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 '스푸트니크V'를 국내에서 위탁생산하는 한국코러스와 휴온스글로벌 컨소시엄. 한국코러스 컨소시엄은 이미 개발자인 러시아 '가말레야 센터'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시생산을 거쳐 러시아 보건부의 품질 검증만 남겨놓고 있다. 품질 검증이 끝나면 상업적인 대량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뒤늦게 '스푸트니크V' 위탁생산을 추진한 휴온스글로벌 측은 이번 달 중 방한하는 러시아 기술진으로부터 백신 생산 기술을 전수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두 컨소시엄의 경쟁은 러시아측이 글로벌 유통을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1회 접종용 '스푸트니크 라이트' 백신을 놓고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스푸트니크 라이트 백신/사진출처:RDIF
'스푸트니크 라이트'는 기존의 '스푸트니크V' 백신 2회 접종분 중 1차 접종 성분만으로 개량한 간편 백신. 지난 5월 6일 러시아 보건부에 공식 등록된 뒤 같은 달 12일 앙골라를 시작으로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팔레스타인, 콩고, 몽골, 키르기스 등에서 사용 승인을 받고 승인 국가를 넓혀가는 중이다. 일찌감치 '스푸트니크V' 백신의 사용을 승인한 국가들이 주로 공략 대상이다.
시각을 국내로 돌려보면, 두 컨소시엄중 한쪽이 문서, 혹은 말(보도자료)로 생산 혹은 판매를 홍보하는 사이에 다른 쪽은 이미 '밸리데이션 생산'(생산 공정 최종 확인을 위한 시험 생산)을 끝내고 원청회사의 품질 검증단계에 들어섰다.
휴온스글로벌은 지난 7일 '스푸트니크V'에 이어 1회 접종 방식인 '스푸트니크 라이트'의 국내 허가및 판매에 관한 권리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스푸트니크 라이트의 국내 허가를 추진할 계획이며, 빠른 허가를 위해 긴급사용 승인 신청 등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했다.
휴온스글로벌 홈피 캡처
'스푸트니크V'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이 기약없이 늦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또 '스푸트니크V' 백신의 도입 검토조차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한쪽이 '스푸트니크 라이트'의 국내 허가및 판매에 관한 권리를 확보했다고 발표하는 사이에 다른 한쪽은 생산 준비를 끝내고 조만간 세계시장으로 내보낼 날짜를 꼽아보고 있다.
한국코러스는 최근 '스푸트니크 라이트'의 밸리데이션 뱃지(초기 생산) 물량을 러시아로 보냈다고 13일 밝혔다. 해외유통을 담당하는 러시아 국부펀드 (RDIF)가 전달받은 물량에 대한 러시아 보건부의 품질 검증을 거쳐 20일 이내에 '오케이(OK)' 사인을 보내줄 것으로 이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한국코러스는 지난 4월 '스푸트니크 V' 1,2차 접종분에 대해서도 러시아 현지의 검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코러스의 스푸트니크 라이트 초기 물량(뱃지) 출하 모습/사진출처:한국코러스
달라진 것은 러시아측의 백신 위탁생산 전략. 러시아측은 해외 수출용으로 '스푸트니크 라이트'로 바꿔나가고 있다. 백신이 부족한 저개발국가에서는 1회 접종만으로 '집단면역'이 가능한 백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델타 변이종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부스터샷(재접종)용으로도 유용하다.
