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에게
어제는 대전 예술의 전당에
하루 종일 진행되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행사가 있어 들렀다가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대전 예술의 전당 오른편 족에 위치하고 있는
이응노미술관에 전시회가 있어 잠간 들렀습니다.
이응노미술관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넘어
예술에서 삶의 가치를 탐구했던
고암 이응노 선생의 예술세계를 조명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07년 5월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이응노 화백의 이름은
어디선가 들었던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고 있지는 았았습니다.
어제는
그가 1959년 독일에 1년간 머물며
순회전을 하였을 때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회가 열렸는데
전시실을 돌면서
그의 천재성이 번뜩이는 그림들을 보고
문화예술인이라 자처하면서
그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응노 선생은
1904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여
1989년 프랑스에서 타계한
한국 화단의 거목입니다.
이응노 선생은
1923년 서울에서
당시 유명한 서예가이자 서화가였던
김규진(金圭鎭) 선생으로부터
서예·사군자·묵화 등을 사사하여
이듬해인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청죽〉으로 입선하여
한국 화단에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일본 도쿄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남화의 대가였던
마쓰바야시 게이게쓰(松林桂月)에게 사사함으로서
서양화 기법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서
한국화의 전통적인 기법에
서양화 기법을 접목하여
작품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뒤 1958년 파리로 건너가
주로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는데
한국화의 전통에 기반을 두면서도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에서 벗어나
추상화의 경지까지 예술세계를 확장시켰습니다.
그는
먹이나 물감 이외에
천이나 한지 등의 재료들을 캔버스에 붙여 만든
콜라주나 태피스트리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작업에 도입하면서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1967년에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3년 동안 옥고를 치른 뒤
1970년 프랑스로 돌아가
끝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파리에서 타계하였습니다.
어제는
이응노미술관에서
그가 타계하기 직전에 그렸다는 <군상>이라는
작품을 보았는데
익명의 군중이 서로 어울리고
뒤엉켜 춤을 추는 듯한 풍경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생동하는 움직임을
문자와 인간 형상,
다양한 화법을 통해 표현해오던 이응노는
작고하기 10년 전부터는
오로지 사람을 그리는 일에 몰두했는데
익명의 군중이 서로 어울리고
뒤엉켜 춤을 추는 듯한 풍경을 통해
그는 사람들 사이의 평화와 어울림,
서로 하나가 되는 세상을 갈망했다고 합니다.
이응노 선생이 1904년 생이니까
현재 살아계시다면
110세가 넘은
한 세기 전의 분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현 시대에도 충분히 호흡할 수 있는
한 세기를 앞서간 작품들이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바램이 있다면
이응노 선생의 작품들이
많은 국민들에게 공유되어
우리가
세계적인 화가인 고흐나 피카소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이렇게 훌륭한 미술가를 배출한
문화국민이라는 자부심이 고양되는
계기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첫댓글 저도 홍성에 갔을때 이응노 기념관이 있어 들러보았었던 기억이 나요 낯선 이름이라 그런가보다 하였는데 참 반갑습니다
훌륭한 문화예술인, 지식인 , 사상가등 선조들의 빛나는 정신을 때때로 새겨보면서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키워보고 있답니다
네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