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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족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출 18: 1-12
최근에 김재박감독의 경영학이 사람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김재박감독이 서울의 대광고를 졸업하고 경북 경산에 있는 영남대학교로 가서 야구 선수를 생활을 하면서 배전의 노력을 해서 한국의 제일의 유격수가 되었습니다. 1982년엔가 한일국가대표팀 해항 야구게임을 서울 운동장에서 할 때 한국이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재박 선수가 타석에 나왔을 때 일본인 투수가 계속해서 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높은 볼에 김재박 선수가 따라가서 그 볼을 쳐서 역전 홈런을 만들어 승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난주 한국시리즈에서 현대의 김재박 감독이 이끈 현대가 승리하면서 김재박감동의 경영학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김재박감독은 아무리 유리한 상황에서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지 말고 냉정하게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설령 10점 차로 이기고 있더라도 1점을 내는 냉정한 야구를 하라는 것입니다.그는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극복하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이번 한국시리즈 9차전 9회말에서 삼성이 1점 차로 추격해 올 때 김감독은 조용준 투수에게 다가가서 본인을 발로 투수석의 고인 물을 퍼내며 격려하는 장면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김재박감독의 경영학은 ❶ 개인풀레이보다 팀워크로 승리를 이끌라. ❷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진단하라. ❸ 슬럼프가 닥치면 기본으로 돌아가라. ❹ 선수들을 신상필벌로 다스려라. ❺ 위기일수록 침착하게 대응하라. 이 내용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큰 격려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의 우물과 엘림의 종려나무 숲과 므리바의 골짜기를 거쳐서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기적으로 구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대동하고 모세에게 나아왔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자신의 천막으로 찾아온 자신의 빙장 어른 이드로에게 정중하게 동양식 인사로 예의를 갖추고 인사하면서 하나님이 애굽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기적을 소개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모세에게 복음을 들을 이드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모세가 자신의 장인인 미디인의 제사장 이드로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우리의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가족에 대한 예의를 다해야 합니다 (1-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돕기 위하여 애굽인을 쳐죽인 살인으로 인하여 애굽의 바로왕의 추격을 피하여 시내광야의 끝자락에 있는 미디안 광야로 망명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 사는 미디안 족속은 아브라함이 재처 그두라에게서 낳은 넷째 아들 미디안의 후손들입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외롭게 망명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난 분이 바로 십보라와 그의 아버지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입니다. 이드로는 이름이 르우엘, 호밥, 이드다로 알려져 있는 훌륭한 인격을 가진 분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이드로의 충고를 듣고 70장로를 세워 10부장, 50부장, 100부장, 1,000부장을 세워서 함께 다스린 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우물가에서 어려움에 쳐한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지켜 준 일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외로운 망명 생활 중에 십보라를 아내로 얻고 십보라에게서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모세는 십보라에게서 게르솜 즉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라는 뜻을 가진 큰아들과 엘리에셀 즉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라는 작은 아들을 얻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드로의 허락을 받고 애굽을 향하여 세 가족을 데리고 가다가 작은 아들 엘리에셀이 할례를 받지 않은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을 뻔 하였습니다. 다행히 십보라가 작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고서 모세는 죽은 고비를 넘겼고 자신의 가족을 자신의 장인인 이드로에게 다시 맡겨 놓고 혼자서 애굽을 향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은혜로 타국에서 십보라와 결혼을 할 수 있었고 거기서 두 아들을 얻었고 40년간의 망명생활을 이드로의 배려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고 자신이 애굽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떠날 때도 가족들을 안전하게 맡겨놓고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가장 어렵고 힘들 때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 많은 은혜를 입은 것이 사실입니다.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어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고 척박한 광야 길로 그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지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모세를 만나기 위해서 시내산의 모세의 천막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도 훌륭한 인격과 식견을 가지고 계신 분이지만 모세도 예의를 갖춘 사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애굽을 향하여 떠나 갈 때도 그냥 살며시 야곱처럼 가지 않고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 찾아가서 허락을 받고 비로소 애굽을 향하여 나아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다시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왔을 때도 모세는 정중하게 동양식으로 빙장 어른에게 엎드려 절하고 입마추고 환영하며 자신의 천막으로 안내하여 들이는 것(7절)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고 지도자이고 하나님의 선지자이고 한 때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빙장 어른 이드로 앞에서 사위로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서 최선을 다하여 엎으려 절하고 입마추고 정중하게 예의를 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용) 유교문화권에 속한 우리들에게 예의는 아주 중요합니다. 비록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더라도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속한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는 예의를 중시하는 유교적인 전통이 아직도 그대로 배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고 교회와 저희 가족만 안다는 차가운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부모형제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전도할 문을 닫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속한 가족들에게 예의를 잃어버리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적은 것이지만 소홀이 하지 말고 정성을 다하여 예의를 갖추고 살아가십시다. 