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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대의 현지활동-
월남의 사태가 이러한 때 사이공에 도착한 우리선발대는 그 다음날인 1965년 1월 11일 이른 아침부터 예정대로 주월 미군사원조사령부와 월남군총사령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날 월남군 최고사령부의 정보 상황실로 안내되어 브리핑을 청취하였습니다.베트콩 등 적의 동향과 월남 정세에 대하여 알고 싶었으나 설명은 일반적인 것에 불과 하였습니다. 좀더 구체적인 상황을 알고 싶었으나 당시에 분위기로서는 그런 것을 설명할 수 있는형편이 아닌 것 같아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하였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미군장교가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하면서 사실은 오늘 월남측에서 정보와 작전상황 그리고 최근의 월남정세에 대해서 브리핑을 하도록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안내 장교에게 월남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주월 미군사지원사령부의 브리핑을 듣고 싶다는 것을 참모장에게 보고토록 하였습니다. 그날 공식일정을 마치고 주월한국대사관으로 직행하여 “신상철”대사를 예방하였습니다.무관“이대영”대령과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이택근”공사와 함께 최근의 월남 정세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면
①12월 20일 사태이후 월남의 사태가 불안하여 사이공에 거주하는 미국인 특히 군인가족들의 월남 철수 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② 베트콩은 증파되는 공병부대는 미국침략군의 앞잡이이고 위장된“전투부대”라고 악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③ 그동안 월남교민들은 월남국민들과 우호적이었으며 편안하게 살고 있었으나 증파부대에 대한 베트콩의 악선전으로 문패도 내걸지 못하고 사는 형펀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인 12일에는 증파부대와 직접관련이 있는 월남군공병감실과 수송감실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들의 브리핑을 통하여 월남군은 전년도인 1964년의 평정계획실적을 설명하며 부진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금년도에도 평정계획을 위한 많은 군수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능력의 부족으로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특히 사이공을 중심으로 실시하고 있는“흡탁”계획은 가장 긴요하고 중요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착수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공병감 “캉”장군은 증파되는 한국군 공병부대가 이지역에 대한 지원을 해주기를 희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미군측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역이었습니다. 수송감실의 브리핑에서는 월남은 삼면이 바다와 강으로 둘러 쌓여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안전수송을 위하여 군수물자는 주로 해상 및 수로수송에 의존하고 있으며 공로와 육로 즉 도로는 거의 보충 수송 수단으로 사용할뿐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기지로부터 야전지역에 이르는 보급수송은 7척의 LST를 이용하며 사이공, 다낭, 퀴논, 나트랑등 5개항만을 이용하고 있으며 육로는 주로 1번해안도로를 이용하며 내륙수송은 민간차량이 전담하고 베트콩의 점검을 받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브리핑이었습니다. 월남의정세를 이해하는데 핵심이되는 사항이었으며 증파부대의 임무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웨스트모얼랜드 사령관 예방-
나는 다음날 아침 사령관“웨스트모얼랜드”장군을 그의 집무실로 예방하였습니다. 나와는구면 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반가히 맞이하면서 태권도 교관단과 이동외과병원의 업적과 활동사항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군의 증파를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김종오”합동참모회의 의장의 해외수송수단이용 문제와 관련된 친서를 전달하고 증파와 관련된 몇 가지 사항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1) 앞으로 증파될 한국군부대에 대한 지휘권은 월남주둔 한국군 지휘관에게 있으나 작전 통제권은 주월 미군사지원사령관에게 위임한다는 한국정부의 방침을 전달하였습니다.
2) 나는 증파부대의 임무에 대하여 병과 고유의 성격을 따르는 비 전투임무만을수행하도록 되어야 한다. 고 파견목적을 강조하였습니다.“웨스트모얼랜드”장군은 그 점에 대해서 잘알고 있음을 다짐하면서 월남은 현재 많은 공병들의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라며 작년의 수해로 많은 피해를 입은 제1및 제2군단지역에 있는 1번도로의 복구가 가장 시급한 형편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우리대사관에서 논의된바가 있었던 베트콩의 악선전과 한국군의 증파부대에 대한 희망 등을 염두에 두면서“웨스트모얼랜드”장군에게 월남과 미국의 노력에 최대한으로 공헌할 수 있는 지역에 배치되기를 바라며 피해 복구와 재건사업 등 비 전투적 대민사업을 통하여 평정계획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거듭강조하였습니다.
