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 노벨상 소동
감히 '소동'이란 표현을 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임박한 10월 초,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면서 한반도는 들끓었다.
때맞춰 노벨상 6개 부문 가운데 문학상 발표만 일주일 연기되면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수상자 발표가 있던 10월 13일 저녁
경기도 안성 고은 시인의 자택 앞엔 취재진 70여 명이 몰리기도 했다.
하나 올해도 노벨상은 한국을 외면했고, 내년의 '소동'을 예약했다.
ㄷ : 달려라, 아비
1980년생 작가 김애란의 첫 창작집 제목.
첫 창작집이 나오지도 않은 11월 초, 김애란은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으며 단연 화제가 됐다.
80년대 생 최초의 문학상 수상이란 기록도 세웠다.
돌아보면 올 문단의 화두는 세대 교체였다.
시와 소설에서 기존 문법과는 판이한 신인이 대거 등장했고
이들을 적극 옹호하는 신세대 평론가도 여럿 나타났다.
단언컨대, 김애란은 이 가운데 가장 돋보인 신예였다.
ㄹ : 루머
그렇지 않아도 말 많은 동네가 문단이다.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인물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다.
5월 자전적 소설로 읽히는(본인은 강하게 부인했다)
장편 '흉터와 무늬'를 발표하자 문단은 한바탕 시끄러웠다.
그리고 11월 말. 몇몇 지식인을 작정하고 겨냥한 듯한 시집 '돼지들에게'를 펴내자 문단은
기어이 휘청댔다. 문단에선 아직도 몇몇 지식인의 영어 머리글자가 떠돌지만
시인은 여전히 "문학으로만 읽어달라"고 단언한다.
ㅁ : 미래파
평론가 권혁웅이 '문예중앙' 봄호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
황병승.장석원.김민정.유형진 등 젊은 시인들이 이른바 '미래파'로 분류된다.
시적 자아가 혼동.분열.확장되는 시상 전개와, 위악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표현의 남발 등
기존 문법으론 접근이 어려운 시 세계를 선보인 이들을 가리킨다.
'달리는 말의 다리는 네 개가 아니라 스무 개다'로 시작되는 권혁웅의 해석은
개인적 체험에 의존하는 이들 젊은 시인의 인식론을 가장 명쾌하게 규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권혁웅은 10월 같은 제목의 평론집을 발표했다.
ㅂ : 번역문학 전성시대
바야흐로 번역문학 전성시대다.
교보문고가 13일 발표한 올해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10위 안에 든 한국소설은 김별아의 '미실'(8위)밖에 없다.
교보문고 순위에 따르면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 1'다.
지난해에 이어 2연패다. 그러나 본지가 출판사별로 확인한 판매 부수에 따르면,
J K 롤링의 '해리포터'시리즈가 근소하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작가별 순위를 보면 '해리포터' 시리즈의 롤링이 1위였고,
'다 빈치 코드' '디지털 포트리스' 등의 댄 브라운이 2위, '연금술사' '오 자히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 10만 부 이상 히트작 세 권을 보유한 파울로 코엘류가 3위에 올랐다.
일본 작가 신드롬은 올 문학출판계 최대 이슈였다.
'공중그네'의 오쿠다 히데오, '어둠의 저편'의 무라카미 하루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가타야마 쿄이치, '냉정과 열정 사이' '도쿄 타워'의
에쿠니 가오리 등이 인기를 끌었다.
TV 드라마에 힘입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올해만 50만 부 이상이 팔렸다.
ㅅ : 사랑 타령
무릇 시란 사랑의 노래인가 보다.
어려운 문학은 읽히지 않는 시절, 사랑을 읊고 사랑을 노래하는 시가 유독 읽히고 있다.
올해 단연 인기를 끈 시집이라면 류시화.이해인.용혜원.이정하.정호승 등 시인들의 사랑 시 선집이다.
오죽하면 '시인공화국' 문학과지성사의 '문지시선 300호' 특집도 사랑 시만 엮은 '쨍한 사랑 노래'일까.
ㅇ : 외출
올 최고의 논란을 부른 소설.
배용준이 주연한 영화 '외출'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중진 작가 김형경이 동명의 소설을 썼고 문학과지성사가 출간했다.
소설의 정체를 놓고 문단은 팽팽하게 의견이 갈렸다.
'영상 시대 새로운 소설 형식'이라는 주장과 '영화 흥행에 기댄 출판 상업주의'라는 주장이 맞섰다.
