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승현, 양희은씨...
얼마전 친정 아버지의 49제가 있었습니다.
지난 9월의 끝자락에 있는 어느 날
진주에 있는 큰형부로 부터
아버지가 새벽장에 가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그저,
조금 다치신거겠지.... 하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지요.
불과 한시간도 안되어 빨리 진주로 오라는
형부를 전화를 받고서야...
아버지가 위독하신 정도가 아니라.
병원 응급실에서 이미
뇌사판정을 내린 상태라는 겁니다.
창원에서 진주까지 한시간이면
가는 거리지만 출근시간이라 마음만 바쁘고
눈에선 뜨거운 눈물만이 흐를뿐이었습니다.
6남매중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자식은 큰언니 뿐이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어릴때부터
엄격하시기만 한 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서인지,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드린적도 없었는데...
늘 자식들이 도리를 지키며 살기를
항상 당부하셨지요.
엄마가 병약하신 분이어서
항상 집안 살림은 아버지 당신의 몫이었기에
자식들한테 거는 기대도 남달랐고,
그랬기에 늘 아버지의 훈계는
저에게 잔소리로 들렸고,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창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편으론 아버지의 잔소리를
벗어났다는 생각에 뿌듯하기 까지 했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못난 딸이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친정에 가서
잠이라고 자로 올라치면
아버지는 늘 새벽에 일어나 산에가서
나무 한짐을 하고 오시거나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고 오셔서
아직도 곤한잠에 빠져있는 우리를
깨우시곤 했습니다.
휴일 오랜만의 늦잠을 방해받기 싫어서
어떨땐 핑계를 대고 당일로
집으로 와 버리곤 했는데....
평생을 부지런하게 사셨기에,
그만큼 건강하셨던 아버지...
그래서 자식들 모두 아버지가 앞으로
10년은 훨씬 넘게 사실거라고 믿으면서,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던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이젠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내년 칠순엔 꼭 해외여행을
보내드릴 계획이었는데,
아버지 이젠 이 세상 가시고 싶은곳
어디든 훨훨 날아다니시면서
구경하시고 계시겠죠?
저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거나 남을
가슴아프게 하는 걸 본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남들에게 무엇이든
도움을 주면서 사셨죠?
그날 새벽도 새벽장 보자기 하나와
수해로 옷가지 조차 없는 분을 위해
헌옷 보자기 하나를 챙겨들고
도로를 건너시다 음주운전하던 차에
받혀 돌아가셨죠..
아버지의 건어물 보따리에서
다 바스라진 마른 새우며 멸치를 보고,
옷보자기위에 선명하게 찍힌
차 바퀴자국을 보면서
아버지의 굴곡지고 외로우셨던 삶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 가슴에 응어리가 지더군요.
조실부모하고 두분의 고모마저
아버지를 버리셔서 혼자서 가정을 꾸리시고
오로지 우리 6남매만을 믿고 살아오셨는데,
저희가 아버지의 외로움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에 가슴에 사무칩니다.
아버지...
막내만 결혼하면 새벽에
장에 가시는 것도 그만두신다고 하셨는데,
올해까지만 하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시더니.
그렇게 허망하게 자식들 곁을 떠나셨나요?
아버지 연배의 어르신이 지나갈 때,
아이들이 외할버지 얘기를 할때
문득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코끝이 찡해옵니다.
아버지, 저희들 모두 열실히 살께요.
아버지 말씀대로 도리를 지키는
바른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말이예요.
그리고, 큰오빠네도 아마 앞으로 다 잘될꺼예요.
아무 걱정마시구요.
엄마랑 편안히 계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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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첫댓글 내일 내일 하다가 미루었던 일들이 후회로 되어 돌아올 때에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반성을 해보지만 모든 것은 때 늦은 일이 되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인생은 예측하기가 힘들지요 늦어나마 애도를 전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비가오는 날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집니다. 돌아가시던 날도...삼우제 지내러 가던 그날도 오늘같이 비가내렸습니다...우리 아버지는 비를 참으로 좋아하셨나 봅니다...엉뚱하게도...아버지 산소곁에 우산이라도 놓고갔으면 좋겠다...하던 그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