“웨스트모얼랜드”장군은 한국군의 안전에 관하여 자기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신중하게 고려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주월미군사원조사령부의 브리핑 청취-
“웨스티”와 요담을 한 다음 미군측에 요청한 바 있었던 월남의 정세에 대한 브리핑을 청취하였습니다. 브리핑을 하기에 앞서, 미극측에서 이 브리핑은 미국의 육군참모총장급 이상의 최고군사정책수립자들에게만 보고되는“월남정세분석과 미국의 전략”이며 이번에 이훈섭장군을 위해 특별히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브리핑에는 제3국(주월미군사지원사령부) 담당기획처장인 “애담스”소장과 참모장“스틸웰”장군이 직접 참석하였으며 나는 귀중한 브리핑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극비사항이었으며 그때 브리핑 내용 중 몇가지 중요한 사항만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계속적인 베트콩 세력의 증강과 월맹으로부터 공산군 정규군이 투입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상황으로 인하여 미국은 궁지에 몰려있습니다.
2)월남군의 전투병력만 가지고는 도저히 승산이 없으며 미군 전투부대 투입이 불가피 합니다. 현재 미군은 해․공군 그리고 헬리콥터부대에 의한 전투부대 지원 외에 고문관을 배치하고 있을 뿐입니다.
3)한국군 증파부대와 관련된 상항으로는 1963년 수해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은 월남군 제1및 제2군단지역 해안선을 잇는 1번 도로의 복구가 시급하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계획은 한국군 공병부대의 작전지역은 월맹과 대치하고 있는 월남군 제1군단지역인“다낭”에 주둔하며 1번국도의 복구공사를 맡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해군 LST는 해상수송지원을 담당하게되며 긴급한 경우 한국군의 해상철수작전에 대비한다는 것으로 되어있었습니다. 나는 이 브리핑을 통하여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월남의 심각한 상황과 미국의 대 월남정책의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중요한 상황은 본국에 보고하여 나의 임무에 대하여 다시 훈령을 받아야할 중요한 상태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중대한 상황에 직면한 나는 이번 증파부대는 물론 앞으로 예상되는 월남전의 양상을 예상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임무의 막중함을 새삼스럽게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러한 귀중한 브리핑을 나에게 제공도록 하여준“스틸웰”장군에게 새삼 감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 귀중한 브리핑 내용은 나의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을 뿐만아니라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후 보고함으로서 당시의 긴박한 국내외의 정세하에서 대미 및 대 월남정책을 조율함에 있어서 크게 기여할 수 있게되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이 브리핑을 들은 다음 예상되었던 한ㆍ월ㆍ미 합동회의를 연기시키고 미ㆍ월 양측에서 거론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먼저 살피보기 위하여 일선작전지역을 연3일에 걸쳐 정찰에 나섰습니다.
먼저 우리 선발대는 세계적인 미항으로 꼽히는“캄란”만을 비롯하여 나트랑, 닌오하, 투이호아로 이어지는 해안선을 항공기로 공중에서 정찰하고 제2군단 후방지휘소가 있는“퀴논”에 도착하였습니다. 제2군단관할지역에는 두개의 중요한 항만이 있는데“캄란”만과“퀴논”항은 작전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퀴논”항은 중부고원지대에 있는“플레이크”와 이어지는 19번도로의 시발점이고 월남군 제21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제2군단 후방지휘소에서 이지역의 상황보고를 듣고 헬리콥터에 탑승하여 “빈딩성”의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1번도로를 정찰하면서 수해로 입은 피해상황을 보았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큰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제2군단 지역의 정찰을 마치고 제1군단지역 안에 있는 1번도로를 계속 따라가 제1군단사령부가 주둔하는“다낭”에 도착하였습니다. 제1군단사령부에서 브리핑을 받은 후 헬리콥터로“다낭”항을 저공비행하며 정찰하고 제1군단관할지역에 있는 1번도로를 공중정찰 하였습니다. 제1군단관할지역은 중부고원지대인 제2군단 지역보다 지형조건이 좋은 편이었으나 역시 지난번 수해로 도로가 유실되고 교량이 파괴된 곳이 많았습니다.
