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점심시간이 되자 하나둘 모임장소인 홍동면 문당리로 오셨습니다.
1. 첫강의 진 선생님의 '구약역사'
매사에 올바른 결심을 추구하려는 지도자의 끊임없는 솔선수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 개인 역시 지도자의 능력을 지닌 듯이 살아야 한다. 다윗같은 지도자가 되려면 측근들과 긴밀한 이해와 협조, 믿음이 있어야 함을 역사를 통해 배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기반이 되어 통치자도 백성도 서로 인권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 세상이 타당하고, 평화로운 세상이다.
2. 손 선생님의 요한복음 공부 서론(1장 4절)
사도요한은 로고스가 사람의 몸으로 이땅에 오신 성육을 강조하며, 그 일로부터 비로소 어둠에 있던 사람들의 빛이 됨을 강조하였다. 하나님과 로고스가 어둠에 있던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기 위해 청조 전부터 존재하였고,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이땅에 사람의 몸으로 직접 오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다.
3. 최 선생님의 창세기 공부(1:6-25)
만물의 기원 드라마는 단지 시 이상의 것이다.
- 우주와 생명의 기원은 우연이 아니다. 한 분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
-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다.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좋았다.
- 하나님의 창조의 정점은 인류 창조였다.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인간에게 만물의 감독을 맡긴 점에서 다른 피조물과 다르다.
- 하나님의 '6일간 창조사역' 뒤에 안식일이 따르며, 이는 인간의 '노동 리듬'의 기준이다.
4. 조 선생님의 '요나 이야기(욘 4:10-11)'
하나님의 사역은 인간의 의도 생각과는 다르다는 점을 요나서는 우리에게 일러준다. 요나는 자신을 과대평가했다. 요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신다. 인간의 변덕스러움에 좌우되지 않는 하나님 사역에 대한 믿음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유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역에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무익한 종'으로 자신을 인식하고서야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여 옳은 일을 할 수 있다.
5. 김 선생님의 '아담의 계보(창 5장)'
성경을 제대로 읽고자 할 때 계보를 잘 읽는 것이 중요하다. 창 5장의 아담의 계보는 홍수 이전에 경건한 자들의 신앙이 어떻게 전승되어 갔는지를 알게 한다. 그들은 어떻게 죄가 인간을 손상했는지 알았다.(아담이 증인이었다.) 이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형상(창 5:3)으로 자녀를 낳는다. 이들이 비록 장수하였다 하더라도 에녹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인 '~세를 살고 죽었더라'는 말을 생각해야 한다. 아담의 경건한 후손들은 '여자에게서 날 자'가 오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
아담의 계보에 등장하는 10명 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세대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물론 당시의 장수에 대한 여러 의견(부족의 존속 연한이다. 족보의 연결 고리 생략으로 인한 연수다 등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6. 배 선생님의 '눈 속에 있는 들보와 티를 빼는 것'
죄투성이인 우리는 자신을 알지 못하고 상대의 잘못을 비판합니다. 눈의 들보는 성령이 아니면 깨닫지도 못하고 체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위해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눈에 들보와 티는 잘못이나 죄의 크고 작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잘못을 적게 한 후에 비판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상대에게도 좋은 것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 자녀의 큰 잘못을 보는 것처럼 슬프고 씁쓸한 비통함으로 참된 회개와 용서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7. 김 선생님의 탕자의 비유(부도덕한 작은 아들과 위선적인 큰아들)
탕자의 비유를 축약한다면, 복음의 본질인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되는 것이지, 자기 의로움이나 율법행위주의나, 선행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거부하면서 재산은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둘 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들을 위해 아버지는 멸시, 모욕 , 종롱을 받으면서도 대중 앞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사랑을 보입니다. 두 아들에게 다 아버지의 용서와 화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둘에게 아버지와 진정한 부자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들에게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는 자유를 주십니다. 아버지는 결국 십자가의 희생과 대속으로 죄인들을 구하신다는 메시지를 주는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8. 한 선생님의 '청년의 때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2-14)'
전도서 기자는 인생사 여러 일들을 겪고 사색하여 얻는 결론으로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훈을 전도서에 남겼다. 과연 해 위의 것을 추구하고 의존하고 이를 통해 의미를 찾고 행복을 얻도록 지음 받은 인간이 해아래 것에만 집착할 때 그 삶은 필연적으로 헛된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평구 선생이 잘 쓰는 비유처럼 "인간이면 병아리처럼 땅만 쳐다보며 다닐 존재가 아니다." 젊을 때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젊은 시절부터 명심하고 그에 입각해서 살아야 할 경구(警句)이다.
9. 장 선생님의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 신앙과 교육(마 6:24-34)
'두 주인'은 서로 대립되는, 서로 모순되는 명령을 내리는 두 주인을 의미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는 '탐욕을 내지 말라. 다른 어떠한 신들도 지니지 말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악마는 이에 반대하여, '탐욕을 내라, 그리고 맘몬을 섬겨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맘몬 모두의 종이 되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다는 금언을 내세운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오로지 그의 말씀에만 집착하고 그밖의 모든 것을 그 말씀에 종속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만일 여러분이 맘몬에 대해 욕심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방식대로 섬기는 것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 만일 여러분이 그의 말씀을 따라 살고 그 안에 계속 머물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즉시 맘몬을 배격해야만 한다. 이것은 대단히 확실한 것이다.(마르틴 루터 지음 '루터 선집 제3권', 컨콜디아사 1984, 184-185쪽 발췌인용)
10. 반 선생님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환경정의'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사람 혼자서 살 수 없고, 사람과 자연이 서로 사랑해야만 살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한 근본적 책임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에게 있다. 왜냐면 그리스도인의 신앙만이 부활에 근거한 총체적 구원관과 종말적 정신에 입각하여 청지기적인 삶과 이웃사랑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칭찬과 멸시에도 요동ㅊ 않고 그리스도로 인한 평화와 구원의 기쁨에 만족하면서 자발적인 가난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듯이 자신과 사람과 자연과 우주를 사랑하면서......
11. 박 선생님의 '한국적 무교회사상의 전개'
철학, 사상, 종교, 예술 등 정신적인 일은 언제나 민족 독자적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것이 해당 분야의 인류적인 전개에 기여하게 된다. 이것이 인류사에서 각 민족 존립의 신적인 섭리의 깊은 근거가 되는 것이며, 모든 민족사의 궁극적인 사명이기도 하다. 세계사에서 민족의 존립과 흥망성쇠는 오로지 이 민족 사명의 성취 또는 몰이해나 거부와 깊이 관련된 것이다.
우리 무교회의 민족 독자적인 전개는 이것이 외부 또는 기독교 내지 세계사에 대한 기여에까지 이르지 못하면, 그것은 또한 우리 자신, 우리 민족 자체에 대한 기여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각자 신앙인으로서 이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노평구 성서연구 제471호, 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