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맛 에르킨베코프가 연출 및 주연한 영화 카린다쉬 여동생(Карындаш) 포스터 사진 출처 : 사맛
이 글의 작성자는 30대 초반에 모스크바에 갔다. 한창 돈 벌어 내 집 장만의 토대를 마련하고 이미 연애로 결혼할 나이는 지나서 선이나 봐야 여성과의 교제가 가능한 시기였다. 기자가 전문직종이다보니 소개할 때 타이틀은 먹어주었으나 박봉에 소유한 차량도 없는, 오트 자르플라티 도 자르블라티(한 달 봉급 생활자)였다. 처음에는 인상으로 호감을 샀지만 선물 하나 안 사주는 인색한으로 낙인 찍혀 뺀찌 맞기 일수였다. 차가 없어 연애로 이어지지 않나 싶어 당시 꼭 사고 싶었던 연봉에 가까운 금액의 차량을 구매하고자 중고차량매매단지에 갔었다. 그런데 선수금 65만원이 부족해 포기했다. 딜러들은 다른 차량을 추천했으나, 난 그 자동차를 고집했다. 그때 할부로 그 SUV를 구매했다면 난 여기 없을 것이다. 3년 할부 조건이었으니, 할부금을 완납했을 때 이미 30대 중반이 라는 계산이 나왔다.
러시아으로 유학을 떠날 당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니가 미쳤구나. 게다가 미국도 아니고, 소련을 간다고?”
보아하니, 난 한국에서 평생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빚쟁이로 살아갈 봐에야 1년 뒤에나 되자’고 떠난 게 10년이 넘었다.
그렇게 10년을 모스크바에서 보내고, 지금은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로 불리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 살고 있다. 그것도 중고자동차 판매 회사를 다니면서. 그리고 그때 사고 싶었던 그 회사의 K.C.를 여기서 구매했다. 그것도 그때와 엇비슷한 가격에 말이다.
지금은 신주단지처럼 주차장에 모시고 있다. 하루를 멀다하고 길거리에서 보는 접촉 사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무단 횡단자들, 엉망인 교통신호체계로 인한 좌회전 차량과 직진 차량의 얽힘. 길 중간에 퍼져있는 낡은 차량들과 크랙선 소리에다 유목민 근성으로 마치 말을 몰듯 거침없이 차량을 모는 운전자들. 카레이서가 꿈이 아니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통 사망자를 여기서 눈으로 직접 본 뒤 나의 첫 자동차는 잠들어버렸다.
이렇게 키르기스스탄은 나에게 있어 운명적인 애마와의 만남, 그리고 애독했던 소비에트(소련시대) 작가 칭기스 아이트마토프의 고국. 이 두 가지로 함축된다.
아파트 벽면에 그린 칭기스 아이트마토프 초상화/ 사진 출처 : 스푸트니크 키르기스스탄
모스크바 유학 초기 시절, 러시아어 학습을 위해 봤던 film adaptation이 그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들이었다. 미장센과 풍경이 정겹고 아름다워 그의 작품을 각색한 단편 영화들을 보며 대사를 외웠다. 유려한 문체와 서정성이 백미인 단편 '붉은 스카프 속 작은 포퓰러(Тополёк мой в красной косынке)' 속 주인공 기자가 자주 머물던 ‘톈산’이 천산산맥이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그리고 심심해 찾아간 극장에서 나를 사로잡은 영화 포스터 '까린다쉬'(Карындаш, 사맛 에르킨베코프 연출, 2024년 개봉)는 모스크바에서 본 아이트마토프의 '필름 아답테이션'을 떠올리게 했다.
포퓰러-미루나무와 영화 카린다쉬
러시아어로는 '여동생'(Сестрёнка)으로 번역된 영화 '카린다쉬'는 키르기스스탄의 전통적인 가족공동체와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로, 코믹 드라마다. 시골 사람들의 삶을 진솔하게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서로가 옥신각신,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포퓰러 나무를, 그 이면은 유순히 가지를 흔들며 서걱대는 미루나무의 나붓거림과 바람 소리를 닮았다. 영화는 가족이란 가로수처럼 서로가 잇대 있으면서 언제나 곁에 있어 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의 다른 이름이라고 전한다.
카린다쉬의 러시아어판 '시스트룐카'(여동생) 예고편/출처:키노아피샤
영화를 보고는 궁금해졌다. 다산(多産)의 미덕과 공동체를 중요시 여기는 전통이 아직 살아 있는 키르기스스탄. 독에 쌀이 떨어지면 이웃집에 가서 쌀을 빌리고, 동생을 업고 가는 아이들. 밤늦도록 불을 켜놓은 구멍가게와 머리에 히잡을 두른 할머니가, 때로는 밥상이 되고, 때로는 책상이 되는 교자상에 앉은 대여섯 되는 손주들의 숙제를 봐주는, 우리에게는 이미 잊혀진 이곳의 아늑한 풍경이 왜 본인에게는 낯설지 않고 새롭게 다가오는지가. 영화 감독이자 주연 배우로 출연한 사맛 에르킨베코프를 6일 만났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촌놈’이어야 한다는 것이 칭기스 아이트마토프의 인생 지론이었다. 난 그 말이 이상하게 좋다. 사맛, 질문을 던질까 한다.
질문 : "우리의 삶은 비슷한가? 그렇다면 한국과 키르기스스탄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두 나라의 정서에는 ‘함께’라는 가치를 품은 오래된 이야기들이 있다. 한국의 고즈넉한 농촌과 키르기스스탄의 드넓은 초원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버팀목 삼아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답변 : "두 국가의 영화 간에 차이가 있다면 한국 영화는 종종 갈등의 극단적인 면을 강렬한 감정과 디테일한 연출로 묘사하며 관객에게 감정적 몰입을 유도한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처럼 사회적 불평등과 계층 간 갈등을 묘사하는 데 능숙하며, 도시화와 그로 인한 소외감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키르기스스탄 영화는 대개 소박하고 서정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다. 농촌과 초원을 배경으로 한 풍경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인물 간의 갈등보다는 자연 속의 삶의 조화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