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의 마음 공부
연결됨, 존재와 치유의 길
글 스텔라 박
인간은 본래 연결된 존재다
인간은 진화의 역사 속에서 사회적 동물로 형성되어 왔다. 날카로운 이빨도, 빠른 다리도, 강한 체력도 없이 자연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연결됨, 즉 인간과 인간 사이의 협력과 네트워킹 덕분이었다. 무리를 이루고 서로를 도왔기에 인간은 더 큰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고, 공동 양육과 정보 교환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다음 세대로 전승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인간은 생물학적 차원에서부터 관계 중심으로 진화해왔으며, 관계와 연결은 단지 선택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다.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를 원하는 인간의 속성은 타인으로부터의 사랑과 인정, 소속감을 원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반대로 거절당하거나 사랑받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연결되지 못할 때 우리는 심리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는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가슴과 마음이 닫힌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들의 에너지는 몸과 마음에서 회전되지 않고 한 곳에 머문다. 에너지가 움직이지 않고 돌지 않을 때,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병들기 시작한다.
아픈 마음을 돌보는 심리치료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개입은 단절된 연결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내담자와의 신뢰 관계, 즉 치료적 관계 자체가 회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연결의 부재와 심리적 고통
현대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고립을 호소한다. 소셜미디어, 메신저, 화상통화 등이 실시간 연결을 가능하게 하지만, 실질적인 정서적 연결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단절감은 우울증, 불안, 중독 등 다양한 심리적 병리로 이어지며, 우리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고립된 삶은 단순히 외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경계 전체를 위협 상태로 몰아넣는다. 연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인간은 신체적으로도 긴장을 유지하게 되며, 이는 만성 스트레스, 불면, 소화 문제, 만성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리적 외상 이후, 생존자들은 두려움으로 사람들과 연결하기를 피하고, 이러한 연결의 단절은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신뢰 가능한 관계망을 다시 구성하는 일이다. 안전한 연결이 회복되기 전까지, 몸은 여전히 과거의 위협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의 본질은 단절이다. 기억과 감각의 단절, 나와 세계의 단절, 타인에 대한 신뢰의 단절이다. 따라서 트라우마의 치유는 연결의 복원 없이 불가능하다. 최근의 트라우마 이론들은 감각적 몸의 자각, 치료자와의 신뢰, 그리고 안전한 공동체 내에서의 정서적 조율을 핵심 요소로 삼는다. 이는 곧 '연결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진리로 수렴된다.
문화적 차원에서의 연결과 단절
한국 문화는 전통적으로 ‘정(情)’이라는 독특한 정서적 연결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유교적 위계 구조 속에서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현은 억제되었고, ‘체면’과 ‘의무’는 진정한 정서적 교류를 방해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가족 내에서도 진정한 정서적 연결보다는 역할 수행이 우선시되었으며, 이는 세대를 거치며 ‘가까우나 먼’ 관계의 패턴을 낳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효녀 아키타입’이나 ‘착한 자녀 콤플렉스’는 연결을 가장한 자기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나의 욕구와 감정은 억압된 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퍼포먼스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연결은 진정한 연결이 아니라, 고립된 자아가 만들어내는 방어적 융합이다. 따라서 진정한 연결은, 나 자신의 감정과 경계를 회복한 뒤에야 가능해진다.
이러한 심리적 방어는 ‘분리’와 ‘회피’, 그리고 때로는 ‘투사’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을 밀어내거나, 마음을 닫아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혹은 내 안의 고통을 타인에게 투사함으로써, 연결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어는 일시적인 자아 보호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결국 깊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낳는다.
다시 연결되기
가슴을 연다는 것은 단순히 정서적으로 무장해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금 연결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의 숨을 인식하고,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며, 지구 어머니의 품과 닿는 일이다. 이 모든 연결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상기시킨다. 가족과 친구, 커뮤니티와의 연결, 더 나아가 초월적 존재와의 연결은 우리를 삶의 근원적인 기쁨으로 이끈다.
