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마지막 주막 <삼강주막>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219 삼강주막집
삼강주막(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
★대한민국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 이야기
사람들에게 뱃가 할매로 불렸던 주모 할머니는 1917년 이곳에서 가까운 이웃마을 풍양면
우망골에서 태어났다. 꽃다운 나이인 이팔청춘 열 여섯 되던해 1932년 네살위인 배소봉씨
를 만나 혼인을 하였고 한창인 서른넷에 이름모를 병으로 남편이 죽은 뒤부터 어린자식
2남2녀를 키우기 위해 주막의 옛주인으로 부터 주막을 넘겨받아 2005년 10월 89세로의
나이로 세상을 뜰때까지 50 여년간 삼강주막의 주모 역할을 해 왔다고 합니다. 글자를 몰
랐던 할머니는 손님들이 외상을 하면 부엌벽에 금을 그어 표시를 했다고 하고 한잔이
외상이면 짧은 금을 긋고 한 주전자는 길게 금을 그어 표시를 했는데 외상값을 갚으면
가로줄을 그어 지웠다고 합니다. 벽지의 무늬처럼 금들이 모두, 누구누구의 것인지 죄다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가로금이 지워지지 않은 짧은금은 주모에게 외상값을
갑지 않은 금이랍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주모 할머니는 외상값을 다 받지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나 버렸습니다. 생전에 수많은 길손에게 베풀었던 넉넉했던 인심덕으로
천국에서는 풍요롭게 살 것입니다.
삼강주막(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은 1900년 무렵 세운 건물로, 삼강나루로 찾아드는
여행객들에게 음식과 술을 제공하거나 보부상들이나 시인 묵객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쉼터로 이용되었다. 내성천, 금천, 낙동강 등 3강이 합하는 지점인 삼강(三江)에는 낙동강
을 건너 서울로 가는 장삿배들과 문경새재를 오르는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이들과
함께 존속해오던 삼강주막은 2006년 주모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대로 방치되었으나,
2007년 예천군에서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주막 옆에는 수령 500년 이상인 회화나무와
함께 들돌이 보존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목에는 주막이 있어야 하고 쉬고 먹고 마시고 자고 오고
맞고 떠나고 보내고... 마음이 머물고 마음을 떠나보내고...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웅성
거리다가 쇠퇴해 가는 곳 지난 예천 화수회 총회때 의재님께 부탁하여 삼강주막을
찾아 보았다.
|
故. 유옥연 할머니,,,한대의 담배연기 속에는 인생역경이 담겨 있겠죠.
돌아 가실때 까지 살았던 고 유옥연 할머니 마지막 주막모습
이사진은 2월26일 규헌님이 직접 찍었습니다. 500년이 넘었다고 하네요.
주막집 앞에서 청수/정명남.
정규헌님과 해설자 정재홍님.
★들돌은 본래 체력을 단련하기 위하여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돌로, 장성한 농촌 청년들이 농부로서의
역량을 인정 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이곳에 있는 들돌은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물류의 이동
이 늘어 인력이 많이 필요하게 되자,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일꾼들의 품삯을 정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돌은 둥근 타원 모양이며 무게는 50Kg 정도 나간다고 한다.
옛날에는 나룻배가 넘나드는 곳인데 다리가 놓여있죠.
날씨는 흐리고 해도 관람객이 제법되죠
좀더 가까이 가 볼까요. 아 ~자세히 보니 화장실 같군요.
어~ 여기는 사공숙소군요. 뱃사공이 자는 방 인감~????
5호방을 노크해 봅니다. 똑똑똑~♬ 누구 계세요?
막걸리 맛이 일품이다. 한잔하는 청수와 동료들
메뉴는 배추전, 메밀묵, 두부안주에 막걸리
방벽에는 왠 낙서가 많죠. 저도 흔적을 조금 남길려고 하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문디자슥 천불나지만 꾹 참고 이방 저방 술 밥값을 정지흙벽을 장부 삼고 놋 젓가락 연필삼아
영그게 표시하랴.사랑채 보부삼에 배 출발 귀뜸하랴.풍양장날은 늘 바쁘다.
벽에 붙은 현수막에 이런글귀도 있네요.
