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27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그것을 제단 옆 동편에 재 버리는 곳에 버리고”
“만일 주께 드리는 그의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그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중에서 자기의 예물을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에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그 피는 제단 곁에서 흘릴지니라. 그는 그 모이주머니와 깃털을 뽑고 그것을 제단 옆 동편에 재 버리는 곳에 버리고 그 날개들과 함께 그것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곧 불 위의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불로 드리는 제사라.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1:14-17)
('And if the burnt sacrifice of his offering to the LORD is of birds, then he shall bring his offering of turtledoves or young pigeons. 'The priest shall bring it to the altar, wring off its head, and burn it on the altar; its blood shall be drained out at the side of the altar. 'And he shall remove its crop with its feathers and cast it beside the altar on the east side, into the place for ashes. 'Then he shall split it at its wings, but shall not divide it completely; and the priest shall burn it on the altar, on the wood that is on the fire. It is a burnt sacrifice, an offering made by fire, a sweet aroma to the LORD.)”
임마누엘!!
비둘기는 큰 새가 아닙니다. 비둘기보다 작은 새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들 중에도 독수리와 같은 새는 매우 큰 새이지만 비둘기는 작은 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규모가 작은 것이냐, 큰 것이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림에는 그 순서와 절차, 질서를 매우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음을 봅니다.
만약 비둘기의 깃털을 성막 안에나 밖에나 마음대로 함부로 버릴 수 있게 한다거나, 그 처지와 그 현장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버릴 수 있게 자유롭게 한다면 그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부작용은 생각보다 커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이 ‘비둘기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교훈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무질서한 인간의 방종의 모습이 계속된다면 그 사회와 국가는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사람이 제사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 특히 과부와 같이 외롭게 사는 사람들은 그런 소나 양과 같은 제물이 없기에 비둘기, 그것도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하나님께 예물로 바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 비둘기 번제를 드릴 때 깃털을 비롯한 버려야 할 것들을 곧 모이주머니와 깃털을 제단 옆 동편에 버리라고 지정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동편’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qedem(케뎀)'. ‘동편(east)’, ‘고대(antiquity)’, ‘앞(front) 등의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1회 나옵니다.
명사 케뎀은 “동편(east)”이라는 지리적 의미와 “옛날(ancient time)”, “이전(aforetime)”이라는 시간적 개념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목가적 상태를 드러내는 반면 '올람'과 '아드'는 '영속성'을 뜻하고 '자켄'은 나이 먹었음을, '리숀'은 맨 처음을 의미합니다.
"동편(東便)"은 좋은 개념도 나쁜 개념도 가질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곳은 에덴동산의 위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의 본고장이기도 합니다(창 11:2). 가나안의 거주민들은 이 단어는 자주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종족들을 뜻했습니다(민 23:7, 삿 6:3, 삿 6:33). 그러나 선지자들은 그들이 이스라엘에 복종하게 될 날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 11:14).
볼프(H. W. Wolff)는 히브리인들의 시간 개념을 사람이 배를 저어가는 상황에 비유하였습니다. 배 젓는 사람은 지나간 자리(과거)를 자기 앞에서 보지만(케뎀), 미래는 자기 뒤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시간 개념이 반드시 그러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이 그 언어를 채용하기 이전에 어원학상으로 이러한 용법이 이미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H. W. Wollff, 강의 노트).
시적인 구절에서는 케뎀이 창조된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요셉은 옛(목가풍) 산의 상품들이 주어지는 복을 받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축복하며 요셉지파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요셉에 대하여는 그가 말하기를 "원하건대 그의 땅이 주께 복을 받아 하늘의 진귀한 것과 이슬과 땅 밑에 있는 깊음과 태양이 맺게 하는 귀한 열매와 달이 내는 진귀한 것과 옛 산들의 으뜸가는 것과 영원한 작은 산들의 진귀한 것과 땅의 진귀한 것과 땅의 충만한 것과 떨기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이의 선하신 뜻을 내리니 복이 요셉의 머리에 곧 자기 형제들로부터 구별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그의 영광은 그의 수송아지의 첫 새끼 같으며 그의 뿔들은 유니콘들의 뿔들 같도다. 그가 이 뿔들로 백성들을 땅끝까지 모두 밀어버리리니 그들은 곧 에브라임의 수만이요, 므낫세의 수 천이로다."(신33:13-17)
그리고 하나님은 태고부터(창세 때부터) 보좌에 앉아 계신다(거하신다)(시 55:19). 이 단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상을 상징하면서 출애굽 시기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말 3:4). 시편 기자는 그 때 수행된(시 44:1), 그리고 특히 자기 고난의 때(시 77:5)에 수행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역을 회상합니다. 확실히 이러한 관련 구절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회상하고 있는 것입니다(시 74:2).
케뎀은 또한 다윗 시대와도 관련, 사용되었습니다(느 12:46). 세 가지 사상이 모두(창조 - 출애굽- 다윗의 통치) 시 74:12에서 결합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가 신학적 모델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서 이것은 메시야에 관한 진술과(미 5:2, 겔 36:11) 영원한 언약(미 7:20)에 대한 말씀에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권고에 따라 이 모델(창조부터 완성까지)을 여호와의 강림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사 45:23). 모든 것을 그는 아시며 또한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사 45:21).
에덴 동편에 사는 사람들 마치 바벨론에 거주하는 자들을 주 그리스도 예수의 아침 해가 떠오르는 동편, 하나님 나라로 이주시키는 사역이 그리스도의 종들이 하여야 할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