영화나 소설 모두 흥행은 기대에 못 미쳤다.
ㅈ : 자전거 레이서
소설가 김훈이 '문학동네' 여름호에서 밝힌 자신의 직업.
올해도 김훈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지난해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한국작가 중 유일하게 20위 권에
들었던 김훈은 올해도 '칼의 노래'와 중편 '개' 등을 합해 판매량 10만 부 이상이었다.
동인문학상(2001년)과 이상문학상(2004년) 수상에 이어 올해 단편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받으면서 김훈은 독자와 평단의 호응을 한꺼번에 이끌어내는,
몇 안 되는 작가의 자리를 굳혔다.
ㅊ : 축사 사건
10월 28일 미당.황순원문학상 시상식장.
미당문학상 수상자 문태준의 고향 친구 자격으로 소설가 김연수가 축사를 읊었다.
문태준의 옛날 일화를 공개한 축사는 단박에 화제가 됐고 이후 여러 시상식에서
'재미난 축사 바람'이 불기도 했다.
중요한 건 축사가 아니라 1970년생 동갑내기인 문태준과 김연수, 이 둘이다.
올해 시인은 미당문학상을, 작가는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둘이 태어나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경북 김천은 올 한국문단 화제의 진원지였다.
ㅋ : 카스테라
6월 발표된 자칭 '무규칙 이종 소설가' 박민규의 첫 창작집 제목.
박민규는 올해 하나의 보통명사처럼 호명됐다.
평론가들은 유행처럼 '박민규 식으로 말하자면'이라고 말문을 열며 소위 '박민규 화법'을 옹호했다.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로이 교차하는 상상력과, 기본 서사와 무관하게 혼잣말 지껄이듯 이어지는 잉여의 담론 등으로 대표되는 박민규 화법은 이미 아류마저 낳는 상황이다.
그를 향한 평단의 시선이 올해 부쩍 순해진 건 의미있는 변화였다.
ㅌ : 통일문학 원년
개최 여부를 놓고 소문만 무성했던 민족작가대회가
마침내 7월 20~25일 평양.백두산 등지에서 열렸다.
남한에서 90여 명의 작가가 대거 방북했고, 분단 60년 만에 남과 북의 작가가 상봉했다.
남북이 함께 참여하는 문학인 단체 결성이 결의돼,
이르면 내년 초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남북 작가 150여 명이 백두산 정상에 올랐던 7월 23일 남측대표단장 고은 시인은
'통일문학 원년'을 선포했다.
ㅍ :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2005년은 한국작가의 외유가 유독 잦았던 해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출판 행사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10월 19~23일)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되면서 한국작가들은 올 초부터 독일 곳곳을 돌며
'한국문학 순회 낭독회'를 열었다. 모두 96명(연인원)의 작가가 200여 차례 낭독회를 열었다.
그러나 한국작가들이 독일 땅에서 목도한 건, 각오보다도 훨씬 왜소한 한국문학의 국제 위상이었다.
ㅎ : 힘내라, 한국문학
이시영 시인은 "문학이 급기야 구휼의 대상이 됐다"고 한탄했다.
나라에서 먹여살려야 할 처지란 뜻이다.
정부는 올해 로또 판매기금에서 52억2000만 원을 한국문학에 쏟아부었다.
정부가 나서 문인에게 현금을 주고, 한국문학을 사다가 전국 도서관.군부대 등으로 보냈다.
작가 312명(연인원)이 나랏돈을 받았고 나라는 한국 문학 중 290권을 골라 권당 2000부씩 샀다.
'힘내라, 한국문학'. 문화예술위원회 산하 문학회생프로그램추진위원회의 슬로건이다.
힘내라, 제발. / 손민호기자
첫댓글 안녕? 안녕... 시작은 희망이...마무리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안녕...2005년이여... 그래도 다행이다...몇권 먼지를 벗은채 내손안에 머물렀다가서..올핸 정말 책은 뜨락 서재가 아니였음...ㅎㅎ
2005년이 안녕이면,,,,2006년은 하세요..????...뎀님 올한해도 고마웠습니다...뎀님의 꼬뿔이여 진짜 안녕 *^^ 송화님도 올한해 좋은 마무리 하세요...뜨락님 모든분도.......ㅎ
문단이 왜 말이 많은 동네인지 쪼매 눈치 잡은 올해 였습니다....ㅎ 문태준 시인의 가제미 세 편은 특별한 감동으로 읽긴 했습니다..(미당상은 다른 작품이였지만) 뎀님도 힘!! 내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