사람이 자기의 죄를 찾아 냈을까?
어떤 죄들을 지었는지 찾아 냈을까?
??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죄들이 참 많다....(전혀 인지, 인식...)
우리는 우리의 죄악들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찾아내고 발견을 할려고 하면 비교 대상, 측량 대상, 측량줄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죄악을 세상의 윤리, 도덕, 가르침, 사회에 비교, 측량하면?
절대로 우리의 죄악을 찾아 낼 수 없다.....
(세상은 죄악의 구덩이고, 그 구덩이에 같이 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악을 발견하려고 하면 주님의 말씀과 보혈 밖에 없다.....
말씀의 측량줄에, 주님의 보혈에 우리를 갖다 대 보면 안다...
(얼마 전 병원 심방? 코로나 검사 키트 - 코를 후비고 약물을 바르고..)
감기가 걸려도, 콧물이 나오고 기침을 해도 한 줄이 나오면 음성....
콧물도 없고, 기침도, 열도 없어도 두 줄이 나오면 양성..... )
이 키트의 결과로 당신은 코로나 양성입니다. 음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자기가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율법으로도 의로운 자고, 당시 사회적으로도 의로운 자였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나고 난 뒤 그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한다.
주님의 말씀의 키트, 주님의 보혈의 키트로 찍어 보니까?
너는 죄인이야! 하는 선명한 두 줄이 나온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해 내랴?」
「오호라」? ⇨ 내가 이런 죄인이었다니? 내가 이런 나쁜 놈이었다니?
이 환자는 그 죄악이 그를 38년의 질병으로 몰아넣었다.....
이 환자는 「죄악을 사하는 주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자기의 질병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환자가 설령 베데스다 못에 1등으로 들어갔다 할지라도... )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키트에 찍어 봐야 한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 경고의 말이다.....
우리는 반복의 성향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
이 사람도 오늘 주님이 하신 이 말을 마음에 바로 새겨 놓지 않으면?
다시 죄악 속으로 들어가는 반복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벧후 2:20)
애굽의 바로가? 다시! 다시! 다시!
광야에 나온 백성들이? / 사사기 시대의 사람들이 다시! 다시!
다윗이 세운 것을 솔로몬과 르호보암이 다시 헌다..
여호사밧이 세운 것을... 히스기야가 세운 것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우리에게 「다시」를 이룰려고 한다....
우리의 죄가 「다시」가 되면 -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된다.
우리의 죄가 「다시」가 되면?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헌신, 섬김, 충성은 계속 다시로 만들어가고
죄악, 타락에 대해서는 다시가 없는 성도, 교회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