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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일(토) 오후 3시, 지하철 2호선 서초역 근방에 위치한 중문학과 ‘강남서초스터디’(그룹장 이윤희, 이하 강초스터디)가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스터디 창립 36주년을 기념하는 조촐한 행사였다. 강초스터디는 어떻게 36년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도로명 주소로는 서울 서초구 법원로1길 11 금구빌딩 B1 106호, 3시가 가까워지자 하나둘 스터디 회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문학과 강초스터디는 두 개의 강의실을 갖추고 있는데, 스터디룸 제1강의실 칠판에는 ‘축 제36주년 기념’이라는 글자가 크게 붙어 있었다.
창립 36주년 기념 행사를 마치고 스터디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앞열 앉아있는 이들 가운데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이윤희 그룹장, 한 사람 건너 서주석 강남서초스터디 7대 동문회장, 정상덕 17대 총동문회장이다.
선배들의 아낌없는 지도와 지원,
학우들의 열정, 사심 없는 운영이라는 삼박자가
중어중문학과 강초스터디를
36년간 이어지게 한 힘.
공부 외에도 다양한 문화 소양도 기를 수 있어
“학습에 도움도 많이 받아 만족”
일찍 도착해 자리에 앉은 이영철 학우(2학년)는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김성곤 교수의 중국 한시기행을 보고 방송대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한 케이스. 그런데 입학해서 보니 중국어 공부를 혼자 하기가 어려워서 스터디에 가입했다고 귀띔했다. “스터디에 참가해 선배님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다. 오늘 창립 36주년 행사도 기대된다”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2020년 그룹장을 지낸 김명준 학우(4학년)는 “우리 스터디의 역사가 아주 긴 편이다. 우수한 선생님과 학생들이 많아 교학상장하는 스터디라고 말할 수 있다. 졸업한 선배들이 재능기부로 도움을 주고 있다. 초·중·고급 회화, 명문 감상, 경서제자 등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있다. 중어중문학과 정규 교과 과정에 따라 공부하는 게 기본이다”라고 말했다.
행사는 윤경숙 총무의 개회사로 시작했다. 이윤희 그룹장의 환영사와 내빈소개, 정상덕 중문학과 제17대 총동문회장의 축사, 서주석 강초스터디 제7대 동문회장의 격려사가 담담하게 이어졌다. 회원들은 개회사, 환영사, 축사, 격려사가 이어질 때마다 감회어린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오늘이 있기까지 스터디를 지켜온 선배들과 자신에 대한 격려로 보였다.
창립 36주년 행사라고 해서 뭔가 거창한 퍼포먼스가 있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이들은 의외의 카드를 꺼내놓았다. 올 10월 21일 서울지역대학에서 열릴 제34회 중어중문학과 총장배 전국어학경시대회 본선을 겨냥한 스터디 차원의 ‘경시대회’였다.
이날 초급은 윤인발 학우(1학년)가, 중급은 김지선 학우(2학년)가 도전했다. 초급은 교재의 특정 부분을 외워서 발표하면 된다. 중급은 자기소개가 주된 내용이다. 발표와 질의, 대답까지 10분이 넘게 소요된다. 물론 모든 대화는 중국어로 이뤄진다.
경시대회 본선 무대를 겨냥한 실전 발표
흥미로운 건, 경시대회 본선
‘선생님’으로 공부를 돕고 있는 김성태(사진 앞열 가운데)·이동욱 동문(오른쪽)이 경시대회에 참가할 후보자들의 발표를 듣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대에서 학과 교수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예리한 질문을 던지며 참가자의 기량을 테스트하는 것처럼, 강초스터디에서 ‘선생님’(스터디 회원들은 이들을 중국어로 라오스[老師]라고 부른다)으로 회원들의 공부를 돕고 있는 김성태, 이동욱 동문이 심사위원으로 자리에 앉아, 참가자에게 중국어로 거침없이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었다.