제1군단과 제2군단의 관할지역으로 되어있는 국도1번 도로는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국토를 종단하고 있는 월남의 동맥구실을 하는 중요한 도로입니다. 이 동맥이 지난 태풍 때 홍수로 인하여 도처에서 유실되고 다리가 무너져 작전에 큰 지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정찰을 통하여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미 측에서 한국군공병부대를 이 지역에 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술적인 측면에서 검토해 볼 때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도로가 1등 도로이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산악지대를 통과하고 높은 지대로부터 감제되는 곳이 많아서 공사하는 부대의 작전이 완전히 적에게 노출될 취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군과의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게될 것이므로 공사를 하는 부대를 위한 충분한 경계대책이 긴요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양일간에 걸쳐서 미군측이 계획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정찰을 마치고 제3일째는 월남군 측의 안내를 받아 제3군단 사령부를 방문하고 관내사항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제3군단 관할지역은 수도“사이공”과 지난가을 베트콩의 기습공격을 받은“비엔호아”공군기지와“빈지아”그리고 우리 나라 최초의 지원군으로 파견된 제1이동외과병원이 주둔하고 있는“붕타우”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제3군단에서는 월남과 미국 두나라가 공동으로 작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심리적 제요소를 포함하여 총력전을 위한 종합계획으로서“흡탁”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이 계획은 제3군단 지역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특수 계획으로써 월남정부의 해당 부서의 장관, USOM, USIS, 그리고 미군사고문단이 참여하는 “흡탁”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제3군단 브리핑에서 그들은 지난해의 실적부진과 당해 년도의 계획을 설명하면서 이번에 증파되는 한국군부대가 이 사업을 지원해 주도록 요청하고있었습니다.
지난번 공병감실에서 브리핑한 내용과 같았습니다. 우선 우리선발대는 헬리콥터를 타고 제3군단 관할지역내의 작전예상지역을 공중정찰하였습니다. 제1군단 및 2군단 관할지역과 비교할 때 높은 산은 없고 평탄한 지대이며, 고무나무농장이 많이 보였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시야가 좋은 편이었으므로 부대운영과 경계 등 안전 면에서 여건이 좋은 것으로 보였으며 특히 미․월 양측이 합동하여 주력하고 있는“흡탁”계획을 지원하게 된다면 월남국민에 대한 인식도 좋아지고 지원효과도 클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날 저녁“신상철” 대사를 방문하고 일선정찰결과를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하였던 바“신”대사도 나의 의견에 찬성하였습니다.
다음날 저녁에 “웨스트모얼랜드”장군을 방문하였습니다. 나는 시찰소감을 솔직하게 말하였습니다. 작전지역을 공중정찰 한바 도로와 교량이 많이 파괴되고 유실된 곳을 많이 발견하였습니다. 피해복구 공사의 규모나 성격으로 보아 집중되지 못하고 여러곳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공사를 위한 병력과 장비 그리고 공사용기자재를 공급하기 위한 이동거리가 상당히 길어질 것이며 그에 따라 경비병력의 소요가 많아질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특히, 2군단 지역은 지형적으로 불리하여 적의공격을 받을 위험이 크며 경비 상 애로가 많을 것으로 생각되고 복구후의 유지관리에도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로 사려(思慮:여러가지 일에 대한 생각이나 근심)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군 증파부대가 제3군단지역에서 평정계획에 입각한“흡탁”계획을 지원하기 위한 피해 복구와 재건사업을 하게 된다면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서 대민지원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월남은 3면이 바다와 강으로 둘러 쌓여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안전수송을 위하여 군수물자는 주로 해상 및 수로수송에 의존하고 있으며 공로와 도로는 거의 보충 수단으로 사용할 뿐이라는 브리핑을 들은바 있습니다. 국도1번 도로가 육로로서는 중요하나 수송수단의 상대적인 우선 순위로 볼 때에는 그러한지 생각해 보게됩니다. 그리고 난 다음 월남파병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국내정세의 동향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므로 나는 그에게 우리 대통령으로 하여금 앞으로의 증파를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비 전투부대로서 증파되는 공병부대는 파병목적에 명시된 바와 같이 피해복구와 재건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여 지원효과를 크게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전투손실은 없도록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웨스트모얼랜드”장군은 설명을 듣고 난 다음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한국군 증파부대의 주둔지는 이장군의 말대로 3군단 관할지역인 사이공 주변으로 하는 것이 오를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너무나 뜻밖의 이야기여서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웨스트모얼랜드”장군의 이 말은 미군측이 일관되게 강조해 오던 1번도로의 복구공사 계획을 수정하겠다는 뜻으므로 나는 그에게 나의 의견을 참작하여 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웨스트모얼랜드”장군은 그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있습니다.
