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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상처를 치유하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요한복음 13:34
사람은 몸이 아프면 마음도 그 영향을 받는다. 또한 마음이 아프면 몸도 그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질병은 전인적으로 힐빙(heal-being) 즉, 전인치유여야 한다는 주장이 맞는 말이다.
현대서양의학의 한계는 사람의 몸의 병증을 잡으려고 쫓아 가다가 결국 사람을 잡은 형국이 되는 예가 빈번하다. 그래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에서는 현대의학의 맹점을 깨닫게 되고,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여러 가지 치료방법을 환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약사들도 약 처방을 하기 전, 여러 가지 자연치유적인 방법을 권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아무리 뛰어난 명의라도 첫째는, 환자의 자기 긍정적인 믿음상태가 중요하다.
그래서 어제는 “무엇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라” 는 주제로 자기 암시법을 창안한 에밀 쿠에의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위약 효과)에 대해서 언급을 한 것이다.
모든 자신의 육적, 심리적, 정신적인 질병도 자신을 믿음의 터 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갖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몸의 병증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의 심리는 극도로 예민하다. 그래서 자제력도 부족하고 신경질적이다.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는데, 마음과 생각과 몸의 행동이 다르게 반응한다. 그렇게 표현하는 자신도 후회를 한다.
그러한 자기행위도 자신의 무의식 속에 상처의 기억으로 또 쌓이고 남는다.
그러므로 간호를 하는 주위 사람들은 환자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간호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를 간호하다가 간호를 하는 사람이 상처를 입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무의식의 상처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가까운 친한 사람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이다.
부모나, 부부나, 형제나, 친한 친구 내지는 동료들로 부터다.
“어떻게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어” 하는 서로 사랑하는 만큼 그 상처는 깊다.
그래서 자신의 실수나 상처를 더 큰 죄의식으로, 그리고 더 큰 증오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짐을 평생지고 살아간다. 이러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증오와 미움은 자신의 부정만을 키울 뿐이며, 자신의 건강과 미래를 파멸로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그 때 일은 그 때로 잊고, 자신의 실수와 허물도, 그리고 부족함도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그 근본을 따져보면 다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며, 각기 다른 이해에서 벌어진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의 상처들은 대부분 사랑의 깊이로 일어난 발단들이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에서도 생각하고, 관용하고, 용서하고, 과감하게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기술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긍정적으로 싸매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의식(subconscious)이란? 한 개인의 내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진행되는 정신활동의 복합체를 말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 오스트리아 신경과 의사, 정신분석 창시자로 카타르시스법을 확립하고, 20세기 사상가로 심리학, 정신의학, 사회학, 사회심리학, 문화인류학, 교육학, 범죄학, 문예비평에 큰 영향을 끼침)에 따르면 일련의 무의식 작용은 사람이 그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초기 실험심리학자 빌헬름 분트를 비롯한 일부 이론가들은 무의식 정신작용의 역할을 부인하고, 심리학은 의식 상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했으나, 무의식 정신활동의 존재는 충분히 입증되었으며, 현대 정신의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개념으로 남아 있다.
필자 역시, 20년이 넘는 동안 “힐빙” 이라는 전인치유목회를 해오면서,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이 개발한 정신분석이론을 공부한 것에 대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무의식의 세계는 사람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광범위한 영역임을 알 수 없었고, 사람마다 각기 다른 영역의 무의식의 세계를 소유하고 있음을 임상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무의식의 세계를 긍정적인 마인드로 만들 수 만 있으면 질병의 치유속도는 매우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의식의 영역 즉, 그 자기갈등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하여, 몸이 분비하는 여러 가지 호르몬의 비정상적인 분비로 인하여 중추신경계에 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중추신경과 관련된 신체의 여러 장기들이 손상을 입게 됨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뇌는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를 만든다.
그러기 때문에 수술을 통하여 뇌의 특정부분을 제거하면 특정경험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또한 뇌혈액 변화에 따라, 뇌가 무의식 활동에서 의식 활동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에는 뇌의 여러 부분에 대한 혈액공급에 국지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환자들을 치유하면서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창조생기수비요법을 통한 생체심리학적 연구는 무의식에 대한 정신분석 개념의 타당성에 새로운 힐빙의 치유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의 임상 경험으로 들어난 환자들의 무의식 세계의 상처들은, 주로 어린 시절에 부모들로 부터의 억압, 그리고 또래 친구들로부터 받은 집단 따돌림, 부부와 가까운 친척이나 동료이며, 심지어 병의원에서 자신을 치료하던 의사들로부터 받은 상처들도 많았다. 그래서 상담도중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쏟는다.
그들의 끝말은 하나같이 “내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내가 죽였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더 깊이 공부하고 싶으면 프로이트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이드(id : 본능적 무의식)·자아(ego)·초자아(superego)”라고 하는 새로운 인성 또는 인격(personality)의 구조 개념을 살펴보기 바란다. 그리고 다른 이론가들로서는 에릭 에릭슨, 카렌 호르나이, 에리히 프롬, 해리 스택 설리번 등이 있는데, 이들도 같이 연구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쨌든,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병의원에서 진단되지 않는 병증들을 “신경성”이라는 진단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런데 몸이 아프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병증을 알아내기는커녕, 그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무슨 병이던 다 사실 원인이 있다는 것을 필자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몸부터 치료를 하면서 상담을 통하여 알게 모르게 마음도 같이 치유해 나간다.
분명한 것은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다고 하지만, 자신의 상처 난 감정을 치유 받을 수 있는 곳은 자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상한 심령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용서와 사랑과 이해, 그리고 수용과 헌신과 봉사로 풍요로워 진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성숙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성숙되어짐에 있어서는, 스스로 미성숙 단계에서 겪어야 하는 많은 상처들을 스스로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며 사회성을 익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닷가 조약돌 같은 인생이라는 것이다.
서로 몸을 부비면서 아파하면서 깎이고 닳아서 한 모습을 이루는 것이다.
미움, 시기, 질투, 증오 같은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자신의 영혼까지 질식하게 되고 행복을 잃고 만다. 자신을 위하여서도 과감한 사랑과 용서로서 나아갈 때, 자신의 내적인 행복감의 감격과 영혼이 기뻐하며 춤추는 희열의 감사가 삶의 현장에서 넘칠 것이다. 이것이 힐빙인 것이다.
인생은 거대한 현실이라는 큰 배를 탄 것과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망망대해에 혼자 풍덩 뛰어 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자살행위인 것이다. 무엇인가 불합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개선하고,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아픔을 딛고, 불합리한 것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사명인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고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무의식 속에 감추어 진 나쁜 기억과 상처들을 자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용서에는 조건이 없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시듯 그 은혜 안에서 용서하라.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다독이며 치유를 선언함으로서 감격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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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네
사랑은 무례히 행치않고, 자기의 유익을 굳지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