1992년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던 김성태 동문은 까마득한 후배들의 발표를 조목조목 지적해가면서 ‘본선’ 무대를 예상한 질문을 던져 마지막까지 발표자의 공부를 도왔다. 2006년 경시대회 대상 수상자인 이동욱 동문도 후배들에게 질문을 아끼지 않았다.
초급에 도전한 윤인발 학우는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쳐보자는 심정으로 참여했다. 나름대로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접 대화를 하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두 분의 심사위원께서 좋은 지적을 해주신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됐다. 어떻게 준비하면 될지를 배운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성태 동문은 “경험을 쌓자는 의미에서 경시대회 본선과 같은 무대를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학우님들이 잘해주셨다. 본선에서는 4개 정도 질문을 던지지만, 오늘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질문도 더 많이 던졌다. 두 분 다 97~8점 정도 실력을 보여주셨다. 1992년부터 스터디에서 이런 예선을 마련해 실력을 다졌다”라고 말하면서 강초스터디의 전통을 강조했다.
스터디 내에서 봐주는 것 없이 날것 그대로 평가하는, 실전과 같은 테스트 덕분에 강초스터디는 경시대회에서 대상 수상자를 넷이나 배출했다. 김성태(1992), 이동욱(2006), 민장환(2019), 박진희(2020) 등이다.
창립36주년을 기념해 중국전통악기 얼후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조미영, 김성란, 홍미경 동문(사진 왼쪽부터). 강남서초스터디는 졸업후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동문 선배들이 많다.
창립 당시에는 잔디밭에서 공부하기도
경시대회 발표와 시상을 마치고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김성란·조미영·홍미경 동문이 얼후 공연을 선보였다. 특히 조미영 동문은 강초스터디 출신은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로 스터디와 연결돼 9년째 금요회화반을 지도하고 있다. ‘재학생’ 선생님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16학번 박진희 학우는 소동파의 시를 음율에 담은 등려군의 노래를 띠즈(笛子. 우리나라의 단소처럼 생긴 악기)로 소화해 박수를 받았다.
강초스터디는 1987년 창립했다. 박왕수 외 87학번이 주도했지만, 특정 장소를 확보한 것은 아니었다. 장소를 옮겨가면서 공부했다. 스터디가 정착하게 된 것은 1990년이다. 이때 서울 방배동에 있는 남일주산학원에 터를 잡았다. 4년 뒤인 1994년 8월 27일 드디어 방배동 방림시장 근처에 독립스터디룸을 개관했다. 이후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1996년에는 주간반 스터디를 개설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방배3동 광찬빌딩으로 옮겨 이곳에서 2년여 스터디를 꾸렸다. 다시 2001년 방배동 방림시장 북쪽에 스터디룸을 마련해 14년 가까이 회원들의 공부와 대학 생활을 도왔다. 그러다가 2013년 8월에 서초역 금구빌딩으로 이전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강초스터디의 산증인인 김성태 동문은 “1991년 입학해 강초스터디의 존재를 알게 됐다. 창립 당시에는 잔디밭이나 커피숍, 한강변 등을 전전하면서 공부했다고 들었다. 저희 스터디의 매력은, 선배님들이 자유롭게 찾아와 선한 마음으로 좋은 강의를 해왔던 데 있다고 본다. 재능기부, 자원봉사로 36년을 이어왔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1991년 2학기부터 1학년 중국어기초를 가르쳐왔는데, 좀더 젊은 회원들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중어중문학과 제37대 전국총학생회장인 이윤희 그룹장은 “선배들의 아낌없는 지도와 지원, 학우들의 열정, 사심 없는 운영이라는 삼박자가 중문학과 강초스터디를 36년간 이어지게 한 힘”이라고 강조했다. 학학상장(學學相長)을 일궈가는 강초스터디의 행보는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멀리 가는 이들의 여정이야말로 평생교육 시대의 초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