「자유세계에서 맨 처음 들어온 파견대는 한국의 공병대대였다. 공병대대와 함께 그 보호를 위한 보병 1개대대가 1965년 2월에 도착했다. 한국인들은 그들을 비둘기부대라고 불렀다. 나는 그들을“비엔호아”에 주둔시켜 군용차량이 혼잡한 사이공 시내를 통과하지 않고 소통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수도주변도로의 건설업무를 맡겼다. 그들의 배치에 있어서 나는 혹시라도 그들이 습격을 받아 큰 피해라도 입게되면 그것이 한국의 정치적 파동을 자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교적 안전한 지역을 선택했다」고 하고 있었습니다.
-제1차 삼자 합동회의-
1월 24일 최초로 한ㆍ월ㆍ미대표가 참석하는 합동회의를“스틸웰”장군 사회로 개최되었습니다. 먼저 월남군측의 공병감실에서 제안설명을 하였습니다. 한국군공병부대에 부가할 임무로서는 사이공주변“아이트”지점으로부터 14번도로에 이르는 총 연장 22㎞의 도로공사를 위임하고자 합니다. 그 중에 7㎞는 도로신설이고 나머지 15㎞는 기존도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 공사는 1년 동안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한다고 하였습니다. 월남군 측의 제안에 대해서 미측 대표인“스틸웰”장군은 사이공주변의 도로망복구와 확장문제에 대하여 아직 합의된 사항이 아니라고 하였고 군수참모 “오스만스키”장군은 월남측의 계획을 신중하게 연구 검토해본 결과 동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미군측의 반대 의견을 듣고 월남군측의 작전참모부장“탕”장군은「우리가 말하는 도로와 미군측이 말하는 도로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의하는 도로공사는 매우 긴요한 의미를 가지고있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 별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에는 동의하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정계획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현지 상황으로 사이공주변의 전체도로를 확보할 수는 없으나 몇몇 도로만은 확보하여 베트콩의 주둔을 차단시켜야할 것입니다.
이 도로는 폭파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아스팔트포장공사를 해야하며, 이 문제는 제3군단장도 적극찬동하고 있으므로 어느 안보다 우선적으로 처리되어야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탕”장군은 또한 한국군공병부대가 그 임무를 수행할 때 의의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습니다.
1) 우리 우방인 대한민국 국군이 우리를 지원하기 위하여 월남에 파견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제시하는 도로복구와 확장공사는 평정계획에 큰 도움이 될 것임으로 한국군공병부대로 하여금 이 공사를 지원하도록 추진해야합니다.
2) 한국군이 1개 공병대대와 1개 경비대대를 이지역 도로공사에 투입하고 작전을 개시한다면 지역상황으로 미루어 경계를 위해 별도로 병력을 증원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3) 1년 이내에 완공될 수 있는 공사를 한국군공병대가 담당해야 한다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울 수 있습니다. 한국국민은 자유우방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군이 1년 동안에 그와 같은 눈에 보이는 보람있는 큰 원조를 제공한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자유세계에 대하여 우호적이며 친정부의 경향이 짙습니다. 우리 자유세계에 대하여 비우호적이고 반감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하여 한국군의 지원을 요청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틸웰”장군은「그것도 좋은 계획이겠지요. 그러나 평정계획을 위하여 다른 도로도 복구되어야 합니다. 도로를 복구 건설하면 그 도로를 유지할 부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가요?」이어서 미군측의 실무자인 “웰슨”대령이「우리도 평정계획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여러곳을 정찰하였습니다. 파괴되고 보수해야 할 곳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군은 도로건설보다 학교신축, 병원신설 등에 더 많은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방면으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미군측의 의견에 대하여“탕”장군은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이 사업을 하면 1년 후 그 지역 주민들에게 한국 공병부대가 아름답고 훌륭한 도로를 건설해 주었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월남국민들에게 베트콩 침투지역의 평정을 위하여 한국군이 이룩해 놓은 업적을 뚜렸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미ㆍ월 양쪽이 내세우는 주장을 들으면서 구체적인 협조가 아직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날 “웨스트모얼랜드”장군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나에게「한국군 증파부대의 주둔지는“이”장군의 말대로 3군단 관할지역인“사이공”주변으로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한바 있었으므로 미군측의 주장이 그들이 최초로 계획하였던 월남군 제1군단 및 제2군단 지역내에 있는 국도 1번도로에 대한 피해복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제3군단 지역 안에서의 의견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였고 또한 월남군의“탕”장군의 주장 중에는 나의 최대 관심사인 한국군부대의 안전과 지원효과 면에 비중을 둔 발언이었고 나에게는 호감이 가는 제안이었으므로 내가 중간에 끼여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을 뿐만아니라 미ㆍ월간에 이직 가시지 않은 미묘한 정치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쪽에 유리하다고 해서 어느 한쪽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하여 나의 의견은 되도록 삼가 하였습니다.
