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갑진년(甲辰年) 용(龍)의 해이다. ‘낙동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안동의 누정 이야기’를 시작한 지 해를 넘기고 새로운 해를 맞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되면 언제나 아쉬움으로 가슴 아리고, 나이 듦에 대한 허무한 생각은 내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열정마저도 무디게 한다. 그렇지만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기에 우리는 이 순간을 차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새롭다는 것은 가슴 벅찬 희망이 있어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새로움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시간만큼 새롭다는 것에 대한 느낌이 크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 시간은 곧 우리의 인생이자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리라.
갑진년 용의 해를 앞두고 첫 답사를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누정 이야기의 대상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지만, 우리 지방에 있는 용과 관련된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이번 호와 설 명절이 있는 2월호까지 안동을 대표하는 사찰인 세계유산 봉정사에 서려 있는 용을 찾아가기로 했다.
봉정사는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지칠 때, 우리는 어디 조용한 산사에라도 찾아 들어가 그 풍경 속에 고즈넉이 스며드는 하루를 꿈꾸게 된다.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에서 비켜나면 내면의 소리가 잘 들리고 산사의 예불소리, 범종소리, 풍경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를 열어두기만 해도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버거워 한숨 깊어지는 날이면, 나는 산사에서 위로받고, 깨닫고, 나를 돌아보며 성찰하기 위해서라도 봉정사를 자주 찾는다. 그러면 들떠 있던 마음이 찻잎처럼 가라앉으며, 적막 같은 강물이 가슴속으로 스며들며 차분해진다.
봉정사는 내게 그런 곳이다. 집에서 십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지척이기에 맘만 먹으면 언제고 달려가 그 넉넉한 품에 안길 수 있어 좋고, 숙명처럼 다가와 버린 인연 때문에 그리워할 대상이 없어도 그리움이 사무치는 절이 되어 내 가슴에 각인되어 버렸다.
이맘때이면 영산암 뜨락은 떨어지는 벚꽃처럼 적막하고 서럽도록 눈부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묻지 않더라도 눈부신 고요가 빗어내는 꿈결 같은 소리에 귀 기울이며 봉정사가 보듬고 있는 특별한 용을 만나기 위하여 산문으로 들어선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용은 모든 동물이 지닌 최상의 무기를 두루 갖추고 있으며, 구름과 비를 만들고 땅과 하늘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믿었다. 용은 짙은 안개와 비를 동반하면서 구름에 쌓여 움직이고, 물에서 하늘을 오르내릴 때는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안개와 구름에 휩싸이기도 한다. 용이 승천하고 온갖 조화를 부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의주를 얻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이무기로 남아 여의주를 얻을 때까지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또한 용은 설화의 중요한 모티브로 자주 등장하여 여러 가지 신묘한 재능을 발휘했다.
김시습은 『매월당집』에서 “천길(天仞)을 나는 봉(鳳)은 가시나무에 깃들지 않으며, 구연(九淵)의 용은 얕은 물에 놀지 않나니, 봉이 가시나무에 깃들면 매미나 비둘기가 겨루면서 조소할 것이요, 용이 얕은 물에서 놀면 거머리나 지렁이도 앞뒤에서 공격하며 조롱할 것이다. 봉은 깊은 산속 아름다운 대숲에서 날개치고, 용은 용문의 세찬 물길 속에 헤엄친 후에야 그 신령함을 나타내며, 그 상서로움을 드러내어 보는 사람들이 모두 진기하게 여기어 경하할 것이다. 인재(人材) 또한 그러하여 성치(盛治)의 세상에 태어나 요순(堯舜)같은 조정이 있는 후에야 스스로 그의 포부를 다할 수 있으며, 사람의 준언(俊彦)이라고 하여 그의 본시 품은 뜻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며, 용을 상서로움과 풍운 조화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오늘까지 이어져 용은 길상으로서 큰 희망과 성취를 상징하고 있다. 용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기뻐하고 어떤 일에 대해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그래서 복권을 사기도 하고 주식에 투자하기도 한다. 또 횡재를 한 사람에게 “용꿈을 꾸었나?” 부러워하고, 실수를 잘 모면하면, “용꿈 꿨다.”는 말로 용의 효력을 표현했다. 이처럼 강력한 힘과 절대 권위를 상징하는 용의 모습은 왕권을 상징하기도 했고, 다양한 조각과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불국정토를 인도하는 사찰의 수호신, 용
불교에서 용은 불국정토를 인도하는 사찰의 수호신으로 받든다. 사찰을 장엄하고 있는 다양한 장식 문양과 조형물 그리고 불전들은 불교의 정신세계와 세계관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부처님을 향한 구도자들의 종교적 염원을 드러내는 가시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법당 전면 기둥의 용은 불법 수호의 의미와 함께 법당이 곧 반야용선(般若龍船,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임을 상징한다. 법당은 불자들이 부처님과 함께 타고 가는 배의 선실과 같은 곳이며 그 배가 향하는 곳은 바로 피안의 극락정토이다. 따라서 법당 앞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용두(龍頭)는 극락정토를 향하는 반야용선의 선수(船首)가 되고 용미(龍尾)는 선미(船尾)가 된다. 그러므로 법당 건물에 조각해 놓은 용두와 용미는 그곳이 반야용선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용은 장식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범종을 매달기 위한 목적으로 종 위쪽에 만들어놓은 장치를 종뉴(鐘鈕)라 하는데 대부분이 용의 형상을 취하고 있어서 용뉴(龍鈕)라고도 한다. 종 위에 앉아 있는 용을 포뢰(蒲牢, 용의 아홉 아들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포뢰는 바다에 사는 경어(鯨魚; 고래)를 가장 무서워하여 그를 만나면 놀라 크게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포뢰 모양을 만들어 종 위에 앉히고 경어 모양의 당(撞)으로 종을 치면 경어를 만난 포뢰가 놀라 큰 소리를 지르게 되며 그래야만 크고 우렁찬 종소리가 난다고 믿었다.
용은 부처님과 불국토를 수호하는 호법신이기도 하다. 사찰 도처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사찰 초입의 돌다리 밑에 숨어 있는 용도 그중 하나이다. 산지 사찰에는 대개 절 입구에 개천이 흐르고 그 위에 극락교(極樂橋), 승선교(乘仙橋), 삼청교(三淸橋)라는 이름의 돌다리가 있다. 승주 선암사 승선교 다리 밑에 용두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 이 용은 다리 위를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용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천의 물을 타고 사찰 경내로 들어올지 모르는 사악한 무리를 막아 사찰을 청정도량으로 유지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부처님을 찬탄하고 불국세계를 외호하는 역할을 하는 용은 법당 안에도 있다. 법당 안의 닫집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도 용을 장식하는데 대개 그림이나 조각 형태이다. 특히 닫집에는 용이 빠지지 않는데 그 조각 솜씨가 다른 어느 것보다 뛰어나다. 닫집의 용은 부처님이 앉을 자리에 접근할지도 모르는 사악한 무리를 경계하기 위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