RDIF가 세계 최대의 백신생산 회사인 인도의 '세룸인스티튜트(SII)'와 연 3억회 분의 '스푸트니크V' 백신 생산에 합의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RDIF측은 "이미 세룸인스티튜트에 기술이전이 이뤄지고 있으며, 9월에 첫 생산 물량을 내놓겠다”고 13일 발표했다. RDIF로서는 스푸트니크V와 스푸트니크 라이트 위탁생산 (물량)에 대한 전략적 재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인도 세룸인스티튜트와 백신 생산 합의를 발표한 RDIF의 보도자료. 위는 구글 번역본/캡처
황재간 한국코러스 회장은 지난 9일 '팍스넷' 뉴스와의 회견에서 "지난 4월 스푸트니크V 백신에 대한 러시아의 품질검증을 받으려고 했으나, 전략적인 이유로 스푸트니크 라이트와 함께 두 백신을 동시에 진행하게 됐다"며 "늦어도 8월 중에는 스푸트니크 라이트 백신에 대한 상업 출고(완제품)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지난 달 초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21)에서 스푸트니크V 위탁생산 업체의 대표로 푸틴 대통령과의 화상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러시아측의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코러스는 스푸트니크V, 스푸트니크 라이트 생산 물량에 대한 러시아측의 품질 검수가 끝나면 내달 중에 '스푸트니크' 백신들에 대한 완제품 상업 출고가 가능할 전망이다. '메이트 인 코리아' 스푸트니크 백신들이 해외 시장으로 풀린다는 뜻이다.
한국코러스가 생산한 스푸트니크V 초기 물량이 항공기에 실리고 있다/사진출처:한국코러스
반면, 휴온스글로벌 측은 계획대로 이달 중 기술이전을 받더라도 완제품 생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백신개발자 측의 까다로운 기술이전 과정과 밸리데이션 검증, 최종 품질 검수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면 언제쯤 백신 생산이 가능할까? 한국코러스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답이 나온다.
한국코러스는 '스푸트니크V'와 '스푸트니크 라이트' 중 어떤 백신 생산에 집중하는 게 나을까? 황 회장은 생산의 수율성을 들어 '스푸트니크 라이트'에 기우는 듯하다.
스푸트니크 라이트는 2회 접종 스푸트니크V 백신 중 1회 접종 성분과 유사하며, 예방률은 79.4% 수준으로 전해졌다. 예방 효과는 스푸트니크V 백신(91.6%)보다 낮지만, 생산 수율성이 높다.
인간의 아데노바이러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푸트니크V 백신의 1차 접종분에는 아데노바이러스 26형(Ad26)이, 2차 접종분에는 아데노바이러스 5형(Ad5)이 벡터(전달체)로 사용된다. Ad 26형의 생산 수율성이 Ad 5형에 비해 4배 이상 높다는 게 바로 전략적 선택의 핵심이다. 존슨앤존슨측이 1회 접종용으로 개발한 얀센 백신 역시 Ad26을 벡터로 사용하고 있다.
생산 수율성이 높다는 것은 수익성과도 직결된다. 스푸트니크V 백신은 1000리터급 바이오 리액터(세포배양기) 시설에서 100만 도즈(1회 접종분)씩 생산되지만, 수율성이 높은 스푸트니크 라이트 백신은 같은 시설에서 400만 도즈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 황 회장은 "판매가는 스푸트니크V 백신이 20달러 수준으로, 스푸트니크 라이트(10달러)보다 2배 높으나 스푸트니크 라이트 백신의 생산량이 같은 시설에서 4배 이상 많기 때문에, 수익률은 더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코러스 춘천공장에서 생산되는 러시아 스푸트니크 백신/KBS 화면 캡처
한국코러스컨소시엄의 핵심 업체는 이수앱지스, 바이넥스, 제테마 등으로 알려졌다. 황 회장은 지난 6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휴온스글로벌 컨소시엄에 참여한 휴메딕스를 기존 컨소시엄에서 빼고, 안동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는 (공익적 목적의 설립 취지에 따라) 생산이 거의 불가능해진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툴리눔톡신 개발사인 제테마를 (6월) 23일자로 컨소시엄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제테마는 스푸트니크V 및 스푸트니크 라이트 생산을 위해 별도의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코러스와 이수앱지스에 대한 기술이전이 끝낸 러시아 측은 제테마의 생산 라인 구축이 끝나는 즉시, 기술이전을 시작할 것으로 한국코러스 측은 예상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휴온스 컨소시엄의 스푸트니크V, 스푸트니크 라이트 생산 계획은 '아직'이다. RDIF측은 휴온스글로벌과의 위탁생산 합의마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