예를 든다면 가족의 제사나 장례식과 같은 일에도 참석하여 제사 지내는 의식에는 참석하지 않더라도 가족행사에는 참여하여 함께 어울리고 예의를 갖추고 살아가는 노력이 우리들에게는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세와 같이 위대한 지도자가 히브리 민족도 아니고 다른 종족인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를 만나서 엎드려 절하며 문안했던 아름다운 모습을 배우며 실천하는 삶을 삽시다. 우리의 가족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전도의 문을 연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가족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8)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다른 피조물을 섬기고 살아가는 죄악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용서받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구원의 길로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멸망의 길에서 그대로 살아갈 것이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자신에게 시내산으로 찾아온 장인인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에게 두 가지 내용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ㅓ 40년 동안 장인이 이드로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애굽에 간다고 허락 인사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소개하지 못하고 애굽의 자기 민족에게로 간다고 하면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는 1절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들에게서 소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기적으로 구원하신 일을 다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8절에 보면 모세는 자세하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열 가지 기적과 아울러 홍해바다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애굽 사람들을 심판하신 일을 자세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으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언약하셨고 더 나아가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을 지키신 것을 분명하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마라의 쓴 우물을 달게 만들어 주셨고, 엘림의 숲에서 고기를 먹고 싶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추라기를 내려서 먹여주시고 만나를 주셔서 살아가게 하셨고, 므리바 골짜기에서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해서 이스라엘을 살려주신 일과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말렉 족속을 물리쳐 주셨음을 자세하게 전하면서 모세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유일한 참 신임을 증거했습니다.
(적용) 우리가 간증으로 복음을 전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간증을 통하여 나를 증거하지 말고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와 주님임을 분명하게 증거해야 듣는 사람들이 나의 복음 전도를 듣고 예수 믿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간증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가족들에게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유일한 참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복음을 담대하고 분명하게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가족이 신앙고백을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해야 합니다 (9-12)
복음을 전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겨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장인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에게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했을 때 장인 이드로에게 놀라운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이드로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드로는 애굽과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구원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그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 감격할 때 그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이드로가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신 하나님이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사람에게서 구원하셨고 아말렉 족속에게서 이기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여러 신들이 있고 아말렉 족속이 섬기는 신들도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이들 모든 신들 보다도 크신 유일한 참 신임을 신앙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바울 사도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롬 10:10). 12절에도 보면 이드로가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떡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말이고 우리들의 표현으로는 주 안에서 교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식의 표현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 안에서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이드로가 모세와 함께 40년을 살았지만 모세의 진지한 전도는 이 때가 처음이고 결국 이드로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전도를 받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신앙고백하고 예배했습니다. 미디안의 제사장이 모세의 전도를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앙고백해서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것은 모세의 전도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화)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의 능력과 전도로 3년 반 동안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고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기적을 맛보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엘리사의 능력으로 나병을 고침 받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여덟이었는데 그 중에 이삭만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삭의 두 아들 가운데 야곱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믿어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미 믿는 우리들은 먼저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에 대한 예의를 갖추며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가족의 여러 행사에도 참여합시다. 제사라 하더라도 참석하여 굳은 일을 감당해주면서 제사 의식에는 참여하지 말고 가족들을 사랑합시다.
