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홀 린세이, 「휴거」(The Rapture, New York:Bantsm Books, 1983), p. 9. 존 월부어드, 「휴거 문제」(The Rapture Question, Grand Rapids:Zondervan Publishing Co., 1979), p. 111.
12)린세이, 「휴거」. p. 90.
"나는 많은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사도 요한의 체험이 살아 있는 교회가 휴거 때 겪게 될 일을 예언적으로 조망한 것이라고 믿는다."
린세이는 초기 저작인 「새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에서도 사실상 같은 말을 한다. "요한계시록 4장 1절은 교회가 동일한 일을 당할 것을 강력하게 암시한다"(p. 61).
13)칼빈 슌호벤, 「천국의 진노」(The Wrath of Heauen, Grand Rapids: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66), pp. 52, 53. 슌호벤은 레이브스태드(R. Leivestad)의 「정복자 그리스도」(Christ, the Caqueror, London:SPCK, 1954), p. 264를 인용한다.
14)홀 린세이, 「새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p. 165.
15)월부어드, 「휴거 문제」 p. 112.
"어떤 경우든 인종적 기원상 대부분이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개개인들을 무리하게 교회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천국은 있는가 어렸을 때 내가 살던 곳의 도로 변에는 "버마 면도기"(Bu-rma Shave) 광고판이 많이 서 있었다.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은 울타리 판 위에 페인트로 희미하게 씌어져 약 14m간격을 두고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던 광고판이었다. 이 광고판들은 그 도로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내곤 했다. 때로는 성경의 인물들이 어울리지도 않는 그 광고판의 경구 속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말이다.
달빛과 장미에 모세 같은 구레나룻은
조화되지 않는다네, 버마 면도기 !
방주에서 노아는 구레나룻을 길렀지만
공원 벤치에서는 무사히 빠져 나오지 못했을 걸, 버마 면도기!
그 중에 내가 언제나 좋아했던 문구는 다음과 같다.
수염을 기른 마귀는 오직 한 곳에서만 살아야 한다네,
버마 면도기를 팔지 않는 곳에서만!
그러나 내가 즐겨 외우곤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고래는 요나를 집어삼켰지만 토해 내고 말았다네
그의 수염이 뱃속을 긁어댔기 때문, 버마 면도기!1) 전도서에도 버마 면도기 광고판과 공통성이 있는 어떤 것이 있다. 전도서는 마치 꼬불꼬불한 도로변의 광고판처럼 읽힌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구(警句)들은 오래 전에 보았던 버마면도기 광고판을 연상시킨다. 전도서 기자가 만약 리머릭[limer-icks, 아일랜드에서 유행했던 5행 희시(戱詩) - 역자 주)으로 전도서를 기록하기로 했다면 전도서는 아마 다음과 같이 들렸을 것이다.
개, 고양이, 암소,
두목, 왕, 암퇘지,
모든 것은 다 땅으로 돌아가나니, 전도서여 !
또는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자기 서재에 파묻힌 똑똑한 사람,
자기 금고실 옆에 붙어 있는 부유한 사람,
다른 이의 숨통을 누르고 있는 씨름꾼,
모두가 썩어지리니, 헛되도다!
전도서에는 "헛되다" 또는 "공허하다"라는 말이 서른일곱 번이나 등장하며, "해 아래"라는 후렴구는 열두 개 장으로 되어 있는 평범한 이 책에서 스물아홉 차례나 등장한다.
전도서의 후렴구는 버마 면도기 광고판의 표어만큼이나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전도서의 경구들이 훨씬 오래되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도서는 옛날 책이지만 그 메시지는 현대적이다. 그 책은 죽음을 다루고 있으며, 죽음의 문제는 현대인의 생활에서 아직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생(生)은 결국 돌연히(어떤 이들은 절대적이라고도 생각한다) 정지하게 된다. 그래서 "이생 후에도 생이 있는가?", "천국이 과연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겨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