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외출나갔다온 집안 식구가 들고온 빵 봉지 하나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대전 성심당 튀김소보루.
이제는 전국적으로 대전의 대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게 됩니다.
튀김 소보루를 맛보면서 인터넷 검색으로 자료를 살펴봅니다.
성심당 홈페이지에는 <성심당 문화원>이 있네요.
성심당 연대기 편이 있군요.
우선 먼저 성심당(聖心堂)이란 상호에 눈길이 갑니다.
'성심(聖心)' 이란 상호에서 기독교적인 냄새가 짙게 납니다.
창립 연대가 '1956년 以來' 흔히 영어로 "Since 1956" 대신 썼군요.
그것은 보릿고개 시절,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되어서입니다.
"찐삥"가게, 먹을 것으로 시작된 시대 상황,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인 대전역앞의 찐빵집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나의 씨앗이 심겨졌네요.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 대견스럽습니다.
대전의 근현대사를 실제 사실로써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최초의 출발점인 찐빵집 주인 부부 :임길순 씨 내외 모습입니다.
"성심당"이란 상호의 의미를 설명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이셨군요.
'성심은 사랑' 빵에 담긴 종교적 신앙심이 깊이 배어 있는 상호입니다.
"해돋이부터 해넘이까지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겠다"
1950년 흥남 철수 피난길에서 다짐했던 그 뜻이 지금껏 성심당 빵속에 녹아 있다는 내용입니다.
19살 때 함주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고, 흥남 부두에서 교우 200여명과 함께 남한(대한민국)으로 넘어와서는
대전에서 노점 빵장사로부터 시작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1912 - 1997) 8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
<옛날 빵집 사진>
간판에 쓰여있는 한글(?)의 뜻을 이해할 수 없네요.
그 아래에 쓰인 영어가 더 쉽게 이해됩니다.
"찐빵"을 "steamed buns"로 표기한 것이 말입니다. ( 무슨 사연이 있는지 ? ? ? )
간판 아래 오른편에는 태극기도 보이고요.
창업주 임길순 씨의 고향집 모습 스케치 입니다.
이 그림으로 보면,
함경도 함주 고향집은 매우 부유한 집안이었것으로 추정됩니다.
초가 삼칸이 아닌 지주 계급에 속하는 인상입니다.
소도 있고, 집 뒤에는 제사에 쓰는 과일나무가 골고루 심어져 있구요.
남으로 월남한 까닭이, 지주계급에 기독교 신앙 등 공산체제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이 짐작갑니다.
과수원까지 가진 집, 과수원 경영은 상당한 농업기술이 있어야만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네요.
여기서 하필이면 왜 "대전(大田)"에서 빵집을 열었을까요?
궁금해집니다.
유난히 대전에는 이북 피난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동시장에서 만난 황해도 연백 출신의 할아버지(90세)도 그 중의 한 분이십니다.
대전의 역사에서 이북 피난민들, 평안도 쪽, 함경도 쪽 등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탄동면 (지금의 자운대) 일대, 대전역 일대, 대전시 주변 수운교 천단을 위시해서 많은 일화들이 남아있으니까요.
심지어 이북 음식인 숯골냉면집, 개성 만둣집 등이 이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침 광복 80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광복빵"이라는 이름의 행사도 기획되어 있다는 소식이군요.
(*4개들이 한 상자에 5천원 예상이라는데)
( 2025.03. 22(토) 카페지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