우리의 가족들에게 진지하게 복음을 전합시다. 나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유
일한 참 신이심 하나님을 증거하십시다.
우리 가족이 나의 같이 신앙고백을 하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도록 하십시다. 예수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온 가족이 구원받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드로의 삼 원칙
출 18: 13-27
혹시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쳐서 “하나님, 더 이상 지쳐서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불러 주세요.”라고 한 경우는 없습니까? 물론 지칠 만큼 열심히 일하신 분이 계시다면 상을 주고 싶습니다만, 모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민11:14-15을 보면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수백만 명이 되는 이스라엘을 혼자 이끌고 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우리들도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하면 모세와 같이 곤고함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일의 속성을 알지 못하면 죽도록 일하고도 남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도 지쳐서 쓰러지게 됩니다.
우리나라를 다스리는데 돕는 공무원이 100만도 더 필요할 텐데 200만이 넘는 백성들을 공무원 한 명 없이 모세 혼자 이끌고 가려고 했으니 얼마나 무모한 일입니까?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일지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광야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범죄가 발생하고 충돌이 일어나고 다툼이 생겨나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백성들을 재판하느라고 다른 일에는 전혀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본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충고를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장인이 제안한 제도를 받아 들였는데 그 제도가 바로 부장제도입니다. 백성들에게서 적임자를 선택하여 대신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일들은 각 부장에게 맡기고 그래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모세가 판결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탈진을 면하고 하나님께서 세운 일군들과 함께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드로가 제시한 원칙을 가리켜 흔히 '이드로 원칙'(Jethro principle)이라고 부릅니다. 이 원칙은 우리의 하나님의 사역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이드로의 원칙을 가지고 모두가 하나 되어 주의 일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이드로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1. 제 1 원칙은 혼자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14-18절에 이드로는 “그대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찜이뇨 어찌하여 그대는 홀로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대의 곁에 섰느뇨 -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 대와 그 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개척교회 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피곤하여 지친 분들이 많습니다. 개척교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직된 교회에서 목회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혼자서 모든 부서를 다 감당하고 심지어 운전과 청소까지 합니다. 게다가 집세 떨어지면 심방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돈 구하러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돈이 많지 않거나 개척 멤버 없이 혼자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능력의 사자 엘리야도 특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지쳐서 목숨을 불러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을 아끼지 않는 그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탈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일을 많이 맡고 많이 해야만 큰일을 하는 줄 압니다. 또 다른 이유는 자신에 대한 과도한 신뢰 때문입니다. 나 말고 남이 하는 일을 못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만 완벽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시원치 않아서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그 결과 그 무거운 보따리는 자기가 져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전문가가 되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믿고 맡기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 전문가가 되는 것이죠. 무슨 일을 혼자하려고 하지 말고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큰 가구점을 하는 프리드만(Freedman)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직원들을 회사 운영 전반에 참여시키는 파격적인 조치를 시켰습니다. 월급도 직원들과 상의하여 정하고 휴가도 회사차를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모든 일을 종업원 전체의 의사를 반영해서 회사를 이끌어 간 것입니다. 그 결과 회사 수익이 엄청나게 올랐고 직원들 100%가 그 회사에 남아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파업이란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요. 모두 자기 회사와 동일한데 누가 파업하겠습니까? 사장 프리드만 씨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란 믿고 맡기면 책임감이 더 커지고 최고의 능률을 발휘한다." 이처럼 모세는 장인의 충고를 받아 혼자로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했던 것입니다.