어~오늘따라 손님도 많네요. 주모- 막걸리 한 사발 더 주세요.
|
첫댓글 말로 듣던 주막의 모습이 신기합니다. 푸짐한 안주에 한잔 들이키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삼강주막 지금은 부잣집 같습니다. 이 뱃길 건너 오면 풍양 장이 재넘어 시오리(十五里)요 흥곡재 넘으면 우망골 별실입니다. 강을 건너 개(浦)를 따라 용궁장이 십리 점촌장이 이십리인데, 배 탈라치면 사공의 령에 따라야 사람이 적어도 건널 수 있고, 사공에게 밉짜가 되면 20명은 되어야 건너주던 곳입니다. 작은 재를 넘으면 사막골 거기서 우편으로 내려가면 하풍(河豊)나루. 아 참 이마을은 청주정(鄭)씨 집성촌인데, 임진왜란 때 목숨걸고 이순신 충무공을 죽음에서 구하신 좌의정 약포(藥圃) 휘 정탁(鄭琢)의 세째 아드님 청풍자(淸風子) 휘 정윤목(鄭允穆)께서 찰방(察訪) 벼슬을 하시다가 광해군의 실정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21:08
후진을 양성하던 삼강강당(三江講堂)이 이마을에 있고, 사설 민속 박물관도 이 마을에 있습니다. 삼강강당은 원래 삼강서원이었는데, 훼철 후 아직 복원되지 않은 채 한 때는 우망국민학교 삼강 분교로 쓰이다가 분교장이 별도로 세워지기도 했던 벽지 마을인데, 이 마을에서 국회의원도 한국굴지의 재벌도 배출한 이름있는 마을입니다. 지금 이 다리를 건너 직진으로 달리면 충북 단양으로 이어지고 좌측으로 문경을 통하면 중부 내륙 고속 도로에 이어집니다.....정재홍님의 설명입니다.
정말로 진짜로 대사카페가 좋군요. 어디서 이런 좋은 곳을 구경 하겠어요.마지막 주막을 잘 지켜오신 유옥연 할머니~~~존경 합니다.제가 포항 학교에 근무 할때 포항서 제일 큰 버스회사를 운영 하시던 분(ㅎ)의 모친께서 일수놀이 등등...하시면서 아들의 큰회사를 뒷받침 하신분이 한글, 숫자를 정말 몰랐지만 성냥개비로 또는 자기만이 아는 그림으로 계산 하신것을 봤어요.아들이 성공한 뒤엔 많이 베풀었지만.... 참!!대단하신 분들입니다.
명미씨는 좋은 추억을 정말로 많이 가지고 계시는군요. 유옥연할머니처럼 억척스럽게 사시는 분이 가끔 있답니다. 이분들은 대개 글자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머리가 좋았던 분 들 같아요. 그리고 노년에 사회에 환원 봉사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주막집 조그만 방안에서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하니까 초임때 연세든 선생님따라 주막집 들리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명미씨!
정말 한번 가 보고 싶은 장소였는데 이렇게 영상으로 볼 수 있으니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민족의 애환이 서린 아리랑 가락이 마음을 더욱 설레이게 합니다. 좋은 자료. 좋은 음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교수님. 댓글 주셔서......삼강주막은 서울로 가는 길목 낙동강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곳에 위치했답니다. 이 곳을 많은 선비들이 지나 다녔던 흔적을 더듬어 봤습니다. 4~5명이 들어 앉으면 꽉 찰 조그만 방에서 막걸리 정말 맛 있었습니다. 양조장 막걸리가 아니고 좀 텁텁한 집에서 담근 막걸리였답니다. 지나시는 길이 있으면 한 번 가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튼튼한 마당발 청수님으로 인해 전국을 누비게 됩니다. 들돌이란 것도 알게 되고, 절의 해우소 보다 더 해우소다운 통시도 보고.....^^
역시 바람새 지기님의 관찰력은 대단하십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막걸리 안주론 역시 배추전 메밀묵, 촌두부가 제격이지요.
딱 어울리더라구요. 막걸리 맛이 얼마나 시원한지? 목에 잘도 넘어 갔답니다.
좋은 구경 잘 하였습니다. 막걸리와 안주에 눈이 멈춰지네요. 매화가 취했나봐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