영적인 실천 안에서도 이 연결은 핵심 개념이다. 예컨대 요가의 어원인 ‘yuj’는 ‘잇는다’, ‘결합한다’는 뜻이며, 이는 곧 자아와 우주의 연결, 개인과 전체의 연결을 의미한다. 명상의 목표 역시 자아와 감각, 자아와 우주, 자아와 고요한 본성 간의 깊은 연결을 회복하는 데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광대함’ 역시 모든 존재와의 연결감에서 피어나는 실천의 태도다.
동양의 전통 철학, 특히 도가(道家)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한다. 장자는 “큰 나무는 바람을 맞고, 작은 풀은 그늘에서 자란다”며, 각자의 존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 생명의 네트워크를 논했다. 이러한 세계관은 연결을 선택이 아니라, 존재 방식 그 자체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와 리추얼: 회복의 장
치유 공동체에서는 리추얼(의례)을 통해 연결을 실천한다. 함께 모여 불을 피우고, 노래하고, 고통을 나누고, 애도하는 과정은 각 개인이 단절된 자아에서 벗어나 집단적 생명망 속에 있다는 감각을 일깨운다. 특히 애도의 리추얼은 슬픔을 고립이 아닌 연결의 통로로 전환시킨다.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명상하고, 느낌들을 나누며,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러한 리추얼은 반드시 종교적이거나 제도화된 방식일 필요는 없다. 매일 아침 촛불을 켜며 감사 기도를 드리거나, 달이 차고 기우는 리듬에 맞춰 내 감정을 정리하는 것도 하나의 리추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의도(intention)와 반복성이다. 반복되는 작은 연결은 궁극적으로 존재의 깊은 회복을 부른다.
이처럼 의례는 무언가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잊고 지낸 자신의 본질, 잊고 있었던 상호 의존성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은 실존적 고립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갈 용기를 회복하게 한다.
실천의 길로서의 연결
이러한 연결의 감각은 명상, 요가, 리추얼 등 다양한 수행을 통해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경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비명상(metta bhavana)을 수행할 때 우리는 나 자신에서 출발하여 점차 타인과 우주 전체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확장해 나간다. 이는 곧 마음의 경계를 넘는 연결의 실천이 된다.
자연 속에서 맨발로 걷는 ‘어씽(earthing)’과 같은 활동도 우리 몸을 다시금 지구와 연결시켜주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또한 의식적인 식사(mindful eating)와 같은 일상의 습관도 연결됨을 체화하는 방식이 된다.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여정을 거쳐 내 앞에 놓였는지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여기의 삶과 훨씬 깊이 연결된다. 이는 단순한 주의집중을 넘어,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친밀감을 회복시키는 수행이 된다.
현대 심리치료에서도 이 연결의 층위를 더욱 섬세하게 고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자기 자신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 몸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호성을 경험하는가 등의 질문은 치료적 개입의 핵심이 된다. 이처럼 연결은 단순한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수준에서의 회복을 가능케 하는 열쇠다.
연결됨은 행복한 삶의 필수조건
정신적, 정서적, 영적 건강은 단절이 아닌 연결에서 피어난다. 우리가 다시금 자기 자신과,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연결될 때,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자아(Self)가 이 땅에서 다해야 할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조화롭고 깨어 있는 삶의 길이다. 정견(正見)은 바로 이러한 연결된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우주 속 하나의 노드(node, 전체 네트워크 내의 하나의 ‘점’, 연결의 중심, 또는 매개체)로서,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인식을 회복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존재는 고립된 섬이 아니다. 연결됨의 느낌을 회복하는 순간, 우리는 생명의 근원적인 리듬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평화와 기쁨이 피어난다. 연결은 선택이 아니라, 삶을 삶답게 해주는 본질적 조건이다. 우리가 다시금 서로에게 손을 내밀 때, 그리고 우주로부터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존재가 된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 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 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 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