2. 이드로의 제 2원칙은 역할 분담의 원칙입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충고했습니다. 21-22절에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 했습니다. 그 결과 짓눌렀던 과중했던 일들은 덜어졌고 모든 문제들이 아름답게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으신 것도 역시 이드로의 원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시기에 혼자서 다 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길러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위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집사를 세운 것도 이드로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가 규모가 작을 때는 사도들이 목회와 재정을 함께 관리할 수 있었지만 수효가 많아지자 교인들조차 파악치 못해 구제가 빠지는 등 잘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파 과부들과 헬라파 과부들이 다툽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집사들을 세워 구제를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기로 했습니다(행6:3, 4). 그 결과 행6:7을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지고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는데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까지 도에 복종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왠만해서는 감동조차 하지 않을 제사장의 무리들이 복종한 것은 왜 그랬을까요? 다른데 신경 쓰지 않고 말씀연구와 기도에 힘썼을 때 놀라운 감화를 끼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일한다고 다 잘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역할 분담의 원칙은 교회 안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담임 목회자가 할 일이 따로 있고 제직들이 해야 일이 따로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일을 너무 빼앗아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교인들이 목회지침 밖에서 활동해도 안 됩니다. 맡긴 자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라 했듯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해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을 보장하지만 여러분도 제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꿈꾸며 소신껏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 질서 안에서 각양 은사를 받은 대로 각기 맡은 일에 충성하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크게 확장될 줄 믿습니다.
3. 이드로의 제 삼원칙은 은사의 원칙입니다.
모세가 역할을 분담했는데 아무에게나 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적절한 사람에게 했습니다. 출18:21-22에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합당한 사람을 세웠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인격과 은사와 능력 위주였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가 속히 학력 위주에서 능력 위주로 바꾸어지고 자기 재능과 은사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는 한 크게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서울대학교를 없애자는 주장을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전공하느냐가 아니라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한국인의 최고의 목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까지 인사 문제를 이력서 위주로 하다가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하나님의 사역은 이력서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인격의 덕목과 신령한 은혜와 은사는 이력서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력이 화려해도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일은 능력 위주, 은사 위주, 재능 위주로 나가라는 것이 이드로의 원리입니다.
민수기에서도 모세가 완악한 백성들 때문에 지쳐서 목숨을 거둬달라고 기도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드로의 원리를 지시하셨습니다. 민11:16-17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 백성의 장로와 유사 되는 줄을 네가 아는 자 칠십 인을 모아 데리고 회막 내 앞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습?求?. 그들에게도 동일한 성령을 부어 주셔서 그 일을 나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과 능력을 주셨고, 초대교회 일곱 집사들도 모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요즘 직분이 사회적 신분이 되어 너도나도 직분을 가지려고 하는데 이것은 직분의 타락입니다. 직분의 타락은 곧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요 교회에 대한 모독입니다. 직분은 내 체면을 위해서 받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일하라고 주신 것이니 자기 직분과 은사에 맞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2:4에서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13) 그랬습니다. 그런데 무슨 큰 능력이 넘쳐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기도로서 믿음으로서 일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큰 복입니다. 몸 아끼지 말고 건강할 때 물질이 있을 때 시간이 있을 때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남 눈치 볼 필요 없이 신앙 안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는 어떻고 어느 교회는 어떻고 그런 소리 마세요. 그게 원칙이고 법입니까? 우리는 좋은 것은 본 받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 색다르고 더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일이 없으면 인간은 늙고 맙니다. 캐나다는 노인 복지가 잘되어 노인들의 천국이지만 노인들이 빨리 죽는답니다. 그 이유는 복지가 너무 잘되어 있어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의 일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드로의 원칙은 우리 주님께서 본을 보여 주셨던 변함없는 하나님 일의 원칙입니다. 이드로의 세 가지 원칙으로 하나님의 일을 잘해봅시다. 우리 모두 이드로의 원칙 가지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직분 따라 은사 따라 위임 분담해서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로 성령으로 그리고 질서 안에서 충성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일군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