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비행기를 타다
설레지도 않는다. 기분이 들뜬 것도 아니다. 출발시간을 세시간 정도 남겨두고 공항에 도착하던 때도 있었다.
인천공항의 깔끔함 속에서 산보하듯 걸어보는 것도 괜찮지만, 지금은 다리아픈 아이쇼핑(Eye Shopping)보다는 제시간에 버스타고 제시간에 티켓팅하여 좋은 자리 차지하고 편하게 가고 편하게 도착했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그나마 오늘은 아시아나 항공이다.
아직도 좌석에 재떨이가 달린 덜컹거리는 베트남항공이 아니라 무궁화호 좌석정도는 되는 아시아나 비행기라는 것이 약간 즐거울 뿐이다.
신림동에서 리무진을 타보기는 처음이다.
김포공항을 들렀다가는 노선이라 1시간30분을 넘겼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9호선 지하철에 공항철도 이용해야겠다.
인천공항은 여전히 붐볐고, 이곳에서만큼은 불황을 찾아보기 힘들다.
신종인풀루엔자 때문에 미국행 티켓을 쥔 여행객들의 마스크가 어색해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걱정보다 몇시간 후의 비행이 기대되는 표정이 가득하다.
서울역이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아기자기함은 없다.
내가 얼마나 돈이 많아서 국제여행을 가는지 자랑하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공항 여행객들을 휘감는다.
단체여행복을 입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젊음과 도전에 동감하기보다는, 그 뒤에 보이는 부모들의 애환을 아랑곳하지 않는듯한 그들의 즐거움이 못내 미워진다.
47번게이트라면 맨끝이다.
1번게이트에 들어서서 끝까지 걸어가야겠다. 중간중간에 있는 흡연실을 모두 이용하면서 5시간의 금연을 대비해야지.
그나마 국적기를 이용했으니 다행이다. 베트남항공을 이용했다면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외국기전용게이트로 이동해야한다.
베트남항공을 타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베트남신부들이 많이 이용하므로 반드시 어린아이의 울음을 비행 내내 겪어야하는 괴로움이 있다.
오랫만의 비행여행을 아기울음소리로 짜증내기는 싫었다.
부실한 기내식이나 불친절한 음료서비스도 여행기분 반감 원인 중 하나다.
오늘 비행기에는 한국사람들보다 베트남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적어도 아시아나를 타는 베트남사람들은 할인보다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베트남 부유층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
그들의 경제성장력을 보는 듯 하다.
일주일 전 제주도에서 얼마나 많은 베트남인들을 보았던가.
아주 짧은 베트남어로 인사를 건네는 나를 보고 신기한 듯 악수를 청하는 그들 앞에서 조금은 으쓱했었다.
아기를 업은 아줌마들이 없어서 오늘은 귀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을 듯...
옆에 앉은 베트남중년은 말이 없다.
나도 혼자 여행하는 스타일이라 그냥 목례만 남기고 바로 영화시청모드에 돌입한다.
한국인 여행객은 좀 나은 편이다.
교민일 경우 좀 그렇다.
자기가 베트남에서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를 뻥90%를 섞어가며 이야기 할 것이고,
베트남 사람들이 얼마나 못됐는지를 침을 튀어가며 역설할 것이고,
아무튼 자기는 무지하게 잘났는데, 남들은 무지하게 못나서 지지리궁상을 떤다는 이야기를 5시간동안 들어야한다.
옆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이 제일 좋지만, 만석이라면 말없는 베트남중년이 최고다.
연거퍼 위스키더블을 4번 시켜먹고, 마지막으로 기내식 안주로 스카치더블까지 마시고서야 잠이 들었다.
사이공 상공에서 잠시 불안한 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릴 때까지 세상모르고 잠을 잤다.
이번 비행은 근래 드물게 최고로 좋았다.
사이공 온도는 지금 27도라고 한다.
쾌적하다. 물론 한국에서는 열대야겠지만 사이공으로 치면 흐믓할 정도로 시원한 온도.
수화물을 따로 맡기지 않은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입국심사대를 거쳐 밖으로 나간다.
5시간동안 참은 담배 한 모금....연달아 2대를 피웠다.
<웨어 유 고?>
겁나게 비싼 사이공에어택시와 가짜 미터기를 단 개인택시기사의 물음에 대답도 않고, 마일린 택시에 몸을 싣는다.
<남바바 남땀, 어쩌고 저쩌고....>
에어컨 끄라하고 다시 한번 담배에 불을 붙힌다.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을 차내흡연...습도 자욱한 사이공거리의 바람을 맞으며 담배 한모금 깊게 마신다.
....내일은 붕따우나 놀러가야겠다. 배를 타고 가야지....
첫댓글 항상 쓰신글 읽으면서 맛깔스럽다는 느낌을 받읍니다.부모님들의 등허리 휘어지는걸 모르고 해외로 유학이니 연수니 여행이니 나가는 젊은이들 바라보는 심경,저도 "동감"하는 나이가 됐읍니다.우째 옆자리에 뭔가 뜻있는 말씀을 나누는 상대를 못 만나시고 "찌질이"한국인들만 만났나 봅니다^^
비행기에서 정말 괜찮은 한국사람 만나보는게 어느덧 소원이 되어버렸네요
한국서 청와대 팔듯이 베트남에서도 공산당 누구와 친분이 있다고 떠드는 사람들,그 공산당 고위 권력자 한테 가서 이 한국 사람 아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가요....???
그 고위권력자가 준 명함 뒤에 <이 사람은 나와 친하니 잘대해줘라>라는 친필이 없는 한, 그 한국인의 말은 뻥이라고 봐야한다는게 제 지론입니다. 하하하 정말 무협시대나 야인시대 영화같은 곳이죠...이곳은...
진짜로 진짜로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다소 "힘"이 필요할 때 힘이 되어준다면야...,진정한 인맥 !!NHUNG 베트남은 한국처럼 청와대 비서관 한마디에 주루루 움직이는 일사분란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