그러나 회의가 너무 길어지므로 능률적으로 진행하여 밀려있는 중요현안을 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제의를 하였습니다.
“탕”장군이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는 월남을 지원하기 위하여 한국군을 증파하기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증파부대의 임무에 대해서 우리가 먼저 말할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그 문제는 월남 당국과 미군사원조사령부가 협의하여 한국군의 임무를 선정, 제시하면 파병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동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회의의 분위기로 보아 이 자리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처럼 보입니다. 충분히 토의는 된 것 같으니 각기 대표를 내어 실무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하여 문제되는 지역을 정찰하고 검토한 다음 그들의 건의를 토대로 결론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좋을듯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제의에도 불구하고 양측의“갑론을박”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나의 제차 제안과 양측의 타협으로 전문위원회에서 월남측의 제의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추가로 평정계획 지원사업을 진행시키는 방향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로부터 3일 후인 1월27일 우리는 전문위원회의 건의를 받고 3자 합동회의에서 한국군 증파부대의 일반적인 부대임무를 결정하고 2월6일 제2차 한ㆍ미ㆍ월합동회의에서 부대주둔지와 임무를 다음과 같이 확정하였습니다.
-임무와 주둔지-
한국군증파부대는 “디안”에 주둔하며 앞으로 1년 동안에 걸쳐 사이공 서북방 15마일지점인 “라이티우”로부터 중앙부“디안”을 거쳐 우편으로 사이공 200마일 지점인 “롱빈”까지 일등도로를 건설한다.
능력이 남으면 기타 27종목 공사의 병원, 학교, 촌락 등을 포함한 사업을 지원한다.
나는 이때 비로소 나에게 부하 된 사명중의 중요한 고비를 넘겼구나 하는 생각에서 마음이 좀 홀가분하여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월남의 정치 및 군사정세가 불투명한데 베트콩세력은 증강하고 테러와 악성루머는 성행함으로서 월남국민의 민심은 동요하고 우리나라안에서도 월남파병을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어지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미국의“조야”는 물론 주월미군 당사자들까지 사태의 추이에 대하여 우려하고 있는 상황을 현장에서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심각한 문제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비 전투부대로서의 부대의 안전과 부하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대의 임무와 주둔지의 선정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하게도“웨스트모얼랜드”장군이 나의 의견을 참작하고 월남측의 주장을 대폭 수용함으로서 당초에 예정했던 주둔지와 임무를 변경하고 최종 확정된 임무와 주둔지는 월남군측의“탕”장군의 말대로 지역 주민의 심성과 사업내용으로 볼 때 비교적 안전한 곳이로 한국군이 이룩해 놓은 업적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선정되었으므로 파병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그 기본적인 여건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보충질문 : 부대의 임무와 주둔지를 결정한 다음에도 베트콩의 전술에 말려들 소지를 없애기 위하여 군사실무 협정에도 어떤 규정을 설정하였다는데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답) 그것은 베트콩이 증파부대가 전투부대인데 공병으로 위장하고 월남에 파견되었다고“루머”를 퍼트리고 있었음은 교활한 베트콩의 전술로 볼 때 그들의 계략에 말려들 소지를 없애기 위하여 한․ 월간에 협정을 체결할 때 협정내용에“무장부대의 공격을 목적으로 부대활동지역에 침투하는 경우에는 이를 섬멸한다. 그러나 활동지역 밖애서는 추격작전을 할수 없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후 우리부대가 월남에 파견되어 18일째 되던날 아니나 다를까 야간에 베트콩은 기습공격을 해 왔는데 비둘기부대는 적의 기습공격을 완전히 격퇴하는 큰 성과를 올려 국군의 위세를 떨쳤습니다.
그때 주도하는 베트콩을 추격하려고 하였으나 협정상의 활동지역 밖에서는 추격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었음으로 아쉬움이 있었으나 더 이싱의 전투는 확대되지 않았으며 자칫하면 공병부대가 아닌 전투부대로서의 인상을 부각시키게 됨으로서 그들의“루머”가 사실로 오해되기 쉬웠던 것을 차단하게 되었으며 그 후 오직 피해복구와 재건사업에 전념함으로서 현지 주민은 물론 월남국민들로부터“페허의 땅에 기적을 이르킨 부대”로서의 칭송과 존경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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